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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우주인 Oct 03. 2021

센 언니 & 욕 잘하는 언니

찌꺼기 처리법

내가 맨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고 자신을 찌른 사람을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받은 만큼 돌려줄 센 언니들이 가득한 잡지사였다. 21년 전의 일이다. 소셜미디어가 장악한 오늘을 살고 있는 21살의 대학생은 상상도 하지도 못할 아날로그 스토리로 패션 매거진 세계에 입성했다.


나는 엄마 몰래 사재 낀 옷가지와 가방으로 형성된 카드값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궁지에 몰려있었던 21살의 돈에 꿈에 절박했던 의상학도 였다. 헤어컷을 하러 갔던 미용실에서 패션 매거진 스타일리스트 공모를 발견했다. 무엇인가에 홀린 것처럼 미용실 주인장에게는 묻지도 않은 채 잡지 속에 붙어있던 공모전 엽서를 푹 찢어서 당당히 도둑질했다.


무엇을 주제로 포트폴리오에 보냈는지 지금은 전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그 시절 나를 장악했을 것이 분명한 나의 카드값 꿈 때문에 며칠 밤을 지새우며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공개 도둑질한 엽서에 볼펜이 생산하는 똥을 최대한 분사하지 않도록 정성껏 작성하여 포트폴리오와 함께 잡지사로 보냈다. 몇 주 뒤에 1차 서류심사에 합격소식을 통보받았고 최종 심사를 받게 되었다.


선명하게 기억하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 곳은 출판사 뒤편에 마련된 사진 스튜디오였다.


번쩍거리는 조명과 행거에 가득 찬 화려한 옷들은 혜성처럼 등장하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던 나의 꿈과 희망에 모터를 달아주었다. 게다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지금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인 카드값을 해결할 수도 있을 테니 전속력으로 무한 질주 시작! 그때까진 카드사의 입사 선물이었던 카드 한도 상향 조절로 신용카드의 세계와 이별하는 것은 더 어려워질 거라는 것은 전혀 몰랐었다.


최종 심사는 잡지사에서 준비한 의상과 소품들을 사용하여 세 가지 스타일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쿵쾅대는 마음의 영향을 즉각 받은 후들거리는 손가락 세포들을 간신히 진정시켜 마네킹에 옷을 입히고 스타일을 완성한 후 심사의원들에게 채점을 받았다. 그리고 일주일 후, 결과가 발표되었다.


간신히 잡지사에서 일 년 동안 일할수 있는 커트라인인 3등으로 입상했다.


천만다행이다.


엄마에게 지은 죄를 고하면 맨 먼저 머리가 잡히는 것으로 시작되어 몸의 부위마다 차례대로 타격을 받다가 결국엔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카드값의 궁지에 몰린 내게 내려온 동아줄을 가까스로 움켜잡았다.


얼마  내가 잡은 동아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게 되었다. 만약 사실이라면 자괴감이   같아서 확인해  적은 없지만 들은 바로는  채점 점수로는 나는 4등이었다.  언니들  사이에서 제일  에너지를 보유한 국장님께 제대로 찍힌 최다 득점자인 1등이 입상자에서 제외되어  칸씩 계단 상승했기 때문에 나는 간신히 고용될  있었다고 한다. 나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끼쳐서 나를  아래 두고 싶은 누군가의 조작된 소문일지도 모르지만 아무렴 어떠랴. 그렇게 나는 겉에서 보기에 번지르르한  볼일 많아 보이는 패션 세상에 데려다  막차에 간신히 올라탔다.


첫 직장에서 만났던 수많은 센 언니들 중 마음이 못된 언니들은 없었다. 센 언니들은 대부분 직선적이고 솔직하며 추진력이 경주마 수준이기 때문에 나처럼 상황판단에 느리거나 머리를 굴리는 것에 미숙한 업무를 막 시작한 새내기에게는 최고의 선생님이었다. 일 적으로는 한 순간도 느긋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 바짝 짜리게 채찍질했지만 업무 외적인 일에는 감정 노동을 시키지 않았다.


