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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우주인 Sep 28. 2021

착한 척하다가 죽을 뻔했다.

내 삶이 억울한 일 투성이었던 이유는 착한 척해서였다.

한동안 나는 내가 꽤 심각한 우울증에 걸렸다고 믿었던 적이 있다. 전문가의 도움을 잠시 받던 중 신경정신과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우울지수와 스트레스 지수 검사를 받아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우울지수가 거의 없었다. 전문가가 발견한 나의 심리적 문제점은 통제 상태를 한참 벗어난 스트레스였다.


힘든데도 힘들 줄 몰랐던 것은 내 감정을 돌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원히 참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1분을 참느냐 하루를 참느냐 십 년을 참느냐는 기간의 문제일 뿐이다. 개인적 능력에 따라 저마다 참을 수 있는 유효기간이 있다. 1초 혹은 1분밖에 참지 못하는 사람도 참 사는 모습이 고달프지만, 결국엔 참지 못할 텐데 참느라 긴 시간을 고통 속에 사는 사람의 삶은 더 안타깝다. 그렇게 자신을 제대로 아끼고 돌보지 않아서 자신에게 제일 나쁜 사람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참음의 대 폭발을 경험하게 되는 참는 상황을 만들어주던 사람은 어떠할지 생각해보자.


인간관계는 완벽히 상대적이다.


긴 시간을 참고받아주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그동안의 저장해놓은 분노의 폭죽을 터뜨리며 지난날의 화를 커밍 아웃한다면, 어찌 보면 원인 제공자에겐 굉장히 불공평한 상황이다.


관점에 따라 가해자가 피해자로 탈바꿈될 수 있다.


한 마디로 불공정 거래를 하고, 방귀 뀐 놈이 성을 내도 동정받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오랜 시간을 참아주는 사람과 함께 했던 이유는 상대가 참아주었기 때문인데 그때는 괜찮고 오늘은 더 이상 못 참아! 란  논리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화를 부르는 일을 벌이는 원인 제공자들은 상대가 무엇을 어떻게 참았는지 절대로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오랫동안 참아줄 수 있는 또 다른 피해자(?)를 단숨에 찾아내는 초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불쾌한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삶의 질은 달라진다. 타인의 감정을 공감해 주는 것도 참 값진 일이다. 하지만 절대로 잊지 말자. 내 감정은 나 자신에게는 타인의 감정보다 더 소중하다.


타인의 감정에 좌지우지되는 것을 고치기 쉽지 않다면 나만의 동굴 속에 들어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데에 집중하는 것도 좋다. 철저히 혼자가 되는 연습을 하자. 사람은 혼자여도 편해지는 법을 알아야 외로운 감정도 잘 돌볼 수 있다.



나는 착한 아이였다.


착한 아이로 자란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전혀 성장하지 못한 채 착한 아이인 채로 살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세뇌당한 듣고 자란 착하다는 말의 피해자였다. 착하다는 말이 가진 괴력은 나를 순응하는 삶에 적합하도록 길들였다.


"네가 이해해."


"너는 착한 아이이니까. "


내게 붙여지는 그 순하다는 말과 착하다는 수식어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항상 나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다. 나이가 들수록 착한 척 연기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감으로 능숙해졌다. 그 연기력에 속아 나조차도 내가 모태 착한 애인 줄로 착각했다.


내 맘 속과 다른 착한 척 연기에서 오는 감정노동 때문에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마음속은 울고 있는 나날들이 하루 이틀 늘어나더니 삶이 되어버렸다.  나는 사실 못돼 처먹었다. 나는 못된 사람은 아니지만 착한 사람은 더욱 아니다. 그저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무던히도 잘 참는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좋은 척, 괜찮은 척, 공감하는 척, 이해하는 척, 생각해주는 척, 척에 관해서라면 이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연기력을 가진 채로 말이다.


착한 사람의 호의는 누군가에는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다.


나를 위해 쓸 시간도 부족한데 관심도 없는 남의 일상과 불평, 뒷담화 종합세트를 끊임없이 듣다 보면 진이 다 빠진다. 필요할 때만 연락해도 항상 곁에 있는 사람 리스트에 순위 1위를 놓치지 않다 보니 카톡 메시지 알림 사운드는 항상 바빴다. 답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에도 일일이 답하고 이모티콘 보내주던 나의 손가락 노동에 표창장을 받기는커녕...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면 곱빼기로 추가된 신세한탄이나 걱정 불만 가득한 부정적인 메시지로 나의 하루를 시작하는 날들이 가득했다.


정작 내가 위로가 필요할 때 나를 다독여주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그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써야 할 에너지를 착한 척하느라 많은 사람들에게 공평히 나눠주다 보니, 변함없이 내 곁을 지켜주는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을 온전히 지켜주지 못했다.   


착한 척하면 끊임없이 열어야 하는 것이 지갑이다. 나 사는 것도 빠듯한데 남들의 기념일에 선물 챙기기에 바쁘고, 만나면 나와 관계없는 이야기를 듣는 감정노동은 물론 넉넉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아서 지갑 노동하느라 나를 위한 소비도 등한시했다.


착한 척하다 보니 결국 내게 남는 것은, 남의 감정의 쓰레기통의 역할을 자처하다 잃어버린 소중한 시간과 텅텅 비어버린 통장 잔고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한 번에 감정이 복받쳐 올라 터져버렸다. 차마 하지 못했던 말, 숨겼던 감정, 인내했던 순간들, 일일이 나열할 수 없는 백만 가지의 참기 종합세트는 폭발을 넘어 결국 증상이 되어 나의 영혼을 덮쳤다.


나는 착한 척하다 죽을 뻔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마음속에 태어나 오랜 시간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애지중지 금지옥엽 잘 키워낸 그 착한 아이와 헤어져야만 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나의 분신이라 여겼던 착한 아이를 떠나보내고   모든 것이 편안하고 수월하다.  뒤로 내게는 예전처럼 억울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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