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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성 Jun 19. 2024

8화) 왜 똑같이 육아해도 엄마가 더 피곤할까?

결혼 후 집안 살림은 분담이 원칙이었다. 맞벌이 부부이기도 했지만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함께 살아가는데 집안일을 같이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반으로 나눠 너는 이거, 나는 이거 하지는 않았지만 아내가 음식을 하면 빨래와 청소는 내가 했다. 이런 방식으로 둘이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고는 달라졌다. 집안일이 평소보다 배 이상 늘어났기 때문이다. 누구랄 것도 없이 할 일이 보이면 했다. 봐도 못 본 척한다거나 할 일들을 미루면 큰일이 났다. 보이는 대로 치우고 정리해야 집이 그나마 돌아갔다.


엄마가 먼저 육아휴직을 했을 때는 엄마가 더 많은 집안일을 했고, 아빠가 육아휴직을 하면서부터 집안일 대부분을 아빠인 내가 담당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고 집안 살림을 하기 위해 쓴 육아휴직인데 굳이 부부가 나눠서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빨래하고, 청소하고, 음식을 만들고, 장을 보고, 아이를 등∙하원 시키고, 놀아주고, 책 읽어주고, 재우고 하면 하루가 짧을 때가 많다. 그렇다고 엄마가 육아를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퇴근 후에 최선을 다해 육아하고 있다. 아빠가 설거지하고 있으면 엄마가 아이와 놀아준다. 책을 읽어주고 영어며 한글, 한문,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소위 말하는 ‘엄마표’ 학습이다. 물론 아이는 말을 잘 듣지 않고 놀려고만 한다. 엄마는 아이와 아웅다웅하면서도 학습의 끈을 놓지 않는다. 어르고, 달래고, 혼도 내면서 아이는 한글을 읽게 되었고, 덧셈, 뺄셈도 곧잘 하게 됐다. 간단한 한자도 알게 되었고, 영어 파닉스도 단모음까지 읽을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아내는 아이와 함께하는 이 시간대에 무척이나 피곤해한다. 낮에 일을 하고 와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주말은 늘 바쁘다. 날이 좋은 주말은 더 바쁘다. 봄에는 꽃을 구경하러, 여름에는 바닷가로, 가을에는 단풍 보러, 겨울에는 소복한 눈을 찾아 어디론가 다닌다. 엄마는 이런저런 정보와 장소를 물색하고 아빠는 도시락을 싸고, 짐을 챙기고, 목적지까지 운전한다. 실컷 놀고 집에 와서는 준비 과정과 정확히 반대로 한다. 도시락과 수저, 물통 등을 설거지하고, 짐을 풀어 정리하고, 아이를 씻긴다. 그렇게 짧은 주말 나들이가 마무리된다. 이럴 때도 유독 아내가 피곤해하는 날이 있다. 주중에 일하고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노느라 피곤한가 보다 생각했다. 


그러다 유독 피곤해하는 아내가 무척이나 걱정됐다. 어디 몸이 좋지 않은지 염려가 됐다. 건강검진에서는 특별히 문제가 되는 것은 없었다고 했다. 낮에 일하고 밤에 집안일에, 아이까지 챙기다 보니 피곤한 게 아닌가 싶어 아예 모든 일을 아빠만 할까 생각했었다. 실제로 그러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때조차도 아내의 피곤함은 여전했다.



그러다 우연히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바로 계획수립이라는 거대한 일을 아내가 했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행동하는 사람이다. 무엇을 결정하면 계획에 맞게 실행했고, 계획에 따라 마무리했다. 가령 여행을 간다면 나는 숙소와 장소가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운전해서 가기만 하면 됐다. 목적지에서도 어디어디 ‘정해진’ 곳에 따라가서, 놀고, 먹고, 즐겁게 여행에서 논 뒤에는 다시 운전해서 되돌아오면 됐다. 반면 엄마는 기획하는 사람이다. 언제 어디로 가야 할지, 어느 숙소가 좋을지, 음식은 무엇을 어디에서 먹을지 등의 모든 기획은 오롯이 엄마 몫이었다. 물론 최종 의사결정 전 아빠의 동의를 구하지만, 그뿐이고 모든 계획은 전적으로 엄마가 한다.


