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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우주인 Aug 13. 2022

외갓집 가는 길


어릴 적 외갓집에 가는 길을 꽃냄새와 단무지 냄새로 기억한다. 반포와 사당동에 살던 때엔 외갓집에 나를 데려다 줄 고속버스가 있는 고속터미널에 가기 위해선 꽃 지하상가를 지나야 했다. 나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냄새에 더 예민한 아이였나 보다. 알록달록한 빛깔로 제 모습을 뽐내는 꽃들의 생김새가 아니라 시큼한 꽃 냄새만 기억에 남아있다. 어쩜 배려 없이 빨리 걷기= 엄마표 축지법을 내게 전수해준 친정엄마의 손에 이끌려서 인파 속에서 엄마를 잃지 않으려 발걸음을 맞추느라 꽃을 볼 여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때 상계동으로 이사 오고 난 후엔 외갓집에 가는 길의 시작은 꽃냄새에서 단무지 냄새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 내가 살던 상계 2동에서 제일 가까운 지하철 역인 노원역으로 가기 위해선 단무지 공장을 지나야 했다.


 “꽃냄새와 단무지 냄새 중에 무엇이 더 좋아?”라고 물으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같은 대답하기 부담스러운 질문이 아니기 때문에 즉시 대답할 수 있다.


“난 꽃냄새가 더 좋아.”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단무지가 발생시키는 강력한 그 냄새 때문에 숨을 멈추고 단무지 공장을 지나곤 했다. 글을 쓰다 보니 지금까지도 고치지 못하고 있는 콧구멍을 벌렁거리는 버릇의 시작은 그때부터였던 걸로 의심된다. 외갓집에 갈 때마다, 지하철을 타고 나들이를 갈 때마다, 단무지 공장을 지나야 했다. 참았던 숨을 터뜨릴 때마다 유독 더 심하게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나는 한동안 노란색을 좋아하지 않았고 단무지도 먹지 않았다.


팬데믹의 끝자락에서 아이들과 외갓집이 있는 나의 살던 고향에 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오랜 기다림과 지루하고 까다로운 절차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꼬리가 아홉이 달린 구미호 변신하여 내 영혼을 홀리기 시작한다. 흔들리는 정신줄을 가다듬기 위해 매일 다이어리를 쓴다. 나의 살던 고향에 가면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 만나고 싶은 사람,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등등 많은 것들이 적어 내려간다. 꼭 하고 싶은 것들은 형광펜으로 하이라이트를 하기도 한다. 어쩜 다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무것도 못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놓은 고향방문 리스트들을 마음 울적한 날마다 꺼내본다. 기분 좋은 상상은 비타민이 된다. 복용한 비타민의 흡수 최대화를 위해 침대와 한 몸이 된 후, 유튜브를 통한 생생한 고향의 비주얼도 추가 처방한다.


1. 직항 비행기가 절반 이상 비행을 멈추었다.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는 것에도 꽤 많은 수고와 시간을 사용했다. 결정적으로 평소 한국행 때 보다 더 많은 돈을 소비해야 했기에 많은 검색과 고민이 필요했다. 경유하는 나라의 시시각각 달라지는 코비드 규제 정보에도 귀를 기울여야 했다.


2. 팬데믹 시대가 도래한 이후로 예약제로 운영되었던 한국 영사관 미팅을 3주 동안 기다렸다. 만료된 아이들의 호주 여권과 한국 여권을 만들었다. 외국인 남편과의 호주 내에서의 가족관계를 증명하는데 꽤 까다로운 절차를 거쳤다. 호주의 공공기관의 업무 속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느리고 간단한 증명서에도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3. 한국 영사관과의 미팅으로 인하여 추가하게 된 비자 업무를 위해 또 다른 미팅을 5주 더 기다려야 했다. (팬데믹 기간 중 한동안 외국인들은 한국 방문에 비자 필요했다.) 남편의 한국 여행 비자받기는 발을 동동거리고 잠을 편히 자지 못할 만큼 시간이 촉박했다.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가까스로 출국 이틀 전, 우편으로 비자를 받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한국 여행비자가 전자 여행 허가 KETA로 전환되어 비자 신청 자체가 필요 없어졌다. 인터넷에서 접했던 내 것 같지 않던 신조어 “대환장 파티”의 의미를 가슴 깊이 음미했다. 비행기를 타기 직전, PCR 코로나 테스트를 받을 때에도 불안과 초초는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 내 가슴속에 모터를 단다.


“두구두구두구”


삼 년 동안 거의 닫혀있던 시드니 공항엔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 일할 사람과 치울 사람이 없으니 쓰레기통에 쓰레기가 가득하고, 화장실엔 배설물이 넘쳐나서 악취를 풍긴다. 퇴비를 막 공급한 논길을 걷는 줄 알았다. 이것이 정녕 공항의 냄새란 말인가? 탑승수속도 출국심사도 노동력의 부족과 자동 시스템의 에러로 아수라장이다. 공항 안에 이 나라를 탈출하기 위해 분명 험난한 과정을 겪었을 난민 코스프레 에너지가 가득하다. 비행기에 올랐을 때에도


“내가 과연 한국에 갈 수 있을까?” 불안했다.


“두구두구두구”


한국 입국을 위해 준비한 종이들이 담긴 파일을 소중히 안아본다. 착륙을 하고 입국 심사를 통과해야만 내가 안전히 고향에  것을 믿을  있을  같다.  아이들에겐 외갓집 가는 길은 어떻게 기억될까? 공항에서 마주쳤던 이들의 초초함과 불안의 에너지 그리고 시드니 공항의 온갖 오물 냄새로 기억되면 어떡하지? 다만 어릴 적의 나처럼 외갓집 가는 길에서 맡았던 단무지 냄새로 인해 시작된 콧구멍 벌렁거리는 버릇만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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