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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성 May 08. 2024

5화) 아이를 만나면서 보이게 된 것

아빠가 육아휴직을 한다고 하니 주변 지인과 가족들은 다양한 의견을 냈다. 일단 축하한다는 인사를 가장 많이 받았고, 아빠가 육아휴직 할 수 있어서 부러워하는 의견도 있었다. 과연 아빠가 육아를 잘 할 수 있냐는 걱정스러운 의견도 많았다. 맞벌이하다가 외벌이로 수입이 줄어들면 경제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이 생기지 않겠냐는 현실적인 조언도 있었고, 육아휴직 기간에 뭐라도 해야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즉 살림만 하면 시간은 금방 간다는 따끔한 일침도 있었다. 아빠가 육아휴직 한다고 걱정해주는 마음은 어느 정도 알겠는데, 축하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 매일 같이 출퇴근하지 않아서 좋을 것이란 뜻일까? 회사 일로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되고, 늦잠도 자도 되고, 편히 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도 많으니 육아휴직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아이 키우기 위해 휴직을 하는 것이, 더욱이 아빠가 휴직을 하는 것이 부러운 대상이 되기도 하고, 걱정스러운 대상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아이를 키우는 삶은 단순하면서 단순하지 않다. 단순하게만 생각하면 아이를 입히고, 먹이고, 놀아주고, 씻기고, 재우면 된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건 아무것도 없는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일처럼 복잡하다.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그 누구도 대신 그려주지 않는다. 모든 것을 내가 직접 해야 한다. 밑그림을 그리고, 물감을 풀어 색을 만들고, 색칠하고, 액자까지 만들어서 마무리해야 하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없다. 눈뜨고 잠잘 때까지 아이와 꼭 붙어 있으면서, 아이가 스스로 하기 전까지 엄마나 아빠는 아이의 모든 것을 해줘야 하는 화가가 돼야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렇게 그린 그림이 수채화일지 풍경화일지 수묵화일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필요한 준비물도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잘못 그려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도 한다. 정답은 없고 반복되며, 그 반복되는 상황도 똑같지 않다. 알다가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던데, 육아도 그렇다. 




육아는 힘든 일이 많다. 영유아 때는 기저귀를 갈아주고, 밥을 준비해서 먹이고, 소화시키고, 낮잠을 재우고, 다시 기저귀를 갈아주고, 또 밥을 준비해서 먹이고, 또 소화시키고, 또 놀고, 또 재우고. 이런 과정이 정말 종일 반복된다. 낮잠 자는 시간 외엔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심지어 밤에도 계속된다. 모두가 잠자는 고요한 밤은 먼 나라 이야기다. 우유를 달라고,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수시로 깨고 보챈다. 우는 것도 그냥 우는 것이 아니다. 까무러치게 운다. 그게 아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임을 알지만, 매번 까무러치게 우는 소리를 들으면 힘든 건 어쩔 수 없다. 그런 시기를 지나 통잠 자는 때가 오면 세상이 밝아 보인다. 적어도 자다가 깨는 일은 현저하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엄마나 아빠도 잠을 좀 잘 수 있게 되는 시기도 이맘때다. 수면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많은 부모가 이때 깨닫는다. 아이가 자라서 유치원에 가면 육아는 훨씬 더 수월해진다. 아침에 북적북적 아이를 챙기고 유치원에 데려다주면 오전에 잠깐 여유가 생긴다. 그래봐야 설거지며 청소며 빨래며 밀린 집안일을 처리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지만 이런 단순한 가사노동이 달콤하게 느껴지는 건 긴장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일 것이다.


육아가 진짜 힘든 이유는 끝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언제 끝날지, 끝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육아를 잘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게 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체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아이를 살뜰히 보살필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투정에 너그러워질 수 있고 짜증 없이 키워낼 수 있다. 모든 것은 내 체력에 달려 있다. 아이 낳으려면 빨리 결혼해서 일찍 아이를 낳으라는 어른들 말씀이 정말 듣기 싫었는데 실상은 그게 맞다. 겪어보니 그렇다. 이런 ‘라떼’ 소리는 정말 하기 싫지만 현실이다.


