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7월 29일, 여행 여섯 번째 날
아침 6시 30분 기상!
발리에 와서 7시 이후에 일어난 적이 없는 것 같다. 올빼미족도 순식간에 아침형 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게 발리의 힘. 우리 숙소 Kompyang Cottage는 참 독특하다. 전날 고른 아침식사를 아침이 되면 방 앞으로 가져다주는데, 그 말인즉슨 발코니가 곧 식당이라는 뜻이다. 메뉴는 콘티넨탈과 현지식 중에서 고를 수 있고, 과일부터 오믈렛, 팬케이크, 음료, 커피까지 푸짐하게 차려준다. 의자와 테이블은 편하지 않지만, 발리의 햇살 아래서 즐기는 아침은 그 불편함마저 덮어버린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다.
발리 밸리의 공포에서 잠시 해방된 듯 음료도 마시고 과일도 맛있게 먹었는데, 전날 열이 나고 감기 기운을 보였던 큰아이가 오늘은 아예 나가기 힘들다고 한다. 여행 일정이 아깝긴 했지만, 축 늘어진 아이를 억지로 물놀이에 데리고 나가는 건 아니다 싶었다. 결국 큰 아이는 숙소에 두고, 작은 아이와 신랑, 나만 나가기로 했다. 상비약을 먹이고, 우리 셋은 7시 45분 픽업차에 올랐다. 큰 아이가 아침에 오믈렛을 제법 잘 먹은 걸 보니 ‘내일쯤은 괜찮지 않을까’ 은근 기대했다.
8시쯤 누사블루 샵 도착. 신랑은 스쿠버다이빙, 나는 아이랑 스노클링.
도착하자마자 다이브마스터에게 물었다.
“오늘 만타포인트 갈 수 있나요?”
“그럼, 우리는 만타포인트 맨날 가.”
와, 든든하다. 안심하고 서류를 작성했다.
그런데 출발이 자꾸 미뤄진다. 날씨 때문에 8시 45분 출발이라고 하더니, 8시 30분이 넘자 손님들이 우르르 들어온다. 순간 ‘날씨 탓이 아니라 이 늦게 온 손님들 때문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뭐, 그래도 괜찮다. 만타만 보면 됐지.
누사블루 샵은 바닷가가 아니라 산 중턱에 있다. 그래서 픽업트럭을 타고 가파르게 내려가 buyuk 하버에서 배를 탔다. 드디어 만타포인트로! … 가야 하는데, 배가 크리스털베이에 멈춰버린다. 오늘은 조류가 심해서 만타포인트는 못 간단다. 뭐야, 아까는 맨날 간다더니! 아쉽고 또 아쉽고, 아쉬움 삼단 콤보. 하지만 안전 문제라 우길 수도 없으니 첫 스노클링은 크리스털베이에서 했다.
시야는 좋았다. 잘 관리된 산호와 알록달록한 열대어들이 얕은 수심에서도 손에 잡힐 듯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조류. 가만히 있으면 마치 놀이기구 바이킹을 타는 기분이다. 멀미약 안 챙겼으면 큰일 날 뻔.
안전요원이 튜브 하나 들고 따라붙어 지켜보긴 했지만, 가이드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안전요원 모드. 20–30분 정도 허우적대다 결국 배로 올라왔다. 산호도 예쁘고 물고기도 많았지만, 조류에 휩쓸리다 보니 체력이 금세 소진됐다.
중간 휴식 후 두 번째 다이빙. 다이브마스터가 “조류가 세긴 한데, 만타 포인트 갈까?” 하고 물어봤지만, 그 질문이 ‘yes’를 기대한 게 아니라는 걸 바로 알아챘다. 그냥 괜찮다고 했다. 결국 우리 보트는 북쪽으로 갔는데… 알고 보니 아침에 늦게 들어온 중동 다이버들 보트는 만타포인트로 갔다.
순간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초보 모자 조합 + 첫 다이빙인 신랑 + 미숙한 몇몇 손님들을 태운 우리 보트는 애초에 만타포인트 불가였던 거다. 애초에 솔직하게 얘기해 줬으면 기대라도 안 했을 텐데. 두 번째 다이빙은 솔직히 볼 게 없었다. 산호는 예뻤지만, 세부에서 이미 많이 봐왔던 풍경이라 감흥이 덜했다.
