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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우주인 Sep 25. 2021

촌스러운 게 나만의  매력

스타일이 밥을  먹여주는 일을 했지만..


나의 첫 직장은 패션과 인간의 욕망이 결집되어있는 패션 매거진이었다. 몇 년간 패션 스타일과 트렌드가 밥을 먹여주는 카드값을 내주는 세상에서 살았다. 하지만 시드니에 이사 온후 나는 자연스럽게 패션 스타일과 트렌드와는 멀어져 버렸다. 낡아 보이는 옷을 입고 있어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다 보면, 그런 유행 없는 패션 스타일들이 나름대로 매력적으로 보인다.  


언젠가부터는 너무 오래 입어서 창호지 보다도 더 얇고 구멍이 날 것 같은 티셔츠를 애지중지 하는 외국인 남편의 취향도 제법 멋스럽게 느껴졌다. 물론 처음 연애할 때는 그런 그의 취향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아껴 쓰고 다시 쓰고 나눠 쓰는 것이 보편적인 문화에 익숙해지다 보니 남편의 취향에 대하여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남편이 옷 사는 데에 돈을 전혀 쓰지 않으니 얼마나 경제적인가? 나 역시 어느새 옷이 구멍이 나거나 제품에 어떤 하자가 생겨야만 의류 구매하는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의류 회사에서는 나 같은 소비자를 싫어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런 패션을 트렌드를 따르는 것에 대해서 반대를 하며 보수적인 생각을 하는 것도 절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트렌드를 꼼꼼히 챙겨보는 편이다. 이런 스타일과 이런 아이템들이 트렌드에 있구나. 리스트까지 만들어 가면서 까지 말이다.


무엇이 되었던 많이 아는 것은 삶에 꽤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분야이든 오랜 기간 동안 지속 가능한 현명한 결정을 내리려면 비옥한 토양이 뒷받침되어주어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든 자를 돕고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니까.  단지 나의 10대와 20대를 지배했던 패션이 더 이상 나의 주 관심사가 아닌 것뿐이다.   


이런 생각과 생활에 익숙해져 보다 보니 수입의 대부분이 패션 아이템을 마련하는 데에 지출되었던 20대 때와 30대 초반 때와는 달라졌다. 대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나 가족들과 함께 하는 것들이 내게는 우선적인 지출이 되었다. 패션 아이템 하나를 마련하기 위해 용돈을 죄다 지출하고, 같은 처지였던 친구들과 학교 매점 앉아 국진이 빵과  핑클빵으로 끼니를 잇던 1999년의  대학 새내기 때의 나와는 다른 모습이다. 그렇다고 이런 나의 과거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관리는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다른 것이기 때문에 옳고 그른 것이 없다. 어떤 이는 멋진 몸매를 가꾸는 데에, 어떤 이는 트렌디한 아이템 마련으로 자기 관리를 하고, 어떤 이는 배우는 것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면서 자기 관리를 한다. 어떤 방법이 되었던 자기 관리에 소훌하지 않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속적인 자기 관리는 일상을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광택제가 되어준다.


한국은 시즌마다 유행이 코로나처럼 번진다. 해외 생활 초반기에는 한국에서 돌아올 때마다 유행 중인 옷들을 트렁크에 가득 채워오곤 했는데, 집에 도착할 때마다 주의 사람들에 비해 너무나 하이패션의 새 옷을 입을 입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오히려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것만 같아 불편해졌다.


한국에서 공수해오던 수많은 하이패션의 아이템들은 자연스럽게 옷장에서 긴 잠을 자다가, 결국에는 불필요한 물체로 전락하여 짐짝 취급을 당하다가 나의 공간에서 추방당했다. 반복된 한국 출신 의류 추방 경험에 의하여  나의 살던 고향에서  돌아올 때마다 트렁크를 채워 오던 고향 방문 쇼핑 전통과 자연스럽게 이별했으며 트렌드와는 점점 멀어졌다.


유행에 관심이 없어지니 덕분에 사람을 만날 때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캔하던 패션 스타일 훑어보던 나쁜 습관도 자연스럽게 고쳤다. 그리고 트렌드 대신에 내게 잘 어울리고 내가 좋아하는 한결같은 나만의 스타일을 마련할 수 있었다.


유행은 죽었다. 자기 자신을 입어라. “


스위스 출신의 스트릿 패션 포토그래퍼 이반 로딘의 한마디.


사실 유행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항상 나만의 스타일에는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 그런 나 역시 나만의 스타일을 마련하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유행하기 때문에 뒤처지기 싫어서  나의 체형과 맞지 않는 스타일을 시도하던 시절도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으로 사는 방법을 깨우치는 것처럼 나만의 스타일을 갖는 것에도 끊임없는 연습과 시도가 필요하다.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냐고 말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겠지만 편집의 공식은 나만의 패션 스타일을 만드는 데에도 적용된다.

 

1. 나를 잘 알아야 한다.


2. 나의 체형과 취향을 파악해야 한다.


3. 내게 맞지 않는 것들은 과감히 옷장에서 내보내고, 나의 단점을 커버하고 체형의 장점을 부각하는 패션 아이템 리스트를 만들어내야 한다.  


4. 그리고 내게 어울리는 것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들은 구분하고 지우고 건너뛰고 복사하고 카피하는 편집 버튼을 과감히 눌러야 한다.


스타일을 편집하는 기술도 시간과 경험에 의해서 단련된다.  많이 경험하고 시행착오를 거쳐 나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아지면 유행하는 스타일 벗어나 그 속에서 나다운 스타일을 찾을 수 있다.


가령 나 자신이 유행에 집착하는 스타일이라고 가정하자. 하지만 트렌드를 쫒으면서도 자기 자신의 모습이 존재하는 것인지 짚어보는 것은 중요하다.


자기만의 취향과 안목이 있으면 큰돈을 소비하지 않더라도 스타일도 일상도 꽤 즐겁고 알차게 채워 나갈 수 있다.

 

나는 유행이 죽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 자신을 입는 것이 좋다.


한동안 스타일이 내게 밥을 먹여주었지만 내 모습이 촌스러워 보여도 상관없다. 내겐 나만의 스타일이 있다. 누군가의 기준에서는 유행을 역행하는 내 모습이 촌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초라해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편집 세상에서는 특별한 어학사전이 있다.

 

촌스럽다.


세련됨이 없다.라는 어학적인 의미가 아닌 솔직하다는 나만의 어학사전으로 다시 쓴다.


트렌드와 세련됨에 집착하며 살았다.  남들이 생각할 나의 모습에 연연했다. 최첨단 트렌드로 무장한 나의 껍데기는 그럴듯했었지만, 다 떨어져 구멍이 나고 늘어져서 너덜거리는 속옷들이 그 화려함 뒤에 숨어있었다. 그리고 이런 이중적인 허세녀의 진실이 혹시라도 온 천하에 밝혀질까 봐 마음은 불안하고 고단하기만 했다.


크로와상보다는 단팥빵을, 달콤한 초콜릿에 찍어먹는 스페인 꽈배기 추로스보다는 흰 설탕 가득 묻은 밀가루로 만들어진 꽈배기를, 파스타보다는 돼지고기 팍팍 넣은 묵은지 찌개를, 럭셔리한 레스토랑보다는 푸짐한 밑반찬이 리필되는 기사식당을, 아메리카노보다는 믹스커피를 좋아하는 촌스러운 취향을 가진 솔직한 나 자신을 나는 진심으로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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