육아는 이렇게 지독하게 힘들고 지치고 외롭기만 한 것일까. 아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아이를 낳고, 키우고, 겪어보니 깨달았다. 아이를 품에 안고 재우고 보살피는 일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충만함을 준다. 풍요로움을 느낀다. 충만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한껏 차서 가득하다는 뜻이다. 무엇으로 가득하다는 것일까. 사랑으로 한껏 가득하다는 뜻일 것이다. 풍요로움은 뭘까. 흠뻑 많아서 넉넉함이 있다는 뜻이다. 무엇이 흠뻑 많다는 말인가. 아이를 사랑하는 감정을 말할 것이다. 사랑으로 마음이 차고 넘쳐 여유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충만함과 풍요로움은 고민하고 고민해서 선택한 단어일 뿐 아이를 향한 사랑의 감정을 모두 담아내진 못한다. 



내가 아이를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아이가 웃으면 세상이 녹아내리고 아이가 아프면 세상이 무너진다. 밥을 잘 먹으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코를 골며 자는 모습을 보면 한없이 사랑스럽다. 끌어안고 있으면 따스한 뭉클거림이 좋고, 씻지 않아도 향기로운 아이 냄새가 난다. 팔베개를 해주면 그렇게 따스할 수가 없다. 많은 인파 속에서도 단 한 번에 내 아이를 알아보고, 아이도 그런 나를 알아본다. 세상 온 신경은 아이에게 맞춰져 있고, 세상 모든 이유는 오로지 아이가 된다. 이런 감정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다. 그저 본능이라고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그 어떠한 조건도 이유도 없이 사랑하는 것, 그것이 내가 아이를 바라보며 느끼는 마음의 실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하며, 사적인 것은 결코 언어화될 수 없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이 와닿는다. 아이를 통해 느끼는 감정은 말하기 어려운 사적인 감정임이 분명하다.


마흔을 넘었을 때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어차피 늦은 나이, 떠밀려서 하는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설령 결혼해도 아이는 절대 낳지 않겠다고도 했다. 이 험한 세상 나 혼자 살아가기도 벅찬데 이런 힘든 삶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남들과 경쟁해야 했던 수많은 일들,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도 못하고 그저 ‘돈 돈 돈’ 거리며 살아야 했던 그 모든 순간, 서울에 집 하나 마련하기도 빠듯하고, 노후는 불확실하고, 남들과 비교하면서 남들처럼 해주지 못할 바엔 차라리 시작도 하지 말자고 강하게 주장했었다. 부자가 아니어서 아등바등 살 게 뻔한데 뭣 하러 결혼하냐고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했었다. 불과 아이를 만나기 1년 전까지 그랬다.




내 품에 안겨 잠자는 아이를 보며 깨닫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왜 살아야만 하는가? 삶은 유한하고 언젠가 우리는 모두 죽는다. 불편한 진실 앞에 다만 침묵할 뿐이다. 유한한 삶이라 할지라도, 부조리한 세상을 사는 것이 인생이라 할지라도, 살아갈 이유를 찾기 어려운 삶이 지속된다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키우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사랑을 줄 수 있어 행복한 일이다. 한 아이를 키우고, 보살펴 주는 일이야말로 살아가는 이유이자 목적이다. 온몸을 나에게 의지하는 이 작은 아이가 내 삶의 이유고 내 삶의 목적이다. 그렇게 아이를 만나 삶의 이유를 찾고, 삶의 목적을 찾았다. 어차피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그저 지금, 이 순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뿐이다. 마음껏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할 뿐이다. 아이를 만나면서 보이게 된 것 중 하나는 사랑이다. 그리고 그게 전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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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재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격주로 발행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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