어느 날 이런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다. 왜 엄마가 피곤한가를. 대부분 집안 살림을 남편인 당신이 하는데 본인은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를.


아내가 얼마 전에 봤다며 유튜브 링크를 하나 보내왔다. 뉴스였는데, 제목이 ‘남편이 집안일 도와주는데 왜 매일 피곤하지? 아내들이 속고 있는 한 가지! [창+]’다. 방송 내용은 대략 이렇다. 정부 공식통계(통계청)에서도 가사 노동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여전히 큰데 이것이 실제 가사 노동의 실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 문제를 제기한다. 결론은 아니라는 거다. 소위 ‘기획 노동’이라고 하는 계획 수립에 관한 내용은 반영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기획 노동의 대부분은 아내가 전담한다. 어떤 식재료를 사서 무엇을 아기에게 먹일지, 어떤 용품을 살지, 어떻게 키우게 될지 등등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계획을 아내가 한다. 아이가 커가면서 기획은 더 중요해진다. 어린이집, 유치원, 영어유치원, 체육 활동, 학원, 학습 계획, 영양제, 건강 체크, 하물며 계절과 성장에 따라 바뀌는 옷가지, 속옷, 신발 등 소소한 것들까지 아이와 관련된 계획과 구성은 늘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기획은 대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가사도우미나 어린이집, 유치원 선생님이 대신 해줄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기획 노동은 가족을 위해서는 정말 중요한 시간인데 행동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가치가 드러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 집만 해도 7살인 아이의 자연학교, 치과 예약, 숲 체험, 태권도, 영어학원, 휴가 계획, 나들이 계획 모두 엄마가 알아보고 계획한다. 생각해보면 회사에서도 기획부서는 특별하다. 회사 장기비전과 목표를 설정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기업은 물론 공공기관과 정부 부처 모두 기획하는 부서는 조직도상 첫 번째다. 그만큼 기획이 중요하다.


그런데 집안일은 어떤가? 모두 행동만을 중시한다. 나는 빨래도 했고, 음식도 만들었고, 청소도 했다고 말한다. 아이와 놀았고, 아이를 씻겼고, 운전도 했고, 설거지도 했다고 말한다. 쓰레기 분리수거도 했고, 음식물 쓰레기도 버렸다고 말한다. 반면 여행 계획을 짰다고, 학습 계획을 수립했다고, 건강검진 예약을 미리 했다고 자랑하거나 중요하게 알아주지 않는다. 음식 만들어본 사람은 안다. 무엇을 먹을지, 어디서 재료를 사야 할지, 어떻게 만들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집안일도 똑같다. 행동보다 기획이 우선이고, 행동보다 어쩌면 계획이 더 중요하다. 그간 그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정확한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아내가 피곤했던 이유는 항상 고민하고 최적의 선택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조사하는 데서 비롯됐다. 아내는 엄마들 커뮤니티, 동네 커뮤니티, 유치원 엄마들 소식 등 어디에 있든 항상 귀를 열고 안테나를 세우며 가족을 위해 보이지 않게 움직였다. 아내의 ‘기획 노동’이 우리 가정을 살뜰히 챙겼음을 당사자인 본인도 몰랐고 남편인 나도 몰랐다. 아내가 피곤한 건 어쩌면 너무도 당연했다.


링컨 대통령은 ‘나에게 나무를 자를 여섯 시간을 준다면, 나는 먼저 네 시간을 도끼를 날카롭게 하는 데에 쓰겠다’라고 했다. 기획과 계획의 중요성에 대한 말이다. 이제 가사 노동 분담을 다시 해야겠다. 기획도, 계획도 앞으로는 함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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