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빠가 쓴 글을 읽을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 서로 사랑하며 살기로 하자.
138억 년 전 시작된 우주의 역사를 1년으로 표현한다면, 1월 1일에 빅뱅으로 우주가 팽창하기 시작했고, 1월 10일에는 중력에 의해 뭉친 가스 덩어리들에서 별들이 탄생했다. 1월 13일, 그 별들이 모여 최초의 작은 은하들이 형성되었고, 작은 은하들이 모여 큰 은하를 만들었다. 3월 15일, 우리 은하도 그렇게 탄생했다. 수천억 개의 태양이 생겨났고, 8월 31일 우리 태양이 탄생했으며, 지구와 태양계가 만들어진 것은 9월 초였다. 12월 31일 23시 59분 46초에 비로소 인류의 역사가 시작됐다. 우리 은하계에 태양과 같은 항성은 1,000억 개 이상이고, 지구와 비슷한 지구형 행성은 200억 개에 달한다. 우주에는 이러한 은하계가 최소 2,000억 개 이상 존재한다. 인류가 관측 가능한 우주의 크기는 930억 광년으로 추정되지만, 관측 불가능한 범위를 포함한 전체 우주 크기는 감히 추정할 수조차 없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드넓은 우주에 지적 생명체가 인간뿐이라면 이는 엄청난 공간의 낭비라고 했지만,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이 지구 외에 또 있는지 없는지 우린 아직 알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동시대에 함께 사는 이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기적’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우리가 만날 확률을 표현하는 단어로 이보다 더 적당한 것은 없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별 중에서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지구라는 행성, 그리고 억겁의 세월 속에서 같은 시간대에 사는 우리. 아빠와 아들로서 만난 이 순간, 이 모든 상황을 굳이 확률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우리가 만난 것은 기적이고 또 기적이다. 우리는 극한의 확률을 뚫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가족이 됐다. 이런 인연은 다시 없을 인연이다. 그러므로 우리, 서로 사랑하며 살기로 하자.
어린 시절에는 하루가 길게만 느껴졌다. 시간이 빨리 흘러 어른이 되고 싶었고, 언제 어른이 될까 궁금했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어 보니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간다. 쏜살같이 시간이 흘렀고, 눈 깜짝할 사이 나이가 들었고, 순식간에 늙어갔다. 최근에야 이런 현상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기 시작했다. 사람은 오감을 통해 뇌로 들어오는 정보로 시간을 인지한다. 새로운 것이 많은 어린이에게는 뇌의 신경회로가 많이 자극받아 기억의 강도가 커진다. 반면 어른들은 이미 많은 경험을 하고 반복된 일상에서 뇌가 큰 자극을 받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빠르게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시간에 대한 체감속도는 나이에 비례하여 증가한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빨라지고, 죽음의 시간은 가까워진다. 사람은 고작 100년밖에 살지 못한다.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죽는다.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적대시하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다. 그것이 가족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니까 우리, 서로 사랑하며 살기로 하자.
사랑하는 아들에게 아빠가 해줄 말이 너무나 많은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닌 것 같다. 서점에 가보면 아빠가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수십 권에 이른다. 책들을 천천히 살펴보다가 곧 덮어버렸다. ‘아들아! 너는 ~을 해라’, ‘~을 하지 마라’ 같은 식의 글들이 전부였다. 인생은 본인이 직접 경험하고 실패하면서 스스로 깨우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로가 필요할 때, 조언이 필요할 때, 힘이 들 때 아빠를 찾아주면 그걸로 족하다. 그때 아빠는 성심껏 너와 대화할 것이다. 다만 이것 하나만은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사랑해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해 후회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러니 우리, 서로 사랑하며 살기로 하자.
우리 아들은 인생의 목표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정답을 쫓는 삶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좋은 아파트에 사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었을 때, 그걸 이루고 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허함이 밀려온다.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것들은 정답이 아니라 그저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아무것도 의미가 없는 우주에서 무엇인가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인간임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언제든 정답과 믿음을 창조해낼 수 있다. 누군가 정해 놓은 정답을 쫓으며 삶이 허무하다고 괴로워하는 대신, 매 순간순간을 삶의 목적으로 만들고 정답으로 만들어야 한다. 친구들과 놀고, 가족들과 여행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으면서 마치 그 순간을 위해 살아온 것처럼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면 된다. 지난 여름, 선규와 연우와 함께 안양천에서 물놀이하며 온 마음을 다해 놀던 그 모습처럼 살면 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쓴 빅터 프랭클 박사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라고 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충분히 생각해보기로 하자. 욕심부리지 말고, 비교하지 말고, 작은 것에 만족하며, 오늘을 즐겁게 살도록 하자. 삶에 꼭 대단한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살되, 인생 전체는 적당히 느긋하게 살면 된다. 어차피 인생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저 오늘 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저 오늘 하루 서로 사랑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고로 우리, 서로 사랑하며 살기로 하자.
어느 날 잠들기 전 아들이 물었다.
”아빠. 사람은 다 죽어?“
”응. 그럼. 사람은 언젠가 다 죽어. 나이 들어 죽기도 하고, 사고로 죽기도 하고.“
아들이 오열하며 말했다.
”안돼. 아빠 죽지 마! 지환이랑 오래오래 같이 살아~!“
”응. 알았어. 지환이 결혼하고 아이 낳을 때 아빠가 밥도 해주고 지환이 아가 이뻐해 줄게.“
울면서 아들이 말했다.
”아빠. 근데, 할 말이 있어.“
”응 뭔데?“
”아빠. 나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아빠 아들로 태어나고 싶어.“
흐느끼는 아들을 안아주며 내가 말했다.
”그래. 아빠가 다시 태어나고, 또 태어나고, 또 태어나도 아빠는 지환이 아빠가 되어줄게.“
지금 우리는 결혼은 물론이고 출산도 장려되지 않는 사회 분위기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에게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결혼하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아이를 낳을 거냐고 묻는다면 한 치 망설임 없이 그렇게 할 거라고 대답할 것이다. 지금 내 옆에서 잠자고 있는 아내와 아이는 내 삶에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그러니까 우리, 영원히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살자. 끝.
<다시 태어나도 아빠가 되겠습니다>는 15화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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