초보 엄마, 아빠는 모든 게 서툴렀다. 책과 인터넷으로 준비했다곤 하지만 갑작스레 닥친 상황에선 허둥대기 일쑤였다. 처음 마주하는 하루하루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여름 녹아버릴 것 같은 솜사탕을 끌어안는 기분이었다.
신생아가 엄마 아빠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잠이었다. 어른들과 수면 패턴이 완벽하게 달랐다. 길어야 두어 시간을 자고, 깨길 반복했다. 온종일 같은 패턴이다. 잠깐 자고 깨고 조금 놀다가 다시 두 시간을 자고 또 깼다. 낮에도 깨고 밤에도 깼다. 새벽이라고 봐주지 않는다. 그야말로 밤낮이 없다. 아이가 깨면 해야 할 것들이 많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짜놓은 젖을 데워 먹여야 했다. 등을 두드려 소화를 도와야 했고, 게워내기라도 하면 옷을 갈아입혀야 했다. 간혹 모로반사에 스스로 놀라 깨면 한참을 달래서 재워야 했다. 항상 비몽사몽이다. 검은 곰이 내 어깨에 터를 잡았다. 피곤은 늘어만 갔다. 다크서클은 내려앉았다.
초보 엄마 아빠는 요령도 없다. 아이가 깨면 동시에 일어났다. 순번을 정해서 담당하면 될 것을 그럴 꾀도 없었다. 목청껏 울어대는 통에 두 시간마다 비상이었다. 대성통곡이 단순한 의사 표현임을 덤덤히 받아들이기까지 한참이나 걸렸다. 아이는 자라고 우리는 늙어갔다.
막 걸음마를 뗄 무렵이었다. 제 걸음이 신기한 아이는 방향도 속도도 조절하지 못한다. 어느 방향이든 달릴 자세를 취했고 무작정 달렸다(아니 걸었다). 손은 번쩍 든 채 다리만 움직였다. 움직이는 본인 다리에 놀라 토끼 눈을 하고 여기저기 부딪치기 일쑤였다. 안전 펜스를 두르고 방바닥을 매트로 에워싸는 건 이때부터다. 집안 곳곳이 흉기로 보이는 시기였다. 온갖 모서리는 쿠션과 테이프로 감쌌다. 아이 키보다 높은 펜스는 넘을 수 없는 벽처럼 안심이 됐다. 아이는 그 안에서 놀고 자고 쌌다.
나른한 봄날 집 앞 공원으로 산책하러 갔다. 행여 넘어질까 끈 달린 가방을 매개 하고 넘어지면 잡아당겨 중심을 잡아줬다. 매화와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을 보고 아이가 따라갔다. 눈앞에서 사라져가는 꽃잎을 찾는 아이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놀이터엔 아이들로 가득했다. 미끄럼틀, 모래놀이, 시소에 아이들이 북적거렸다. 순간 아이가 달렸다. 친구들을 보고 반가워서 뛰어갔다. 끈을 살살 놓으며 어디까지 달려가나 봤다. 그런데 아이가 갑자기 붕 떴다. 자그마한 돌멩이에 넘어진 것이다. 붕 떠서 미끄럼틀 벽에 이마를 박았다. 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놀이터가 떠나갈 듯이 울었다. 피는 나지 않았다. 이마 전체가 벌게졌다. 조금 지나자 혹이 생겼다. 복숭아처럼 부풀었다. 첫 사고였다. 겨우 울음이 그치자 이마가 볼록한 아가는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달렸다. 끈을 바짝 죄었다. 언제든 아이에게 달릴 준비를 해야 했다. 미안함에 긴장감은 커졌다.
펜스 안은 안심이었다. 위험한 물건은 없었고 아이 장난감으로 가득했다. 촉감 발달을 위해 만지면 소리 나는 장난감도 있었다. 국민 문짝이라는 별명을 가진 장난감이 많은 것을 담당했다. 덕분에 편하게 밥을 준비하고 옷을 빨고 방 청소를 할 수 있었다. 전기밥솥에서 뜸을 들인다는 안내 문구가 나오고 쀼슈슝 소리가 났다. 뜨거운 김이 나올 때 들리는 소리인데 그 소리에 이어 갑자기 아이의 우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커서 놀랐나 싶었다. 뒤돌아보니 아이가 배출구를 손에 쥐고 있었던 것이다. 신기하게 울어대는 밥솥 배출구가, 딸랑이처럼 흔들리는 밥솥 배출구가 미치도록 만지고 싶었나 보다. 경악했다. 달려갔다. 밥이고 뭐고 아이 손만 봤다. 오른손 전체가 붉었다. 뜨거우면 바로 떼면 될 것을 계속 붙잡고 있었다니…. 바로 찬물에 담그고 진정시킨 뒤 화상 전문 병원으로 갔다. 진정은 됐지만 흉터가 남지 않도록 3주간 통원 치료를 해야만 했다. 아이가 펜스를 넘어올 줄은 몰랐다. 전기밥솥이 너무 밑에 있었다. 무지하고 어리숙한 엄마 아빠가 미안했다. 밤새 아이 손을 매만지며 울었다.