 언니들은 내가  참사를 만들어 화를 부를지라도  현장에서 분노의 찌꺼기를 죄다 분출하고 새로운 날이 밝으면 어제 일은 어제에 두고 회사에 출근했다. 좋은 것이 좋은  아니고 아닌 것은 분명하게 아니라고 말하는 그녀들.  직장에서 만난  언니들은 굉장히 유능하고 열정적이었다. 21 전에 그녀들은 기가 엄청나게 세서 결혼 정보 회사의 기피 1 순위였을지도 모르나 2021년에 그녀들을 고대로 데려다 놓으면 그녀들은 자존감 높은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으로 포장될 것이다.


사회생활의 처음 3년 동안은 몸도 마음도 고달팠다. 출퇴근 시간도 아끼려고 자주 차 안에서 쪽 잠을 잤다. 마감 때마다 편의점은 내게 일용한 양식을 공급하는 식량 배급소였다. 주차장과 스튜디오에서는 노숙의 기술을 연마했다. 스튜디오에 제품컷 촬영을 위해 가득 깔려있는 스티로폼은 나의 매트리스였고 그 위에 누워 잠을 청하는 나를 덮어주는 빼다(포토 촬영 시 사용하는 천을 지칭함)는 나의 이불이었다.


그렇다. 이제 돌아보니 나는 매달 곱빼기가 되는 씀씀이가 선물하는 카드값 때문이 아니라 꿈의 에너지로  시간을 버틸  있었다. 그리고 그때 눈물 콧물  빼며  언니들에게 배운 것으로... 분야는 다르지만 나의 살던 고향을 떠나서도 밥벌이를 하고 있다.  내가  언니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잊히지 마련이지만 아직도 또렷히 기억나는 첫 직장에서 만났던 나쁜 언니들은 센 언니들이 아니었다. 억울한 일들과 불공평했던 상황들로 나를 몰아넣고 내 눈에서 쭉쭉 뽑아낸 눈물들로 자신들의 결핍을 채었던 그녀들은 센 언니들에게 찍 소리 조차 못하는 직장 내 먹이사슬의 하위의 포지션에 자리 잡았던 이들이었다.


입장이 바뀌면 사람의 행동과 반응은 달라진다.


그녀들은 평소에 직장생활이 생산하는 감정의 찌꺼기를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두다가 직장 먹이 사슬의 맨 아래 있었던 내게 꽤나 고약한 방법으로 풀었다.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의 비극을 경험하기에는 나는 너무 어렸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랐다. 막내의 눈칫밥보다 더 눈물 나는 감정노동은 없다.


20년 전도 일들이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 이유는 그녀들이 나의 인생을 좌지우지했던 대단한 악역을 맡아서는 결코 아니다. 그녀들 역시 착한 척 자신을 억압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조직 생활의 피해자였다. 센 언니들의 안테나가 닿지 않는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내가 그녀들에게 당했던 일들은 어떤 조직에도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지금까지 그녀들의 얼굴과 이름까지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이유는 최말단의 불리한 지위에 있다고 해서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제대로 미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들이  밉고 싫었지만 두려웠다. 그래서  자신을 지키는 것을 뒤를 하고 차별을 선택했다.


나를 쉽게 생각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미쳐 알지 못했다. 나는 함부로 하면  되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녀들의  밑에서 밟히고 뭉개지면서도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때 아무런 반격도 하지 못해서 나는 현재 뒤끝 작렬을   하에 휘날리며 20  이야기를 이렇게 쪼잔하고 찌질하게 써내려 가고 있는 중이다.


이 글을 적어 내려가다가 문득 나의 지난날 잘못과 과오를 적은 면죄부 리스트들을 들쳐보았다. 어쩌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착한 척하던 그녀들처럼 평소에 쌓아두었던 온갖 스트레스와 분노를  함부로 해도 되는 만만한 누군가가 포착되면 마구 난사하는 만행을 저질렀던 적은 없었을까?

의도적인 것은 아녔을지 모르지만  역시 완전무결한 순백의 과거를 지녔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나의 과거 밥벌이 기억들을 돌려 감아보았다. 불필요한 부분은 빠르게 돌리기 버튼을 눌러 재빨리 넘겨버리고 자세히 돌아보아야 할 부분은 느리게 보기 버튼을 눌러 조목조목 놓치지 않고 체크했다. 그중에 특별 관리 리스트들에 채택된 것은 따로 보기 파일에 넣어 내 머릿속 바탕 화면에 저장했다.


