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연말은 어릴 적 친구인 혈액형 AB형과 시드니에서 얼굴을 맞대며 보냈다. AB는 긴 시간 동안 암으로 투병했다. 서로 곧 다가올 이별을 예감하며, 누군가 툭 하고 건드리면 제대로 폭발할 슬픔을 꾹꾹 눌렀다. 우리는 행복한 이별을 연습을 했다. 글 장난일 뿐, 물론 그런 이별은 없지만.
내가 살고 있는 시드니로 자주 현실 도피 여행을 왔었던 AB는 죽기 전에 꼭 시드니에 오고 싶었다고 했다. 현실을 도피하고선 나의 작은 자취방의 좁은 싱글 침대에 함께 누워서 토할 만큼 재잘되던 그때가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순간 중에 하나였단다. 어쩜 시한부 인생의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죽기 전에 시드니에서 나와 실컷 수다 떨고 싶었던 AB는 제대로 된 수다는 떨지도 못했다. 따뜻한 물이 가득 차있는 욕조 안에서 통증과 싸우며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갔다. AB와의 소중한 이별 연습이 끝나고 2019년 새 해가 왔다.
새해 첫날 오후였다. 고단했던 이민 생활 속에서 마음을 열고 의지하고 지내던 그 녀석, 혈액형 B형과 갑작스럽게 이별하게 되었다. 일 년 만에 휴가 받아서 너무나 신나하던 한국형 일개미인 B는 주어진 휴가 중 이틀밖에 쓰지 못했다. 대신 B가 주일마다 힘차게 읽고 부르던 성경과 찬송가 속에 항상 등장하는 천국으로 떠났다. 시드니에서 B가 제일 좋아하는 바닷가에서... 취미인 스노클링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헬기까지 동원되었던 B의 구조작업은 새해 첫날 호주 뉴스를 장식했다.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그 누구던간에, 이별할 때마다 마음속으론 바짓가랑이 붙잡고 매달리며 진상을 부리는 짜증나는 성격의 소유자인 나 혈액형 A형에겐 이런 갑작스러운 이별은 감당하기가 힘겹다.
그리고 그 해 여름에 AB도 세상을 떠났다.
착한 아이로 살다가 착한 아이인 채로 세상을 떠난 아이. 착한 척하며 살다가 얼마 남지 않은 삶의 끝자락에서 지난날의 면죄부와 함께 꺼내 든 억울함 리스트에 자리 잡은 솔직한 속내와 분노를 내게 속삭이다가 세상을 떠난 아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죽은 아이와 죽을 날을 미리 알았던 아이가 내게 알려주고 간 것은 나에게 어떤 흔적이 되어 스며들었을까?
"너 앞으로 남은 삶은 그딴 식으로 살지마. "
죽음의 문턱에서 내게 호통을 치던 AB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나는 비로소 시작할 수 있었다.
모임에서 메뉴는 아무거 나나 네가 먹고 싶은 것이 아닌 내가 고르기. 나가고 싶지 않은 모임엔 나가지 않기. 기회만 생기면 놓치지 않고 부탁을 하고 그 부탁을 들어주어도 고마워하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챙기지 않기.
남에게 뭔가를 해주고 바라는 마음을 버리기. 분노와 질투에 휩싸인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기. 잘 해낼 수 없는 일을 차마 거절하지 못해 떠맡아 전전긍긍하지 않기. 죄책감 없이 단호히 거절하기. 나 혼자 잘해주고 나 혼자 상처받지 않기. 다른 이들의 삶을 기웃거리는 데에 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증 버리기. 스스로를 다그치고 몰아세우느라 내 한계에 도전하지 않기. 하루에 한 번은 꼭 나 자신에게 꼭 사랑한다 말하기.
주는 것에 익숙하고 받는 것이 왠지 불편한 사람이라면,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나눠주느라 자기의 마음은 까맣게 타버렸다면,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살아보기를 권한다.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이 철저히 다른 사람이 되어 살 수는 없겠지만 중간의 언저리쯤은 갈 수 있다.
살면서 남을 배려하고 챙겨주는 것만큼 남에게 제대로 받는 법도 알아야 내일 당장 죽어도 억울하지 않다.
나는 슬펐다.
예정되지 않은 이별이던 예정된 이별이던, 이별은 살 한 덩어리를 덩그러니 도려내는 것처럼 끔찍하게 아프다. 깊은 우울함을 느낀 적도 있고 좌절감과 무기력증이 선사한 혼돈에 굴복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슬프다는 감정의 바닥에 이렇게까지 처참히 도달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떨어지는 낙엽만 보아도 함께 깔깔거리던 어릴 적 단짝 친구보다 더 오래 살고 있다는 것은 자주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워킹맘으로 아이 둘을 키우며 바쁜 일상에 쫓겨 가족들과 울고 웃으며 살고 있었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나를 송두리째 움켜쥐고 있던 슬픔의 감정은 잊을만하면 찾아왔었다.
나는 읽었다.
내 안의 슬픔, 걱정, 근심을 유일하게 달래주는 건 조각조각 주어진 시간에 그저 무조건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읽는 것뿐이었다. 집에 몇 권되지 않는 한국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언젠가부터는 그 책들을 내 이야기처럼 읊어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 후엔 한국 책을 보유하고 있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기 시작했다. 제3 국 코너에 있는 한국 책들은 어릴 적 읽던 대작가들의 고전에 가까운 책들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내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직장에서도 남편이랑도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는 불편함은 없었지만 내겐 항상 무엇인가가 부족했었다. 하지만 모국어 된 책을 읽고 싶을 때마다 읽기 시작한 후부터는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나는 깨달았다.
인생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수수께끼 같다. 나 자신과 함께 하는 수수께끼 게임. 10대의 나와 20대의 나, 그리고 30대의 나, 이제는 40대가 된 나는 솔직히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창피하지만. 하지만 나에 대한 수수께끼 게임의 답을 예전보다는 더 잘 알게 되었다. 그 긴 시간 속에서 나 자신에게 끊임없는 질문 던지며 나의 진짜 모습을 하나둘씩 알게 된 것이다. 뒤가 구린 못생긴 내 모습도 인정하고 제법 잘 풀게 되었을쯤이다. 내내 타인에게 끌려다니는 사람으로 살았었지만, 나를 끌고 다니던 타인의 손에 잡혀있던 끈을 싹둑 자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영혼을 지배하던 부정적인 기억이나 감정을 재구성하여 내게 유익하도록 저장하는 능력도 더 이상 시행착오를 경험하지 않을 정도로 유능해졌다.
모난 성격의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둥글둥글해지고, 둥글둥글한 성격의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뾰족한 부분들이 생긴다. 모나고 까칠해서 경험했던 불편하고 외로웠던 기억들,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며 살다 보니 당면해야 했던 불이익의 경험들이 채찍과 제갈이 없이도 우리를 자연스럽게 중간의 세계로 몰아넣는다. (그래야 내 맘이 덜 아프고, 남들도 덜 아프게 하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그 중간 언저리쯤에 도착하니 그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예민함과 섬세함과 끝없던 걱정들은 내게 더 이상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깐깐하고 예민하고 모가 났다는 이야기를 듣더라고,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아닌 것에 대해 분명히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겐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제까지는 누군가의 뒷담화의 도마 위에서조차 병신이라고 칭해져도, 당당히 손을 들어 불만을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전혀 그렇게 살지 못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