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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성 Sep 11. 2024

14화) 엄마는 까투리

무더운 장마가 계속되는 여름날, 비가 그친 집 앞 공원에는 매미가 시끄럽게 울고 있다. 집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습기가 가득하다. 조금만 걸어도 등이며 이마에는 땀이 한가득하다. 등원 버스를 타러 가는 그 짧은 길이 한없이 멀어 보인다. 덥지만 아들과 손을 꼭 잡고 그 길을 걷는다. 벌레며, 구름이며, 꽃이며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 조잘조잘 이야기하며 걷는다. 오늘도 아들은 날씨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냉장고 자석처럼 나에게 착 달라붙어 있다. 살과 살이 부딪힐 때마다 습한 느낌에 떨어질 법도 한데 슈퍼맨도 해달라고 하고, 청룡열차도 해달라고 조른다. 그나마 간단한 회전목마 한 바퀴만 돌리는데, 쓰러질 것만 같다. 아이와 아웅다웅하고 있으면 유치원 버스가 온다. 아이가 버스를 타고 유치원으로 가면 나는 숙제를 끝낸 것처럼 홀가분하다. 버스에 탄 아이가 있는 힘껏 손을 흔든다. 문득 아이가 건강히 잘 지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 등원하는 아이들과 마주친다. 할머니와 손잡고, 어린이집이며 유치원에 가는 아이들을 본다. 나도 이렇게 지치는데 이 더운 날씨에 할머니들은 얼마나 힘드실까.


우리도 할머니가 저렇게 아이를 돌봐주신 때가 있었다.


아내가 육아휴직 후 복직한 첫해, 우리 부부는 맞벌이를 했다. 양가 어머니들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키웠다. 양가 어머니들이 일주일에 2, 3일씩 나누어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시면, 하원은 엄마나 아빠가 하는 시스템이었다. 친할머니는 한 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 오셔야 했다. 사람이 많은 출근 시간대를 피해 늘 지하철 첫차를 타고 오셨다. 가까운 거리에 사시는 외할머니는 걸어오셨다. 가깝다고 하지만, 마을버스로 2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운동 대신이라며 늘 걸어오셨다. 어머니들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신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가셨다. 1년 남짓 이런 생활이 계속되었다. 어머니들께 늘 죄송했다. 힘들게 해드려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면 어머니들은 한결같이 우리 손주 보러 와서 행복하다고, 괜찮다고 답하셨다. 손주를 보는 그 잠깐의 시간이 삶의 기쁨이라고 하셨다. 더운 날도 추운 날도 몸이 힘든 날도 빠지지 않고 손주를 챙기는 어머니들을 보며 내리사랑이란 게 이런 거구나 생각했다. 손주를 위해 애쓰는 마음은 당신 자식을 위한 마음일까? 손주를 위한 마음일까?



우리 부부는 서로의 가족들 사이에서 소위 문제아(?)였다. 부모님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잘 자라왔지만 결혼을 하지 않은 문제아. 더군다나 아이를 갖기에는 우리 둘 다 나이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복덩이 같은 아들이 태어났고 어머니들은 무척 기뻐하셨다. 아이의 탄생은 특별한 것 없는 일상에 특별함을 만들어주었고, 재미없는 일상에 웃음을 주었다. 아이가 걷고, 말하고, 웃으면 온 집안은 콘서트장이 되었다. 가족 모두가 꼬마 녀석을 응원했고 격려했고 사랑했다. 자그마한 한 생명이 태어나 또 하나의 가족이 됐고, 무언가 말할 수 있는 주제를 끊임없이 던져주었다. 그저 먹고, 놀고, 싸고, 웃는 행위 하나하나가 이루 설명할 수 없는 큰 기쁨을 주었다. 아이의 재잘거림 덕분에 가족 간 대화가 되살아났고 집안에 활력이 생겼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불과 몇 년 사이에 많이 늙으셨다. 아픈 무릎은 더 아파졌고, 만성 통증에 시달리던 허리는 나을 기미가 없었다. 염색을 하지 않으면 흰머리가 가득했고, 웃을 땐 더 많은 주름이 생겼다. 아이의 성장과는 정반대였다.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영양분이 아이에게 간 것만 같다. 내리사랑은 사랑하는 마음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손주에 대한 할머니들의 사랑 못지않게 아들에 대한 아내의 사랑은 각별했다. 아내는 모유 수유를 위해 밤낮없이 젖을 물렸고, 시도 때도 없이 깨고 자기를 반복하는 상황에서도 단 한 번 불평한 적이 없었다. 아픈 아들이 밤새워 뒤척이면 아이 걱정에 잠을 자지 못했다. 아이가 울면 언제든 달려와서 달랬고, 아이 성장에 맞는 교육에 대해 늘 고민했으며, 옷을 고르고, 먹어야 할 영양제와 유치원, 영어학원과 태권도장을 알아보는 등 끊임없이 무언가를 기획하고 고민했다. 병원 예약에서부터 박물관, 공연장, 여행지 숙소 예약도 도맡아 했다. 아내는 아이가 말을 듣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따끔하게 혼을 내면서도 혼낸 사실이 미안해 잠든 아이를 꼭 끌어안아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나도 다 받아줄 것 같은 사람, 본인보다 항상 자식 생각하며 배려하는 사람, 검소함이 몸에 배 그 흔한 외식도 꺼리는 사람, 늘 가족만을 생각하는 사람, 늘 한결같은 모습인 그런 엄마가 바로 내 아내였다. 아빠인 나는 엄마의 본능적인 사랑인 모성애가 무엇인지 모른다. 열 달을 내 몸속에 품고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역시 모른다. 가족을 위해 항상 전전긍긍하고 무엇 하나 더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고통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알게 된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나보다 더 중요해지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며,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아이가 이렇게 해야 좋고, 저렇게 하면 싫다는 그 어떠한 조건도 없다. 말 그대로 아무런 조건 없이 아무런 기대 없이 사랑한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것이 고통이든 희생이든 상관없다. 왜 이런 것인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과학적으로도 증명할 수 없다. 그저 모성애, 부성애, 내리사랑으로 표현할 뿐이다. 부모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면 놀랍기만 하다. 한 세대를 거친 사랑은 그래서 더 놀랍다.


우리 속담에 '꿩 먹고 알 먹고'란 말이 있다. 꿩은 부르는 이름이 두 개다. 수컷은 장끼, 암컷은 까투리라 부른다. 꿩은 워낙 예민한 새라서 잡기가 무척 어렵다. 그런데 꿩이 알을 낳으면, 엄마 까투리는 모성애가 아주 강해서 알을 품고 있는 상태에서는 누군가 다가와도 절대로 달아나지 않는다고 한다. 알을 버려두고는 절대 도망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까투리가 알을 품고 있으면 누구나 쉽게 까투리와 알을 잡을 수 있다. '꿩 먹고 알 먹고'란 속담이 그렇게 생겼다. 내가 아는 속담 중 가장 슬픈 속담이다.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알을 품고 달아나지 않는 까투리를 보며 깨닫는다. 내 옆에 있는 아내가 바로 내 아들의 엄마 까투리고, 우리 어머니들은 우리들의 엄마 까투리다. 이 세상 모든 엄마는 사랑으로 아이를 품는 엄마 까투리다. 오늘따라 엄마 까투리의 사랑과 희생과 숭고함이 눈물겹기만 하다.


본 연재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격주로 발행되는 칼럼입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다시태어나도아빠가되겠습니다

#너를위한첫번째선물

#아빠육아

#아빠육아휴직

#아빠살림

#아빠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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