특히 감정 찌꺼기들을 약자에게 분사했던 만행을 중심으로 직장생활에서 명심해야  덕목들은 하이라이트 펜을 여러 가지 색으로 덕지덕지 칠하였다. 항상 파일을 열어보면  먼저 눈에 들어오게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앞으로는 지난날의 면죄부 속에 비겁하고 치졸하게 누군가에 받은 화를 다른 사람에게 배로 만들어서 전파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내가 받은 만큼... 준 사람에게 똑같은 양으로 반사하는 사람이고 싶다.


이제 미워할 놈은 제대로 미워하고 싶다.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은 내가 아픈 만큼 아프게 해주고 싶다. 지금이 바로  마음에 최고 성능의 반사 기능 버튼을 장착할 때이다.


  언니가  생각이다.




나는 현재 꽃집에서 플로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직장에 욕을 엄청 찰지게 술술 하는 동료 하나가 있다. 리테일 꽃집에서 일하다 보면 소위 말하는 진상이라 불리는 신비로울 정도로 까다로운 손님들이 다녀가곤 한다. 그런 특별한 분들이 매력을 활발히 펼치기 시작하면 직장 동료와 나는 주로 눈으로 대화를 나눈다. 그녀에게 영감을 주는 특별 손님이 원하는 것을 얻어   매장을 총총히 나서면, 그녀의 입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괴상한 영어 언어들이 술술 쏟아져 나온다.


그녀는 욕의 화신이며 선구자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사랑스러운 사람이며 공정하고 정직하다. 거대한 몸매를 지녔지만  거대한 몸이  도드라져 보이는 디자인의  끼는 옷을 입고 사랑스러운 포즈와 표정을 짓는다. 그녀는 컬러풀한 꽃들을 모아 만든 아름다운 꽃다발을 손에 들고선 직장생활의 찌꺼기들의 감정을 욕으로 승화시키며  소리로 자주 하하 웃는다. 그녀는 다른 사람보다  절은   몸을 가지고도 섹시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찌꺼기가 없는 사람은 매력적이며 사랑스럽다. 욕쟁이라도 말이다.


욕쟁이 동료가 어느 날 꽤 짜증 나고 꽤 억울한 상황에 빠졌던 내게 욕을 요청했다.


“Say! F XXX!


말해! 너도  8 이란 말을 해보란 말이야! “


무엇인가에 홀린 듯 그녀가 지도하는 욕들을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래퍼들처럼 줄줄 따라 읊었다.


“Do  You feel FXXXXX better? Right?


기분이 겁나 좋아지지? “


이상한 일이다.


정말 기분이 나아졌다.


말은 영혼의 거울이다. 는 세뇌를 교육을 받고 자라서 내 인생에 욕은 출입금지였었다. 말은 영혼의 거울이니 맑은 영혼을 지키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현실 세상은 화나 있는 사람이 대접받는다.  호구 에너지 해피 에너지만 가진 생명체가 상처 없이 생존하려면 말이라도 걸쭉하게 할 수 있는 자기 보호 무기 하나쯤 장착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사람들은 어떠한 형식으로든 감정의 찌꺼기를 남긴다. 먼지 같은 찌꺼기들이 모여서 태산이 되기 전에 찌꺼기를 쓸어내지 안 된다.


욕쟁이 동료의 도움으로 입에 욕을 담기 시작하니 그다음부터는 욕하는 게 참 쉬었다. 욕이 감탄사나 느낌을 말하는 표현이 되기도 하는 외국에서 살면서 바르고 고운 말을 쓰는 것에 왜 그리 집착하며 살았는지 모르겠다.


착하지도 않은데 착한 척하며 살았던 것처럼 말이다.


어떤 사회든 어떤 문화이든 도덕 교과서의 내용과 다른 모순이 존재한다. 세상은 차분하고 순수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보다는 어려워 보이고 화난 에너지가 가득한 사람들을 극진히 모신다.


 마음에다 진상 활동을 펼치는 사람이 있다면 상황에 따라 더러운 말도 입에 거침없이 올릴  알아야 한다.  활동이 불편하고 부끄러운 사람이라면 나쁜 말들을 이용하여 혼잣말이라도 하는 것을 추천한다.마음의 찌꺼기를  때에 제대로 배설해야 한다.   배설하지 못하면 마음에 담아두었던  똥을 선의의 피해자에게 튀기거나 때론  자신이 묵은똥이 가득한  통에서 제대로 구를 수도 있다.


나를 안전하고 깨끗하게 지키기 위해서 나는  언니가 되었고, 욕도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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