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복직 후 얼마간 양가 어머님들 도움을 받았다. 감사하게도 어머님들께서 아이 등원을 도와주셨다. 아침밥을 챙기고, 옷을 입히고, 준비물과 가방을 준비해 놓으면 집에서 멀지 않은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일을 맡아 주신 것이다. 외할머니와 친할머니는 일주일마다 할당된 요일을 소화하셨고 먼 길을 오가셨다. 어머님들 덕분에 조금은 편하게 회사에 다닐 수 있었다. 늘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이었다. 바쁘지만 평온한 일상은 지속됐다. 그러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코로나(COVID-19)'였다.
코로나는 우리 일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마스크를 벗어서는 안 되고 개인위생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아이도 예외는 아니어서 말을 하기도 전에 마스크를 씌워 어린이집에 보내야 했고, 항상 여분의 마스크를 챙겨야 했다.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면 몇 시간 떨어진 약국이라도 달려가야 했으며 항상 체온을 확인해야 했다. 어린이집에 밀접 접촉자라도 나오면 난리가 났다. 온 가족이 코로나 검사를 해야 했고, 며칠씩 집에만 있는 시간이 늘어만 갔다. 뉴스를 키면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늘어만 갔다. 아침마다 대중교통으로 오시는 어머님들과 아이 안전은 늘 걱정이었다. 그저 할 수 있는 건 방역지침에 따라 생활하는 것뿐이었다.
아이는 아프면서 큰다지만 이 시기에 유독 감기를 달고 살았다. 고온으로 고생하는 날도 늘어났다. 체온이 높은 경우 코로나 간이검사를 했지만 그럴 때마다 다행히 정상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감기는 한 달을 넘기도 했다. 일과 육아, 그리고 코로나는 우리 모두를 지치게 했다. 코로나로 인해 사망자와 환자가 절정에 달했을 무렵 우리 부부는 고민했다.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은 탓이다. 어린이집에서도 아이들을 돌보려고 노력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아이 하원 후는 더 답이 없었다. 출퇴근 시간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새벽 5시에 나가 9시 넘어야 집에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와 많은 대화를 했다. 그리고 결론을 냈다. '소중한 내 아이는 우리 손으로 키우자'.
그렇게 아빠가 육아휴직을 하게 됐다. 아이를 전담 마크할 수비수로 아빠가 전진 배치된 것이다. 집안일은 이제 아빠의 몫이 되었다.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것처럼 ’살림을 꾸려 나가면서 해야 하는 빨래, 밥하기, 청소 따위를 도맡아 하면‘ 되는 셈이다.
어린이집을 수료하고 유치원에 입학하면서부터 아빠의 육아휴직은 시작됐다. 모든 것을 다 해주는 어린이집과는 달리 유치원에선 어느 정도 스스로 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아이도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어린이집보다 먼 거리를 통학하는 것도 적응이 필요했다. 유치원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도 코로나는 멈출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창궐했다. 고열로 아이를 데리러 가는 일이 많아졌다. 감기에 걸려 유치원 등원을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병원을 마트처럼 다녔지만 아이는 씩씩하게 자랐다. 지나갈 것 같지 않은 시간도 흘러갔다. 결국 끝날 것 같지 않던 코로나는 종식됐고, 점차 생활은 안정됐다. 아이가 감기에 걸리는 일도 줄었고, 평범한 일상은 반복됐다.
우리 집 아침형 인간은 단연코 아들이다. 여섯 시 반이면 어김없이 일어난다. 평일도, 주말도 한결같다. 일어나서 화장실을 다녀오면 엄마 아빠를 깨운다. 아들 덕분에 덩달아 나도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일어나면 아이 먹을 것과 옷을 챙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늘 일찍 일어나기 때문에 아침을 챙기고도 등원까지 여유 시간이 많다. 여유 시간엔 주로 책을 읽어준다. 액션을 가미한 다양한 목소리와 오버스러운 연기는 유아 책과 뗄 수 없는 부분이라서 한 시간 넘게 읽어주면 목이 쉴 때가 많다. 그래서 목캔디를 자주 먹었다.
