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니면서 아이의 친구들과 마주하는 순간들이 있다. 같이 등·하원하거나 하원 후 놀이터에서 노는 경우가 그렇다. 아들과 친구들은 불과 몇 분 전까지 같은 교실에 있었던 친구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몇십 년 만에 만난 친구처럼 무척이나 반가워한다. 열과 성을 다해 노는 아들은 겨울에도 이마에 땀이 맺힌다. 사실 계절이 중요하지 않다. 여름에도, 봄에도, 가을에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를 보면 ‘몰입’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다. 그렇기에 위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되도록 간섭하지 않는다. 친구와 다투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알콩달콩 잘 놀기만 한다. 간혹 동네 형들이 있으면 새로운 놀이를 전수해주곤 한다. 밖에서 볼 땐(어른들의 시선) 도저히 무슨 놀이인지 모르는데 아들은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방과 후 학원을 보내지 않아도 그저 동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재밌게 노는 것을 보면 무척이나 흐뭇하다.
유치원에 들어가고 한 학년씩 올라가면서 아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종종 들려준다. 어디서 들었는지 처음 들어보는 로봇도 얘기하고, 본 적도 없는 포켓몬 캐릭터 이야기도 해준다. 시시콜콜 엄마 아빠에게 유치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전달하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이야기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기특하다. 특히, 요즘은 마법 천자문과 에그 박사 이야기로 바쁘다. 짐작컨대 친구들이 해준 이야기를 듣고 엄마 아빠에게 전달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아내와 나는 이런 얘기들을 ‘등대어’라고 부른다.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 이름인 등대유치원의 ‘등대’와 한자 말씀 ‘어(語)’를 합성한 것으로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끼리 나누는 말이란 의미로 아내와 내가 만든 말이다. 등대어는 특이한 어휘일 때도 있고(유행어처럼), 특별한 의성어일 때도 있다. 또 아이들끼리만 아는 명사일 때도 있다. 때때로 아들이 말하는 등대어는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솔직히 무슨 말인지 모를 때가 더 많다. 아이들 세상을 이해하기란 단어 몇 개로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 단어들이 제대로 전달되는 것도 아니니 더욱 그러하다. 그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아이와의 질문 속에서 그 의미를 짐작할 뿐이다. 이렇게 나누는 아이와의 대화는 전혀 모르던 세계로 나를 인도한다. 정치, 사회, 경제, 문학 등 어른의 세계에서 고고 다이노나 아르세우스(포켓몬 캐릭터), 시나모롤 등이 가득한 아이의 세계로 이동하는 것이다.
아침을 먹이고 유치원 보내고, 하원하고 저녁을 먹이면 하루가 지나는 일상적인 패턴을 유지하던 어느 날이었다. 아들이 축구를 하고 싶단다. 친구들이 축구 유니폼을 입고 자랑을 꽤 한 모양이다. 축구 경기를 할 수 있는 곳을 물색했다. 다행히 근처에 청소년 수련관이 있어서 바로 신청했다. 또래 아이들이 많은 것도 좋아 보였다. 축구를 전문적으로 하기보단, 즐거운 놀이로 에너지를 발산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이 입고 온 것과 비슷한 축구 유니폼도 사줬다. 등번호를 새길 수 있는 빨간 유니폼에 영문 이름도 넣었다. 등번호는 단연 ‘27’번이다. 아들은 자기 생일이라고 27이란 숫자를 세상에서 가장 좋아한다. 멋진 유니폼을 입고 평소 정성을 다해 흠뻑 노는 것처럼 축구도 그렇게 하길 바랐다. 그렇게 화요일, 목요일 일주일에 두 번 축구를 하러 다녔다. 아들은 축구를 잘하진 못했지만 즐거워했다. 어느새 이렇게 커서 축구까지 하나 대견했다. 축구를 한 날이면 아들은 일찍 잠들었다. 저녁을 먹으며 졸기도 했다. 그 모습이 애처롭기도 했지만 얼마나 재미있으면 저렇게 온 힘을 다해 뛰어다닐까 싶다.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이제 축구보단 태권도란다. 왜 그런지 들어보니 태권도 도복을 입고 태권도 발차기와 품세를 하는 친구가 부러웠나 보다. 어설프게 발차기를 따라 하면서 아빠 뒤에 몰래 와 발차기를 하던 때도 있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차렷 자세도 취했다. 근처 태권도장을 물색했다. 태권도장이 이렇게나 많다니, 집 근처 가까운 태권도장만 세 군데가 넘는다. 어디를 보내야 하는지 도저히 감이 오질 않았다. 아내와 상의한 끝에 우선 가까운 세 곳을 모두 가보기로 했다. 아내가 일찍 끝나는 날에 맞춰 태권도장 투어를 시작했다. A는 시설이 특히 좋고, B는 아이들이 특히 많고, C는 그 중간쯤 되어 보였다. 도저히 어느 곳이 좋을지 몰랐다. 판단도 서지 않았다. 아내와 함께 고민했지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다 답은 의외로 쉽게 해결됐다. 아내가 놀이터에서 다른 엄마들과 몇 마디하고 정보를 얻은 것이다. 엄마들의 정보를 믿고 B로 결정했다. B는 아이들 차량 픽업에서 간식 먹이기, 집까지 차로 데려다주는 등 많은 것을 세심하게 보살펴줬다. 태권도장이 보육을 일정 부분 대신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유독 많은 곳이 B였구나! 무릎을 치는 순간이었다.
아빠가 주 양육자라서 다른 아이 엄마들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뻘쭘하기도 하고, 왠지 부끄럽기도 하다. 어떻게 아빠가 육아휴직 하길 결정했냐부터 아빠가 키우면 어려움은 없는지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매일 저녁밥은 무엇을 만들어 먹냐고 수다 떨기도 어색하다. 그렇다고 육아에 관한 정보만 쏙 빼먹는 것도 얌체 같아 싫다. 엄마들 사이에 홀로 덩그러니 있는 것도 모양새가 빠진다. 아이들끼리는 죽마고우인데, 아이들끼리는 다투지 않고 사이좋게 잘 소통하면서 노는데, 나와 엄마들 사이에는 좀처럼 넘을 수 없는 큰 벽이 있는 것만 같다. “아빠, 아빠는 OO 엄마랑 안 친해?”라고 묻는 아이에게 멋쩍은 웃음만 날릴 뿐이다. 다음번에는 가벼운 말이라도 건네자고 다짐한다.
아들이 성장하면서 다양한 취미와 관심사를 가지게 되는 과정은 부모로서 새로운 발견이자 도전이다. 축구와 태권도는 그저 스포츠 활동이 아니라, 아들이 사회성을 배우고, 또래와의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아들의 다양한 감정과 반응을 관찰하며, 아들의 성장을 지원하는 방법을 배웠다. 또한 이러한 활동을 통해 아들이 겪는 시행착오와 성공 경험은 아들의 인격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태권도장 선택 과정에서 아내와 함께 고민하고 결정하는 과정은 부모로서의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아울러 다른 부모들과의 소통은 우리가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를 통해 엄마들 커뮤니티에서 지혜를 활용하는 것이 가치 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지혜는 받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아내는 그 이후 없는 시간을 쪼개서 엄마들과 함께하려고 노력한다. 본인이 알고 있는 정보를 나누려고 노력한다.
아들이 새로운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겪는 변화와 발전은 나에게도 새로운 경험이다. 아이의 관심사와 활동을 지원하며, 아이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데 필요한 사랑과 지지를 제공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임을 느낀다. 이렇게 또 하나를 배워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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