12시가 조금 넘어서 다이빙 끝. 누사블루는 점심 도시락을 제공한다. 배고픔은 최고의 양념이라고 했던가. 멘장안에서 먹었던 도시락과 비슷했지만 이번에는 훨씬 맛있게 느껴졌다. 그래도 큰 아이가 계속 마음에 걸려 대충 털어 넣고 숙소로 복귀.
다행히 큰 아이는 아침보다는 한결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점심을 못 먹었으니 걱정이었다. 신랑이 이른 저녁을 먹자고 해서 나갔는데, 4시 전이라 그런지 식당들이 죄다 브레이크 타임. 발리에도 브레이크 타임이 있다니! 결국 꼬르륵 소리를 내며 숙소로 돌아왔다.
만타를 못 본 게 아쉬워서 다시 투어를 알아봤는데, 호텔을 통해 예약하면 픽드롭까지 다 된다고 해서 신청했다. 다운되었던 기분이 예약을 했다는 마음에 아직 보지 못한 만타지만 이미 본 것 마냥 기분이 고양되었다. 그런데 신랑이 큰아이 상태가 마음에 걸린다며 왕진 의사를 부르자고 했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며 그냥 지켜보자 했지만, 여행 갈 때까지 숙소에만 있을 수 있다는 신랑의 말에 결국 의사를 불렀다.
왕진 의사가 왔는데 앰뷸런스를 타고 왔다. 순간 좀 부끄러웠다. 증상을 설명하니 피검사와 변검사를 권한다. 비용은 무려 750만 루피아! 한국 돈으로 약 65만 원쯤.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때 신랑이 센스 있게 ‘변검사는 빼자’고 해서 그나마 조금 빠졌지만 여전히 비싸다. 수액 맞고 피 검사하니 백혈구 수치가 높게 나왔다. 결국 진단은 위장염. 예상했던 식중독은 아니었다. 그래도 열을 재니 39도. 아이가 많이 아팠을 텐데 괜찮다고 한 게 신기했다.
진료는 수액을 맞느라 거의 1시간 반이나 걸렸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발리에서 왕진 의사 부르면 30만 원부터 시작이라던데, 너무 순진했나 싶었다. 알고 봤더니 근처에 보건소 같은 작은 병원이 있었는데 거기를 갈걸, 때늦은 후회를 했다.
저녁은 숙소 근처 merikel이라는 식당으로 갔다. 이름만 보고 현지메뉴를 파는 음식점일 줄 알았는데, 멕시코·일본·이탈리아·발리 음식이 한 메뉴판에 다 들어있는 글로벌 푸드 식당이었다. 누사페니다에서는 요런 식당들만 되겠지만. 손님이 우리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을까? 요리사가 중간중간 식재료를 사러 나갔다 온다. 음식은 맛있긴 했는데 짰다. 그래도 친절해서 좋았다. 너무 배고픈 상태에서 먹어서 포만감이 확 몰려왔다.
호텔 입구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작은 아이가 갑자기 “1분 안에 화장실 가야 해!”를 외쳤다. 아무리 빨리 가도 1분은 더 가는데... 엉거주춤 뛰듯 걸으며 숙소에 겨우 도착했다. 큰 아이에 이어 작은 아이도 장염 시작인가 보다. 나도 속이 편치 않았다. 신랑도 이미 하루 전 잠깐 탈이 났던 상태. 결국 온 가족이 화장실을 들락날락.
호텔 화장실은 야외다. 벽은 있지만 천장이 뻥 뚫려 있다. 샤워하다가 비가 오면 빗물인지 수돗물인지 헷갈린다. 그런데 변기에 앉아있는데 비가 오면? 설사도 서러운데 비까지 맞아야 한다. 물론 변기 위에 작은 가리개가 있긴 하지만, 발리의 소나기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그리고 결정타. 우리가 내일 예약한 만타포인트 스노클링은 날씨 때문에 취소됐다는 연락. 본의 아니게 하루 종일 숙소에 있게 생겼지만, 사실 다른 일정이 있어도 숙소에만 있었어야 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