유치원 버스 정류장은 집 근처라고는 해도 꽤 걸어야 해서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나가려는데 똥이라도 싼다면 식은땀이 난다. 엉덩이를 씻기고 안고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콧노래를 부르며 볼일을 봤다. 똥줄이 타는 건 아빠다. 버스 정류장에서 아이를 등원시키면 끝인가? 그렇지 않다. 본격적인 집안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침에 먹은 그릇을 설거지하고, 빨래를 한다. 침구류를 정리하고 거실에 놓인 책과 장난감을 정리한다. 점심을 대충 먹고 다시 설거지하고 다 된 빨래는 널고 건조된 빨래는 옷장에 차곡차곡 정리한다. 그러고 나면 저녁 준비하러 마트에 갔다. 장을 보고 돌아오면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이다. 아이를 데려와 씻기고, 저녁을 먹이고 있으면 엄마가 온다. 부부가 먹을 음식을 하는 동안 엄마는 아이와 놀아주었다. 엄마, 아빠가 저녁 식사를 마치면 다시 설거지를 하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놀아준다. 자야 할 시간이 되면 침대에서 책을 읽어줬다. 아이와 엄마가 잠들면 비로소 나만의 시간이 된다. 그 시간에 내일은 또 뭐 먹지를 고민했다. 유튜브를 켜고 음식 만드는 영상을 보다 잠이 든다.
주말은 더 바쁘다. 바깥 나들이하지 않으면 하루 세끼 음식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만들고 먹고 설거지하면 다시 또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박물관이나 공원에 놀러 간다면 도시락을 싸야 한다. 중간중간 먹을 간식도 만들어야 한다. 차도 운전해야 하고, 유모차도 운전해야 한다. 외출 후 집에 오면 아이를 씻기는 건 아내의 몫. 나는 저녁을 준비한다. 저녁을 먹이고, 먹고, 놀다가 재우고, 우리도 잔다.
집안일은 단조롭게 매일 반복된다. 치우고, 정리하고, 청소하고 돌아서면 금방 먼지가 쌓인다. 아무리 노력해도 티는 나지 않고, 한번 집안일에 빠지면 빠져나올 수가 없다. 끝이 없는 미로고 블랙홀이다. 그래도 하다 보니 집안일에 익숙해졌고 요령도 생겼다. 그리고 집안일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씩 바뀌었다. 옷은 다음날 빨기도 했고 청소를 미룰 때도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더 모았다가 버렸다. 요령 없는 초보 아빠가 조금씩 집안일을 모아서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집안일에 조금씩 익숙해졌다.
얼마 전 눈에 띄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집안일 돈으로 환산하니 500조 육박... 남자 기여도는 고작?(2023.12.6.)'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매경이코노미 기사다. 기사에 따르면 가족 구성원 삶의 질을 높이는 무급 가사노동 서비스 가치가 500조 원에 달한다는 내용이다. 통계청 통계개발원 발표에 의하면 5년 전인 2014년에 비해 130여조 원이나 늘었는데 그 규모가 국내 GDP의 5.5%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는 얘기다. 남성이 가사노동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99년 20.1%에서 2019년 27.5%로 참여가 점점 느는 추세지만 여전히 여성이 남성보다 더 가사노동을 많이 한다고 한다. 자녀 양육에 시간을 많이 할애해서 자녀 양육 시기에 가사노동 가치가 최고치를 기록한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손주를 돌보게 되는 노년층이 되면 가사노동 시간이 다시 늘어난다는 내용이다.
집안일이란 참으로 소중한 일인데 비해 표시가 나지 않는다. 가사노동 가치를 환산해보면 경제적으로 엄청난 것으로 나타나지만 실제로 그 가치가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전히 여성이 가사노동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도 개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끝이 없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3대 이모님이란 말이 있다. '건조기',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가 그것인데 사용하면 천국을 맛본다는 아이템들이다. 3대 이모님 외에도 집안일에 도움을 주는 물건들은 많다. 밥은 밥솥이 하고, 빨래는 세탁기가 한다. 건조는 건조기가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한다.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기계들 덕분에 그나마 살 만한 세상이라고 느낀다. 그런데도 집안일은 쉽지 않다. 아무리 기계가 도움을 준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사람 손이 닿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탁기도 없고 청소기도 없던 옛날에는 대체 어떻게 산 것일까? 그것도 아이 한 명, 두 명이 아니라 여러 명, 대가족의 살림을 어머님들은 어떻게 하셨을까.
이렇듯 육아휴직을 하며 보이는 게 많다. 집안일의 위대함, 그것을 다 해낸 수많은 어머니들에게 존경심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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