아이는 모든 것이 행복하다. 자그마한 미소에도 까무러치듯 웃었고, 작은 손짓에 반응했다. 어흥 소리와 함께 달려가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갔다. 엄마 아빠를 따라 아이도 어흥 했다. 그러면 엄마 아빠도 호랑이 아이를 피해 도망치는 시늉을 했다. 행복한 장난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평화로운 일요일 오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어흥 소리에 도망가던 아이가 넘어졌다. 쿵 소리가 났다. 심상치가 않았다. 입술에 피가 났다. 하필 매트가 없는 바닥에 처박혀 입으로 넘어진 것이다. 자세히 살폈다. 피를 닦고 여기저기 확인했다. 뭔가 허전해 보였다. 앞니가 부러진 것이다. 일요일 문을 여는 치과를 수소문해서 부러진 이를 가지고 갔다. 진료를 본 의사는 떨어진 이빨을 다시 붙이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상태를 계속 관찰해야 한다고 했다. 앞니가 전부 빠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했다. 썩을 수도 있으니 정기적으로 검진해야 한다고도 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토끼처럼 당근을 갉아 먹고, 오이를 야금야금 먹던 아이는 이제 그러지를 못했다. 음식을 앞니로 잘라 먹지 못했다.
어린이 만화 '페파피그(Peppa pig)'를 보면 이빨 요정(The Tooth Fairy)이라는 에피소드가 있다. 아이들 유치(乳齒)가 빠지면 부모는 아이 이빨을 주머니에 넣어 베개 밑에 보관한다는 것이다. 이빨 요정이 돈을 주고 이빨을 가져가면, 헌 이를 새 이로 바꿔준다는 설화다. 중국에서는 위를 향하는 아래턱 이빨은 위로 던지고, 아래로 향하는 위 이빨은 아래로 던진다고 한다. 위로 던지면 이빨이 위로 솟고, 아래로 던지면 이빨이 아래로 솟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아이 이빨이 빠지면 지붕 위로 던졌다. 까치를 길조로 여겼던 조상들은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라고 노래 부르며 예쁜 이가 자라길 기원했다. 어렸을 때 지붕으로 던졌던 이빨이 생각났다. 그 후로 정말 이빨이 났고 아직도 잘 사용하고 있다.
불교에서 극히 짧은 시간을 '찰나(刹那)'라고 한다. 사고는 찰나에 발생한다. 우리에게 찰나는 3번 있었다. 아이는 금세 회복하고 잘 자랐다. 복숭아처럼 부풀었던 이마는 가라앉았고, 손은 허물을 벗고 새살이 돋았다. 아이는 아픔을 기억하지 못했다. 이마도, 손도 사진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다. 남은 건 이빨이다. 쪼개진 이빨은 색이 변했다. 변한 이빨은 웃을 때마다 보였다. 친구들이 놀린다고 속상해했다. 밥 먹을 때, 양치할 때, 말할 때, 뽀뽀할 때마다 유독 그 깨진 이빨이 돋보였다. 볼 때마다 안스럽고 미안했다. 찰나를 막지 못해 늘 후회했다.
'까치야. 어서 우리 집으로 와서 지환이 이빨 가져가라. 그리고 튼튼한 이빨 가져다줘라. 반짝반짝 앞니로 엄마 아빠 위로도 좀 해줘라.'
엄마 아빠는 오늘도 까치에게 소원을 빌었다.
아이들은 아프면서 자란다. 엄마도 아빠도 그렇다. 엄마 아빠와 함께 오늘도 그렇게 아이는 자란다.
비혼주의를 표방하며 살아온 40대 남자가
느지막에 결혼을 하고,
감사하게도 아이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변했습니다.
잘 나가던 회사 생활을 뒤로하고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육아휴직을 하게 되었고,
육아를 전담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낳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이야기들,
아빠가 주 양육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저만의 시각으로 풀어내고 싶습니다!
임지성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다시태어나도아빠가되겠습니다
#너를위한첫번째선물
#아빠육아
#아빠육아휴직
#아빠살림
#아빠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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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재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격주로 발행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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