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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우주인 Aug 20. 2022

서울

82828282


서울이 내게 인사한다.


828282 828282 82828282


나의 살던 고향에 도착하던 밤. 화려한 도시의 불빛과 네온사인을 보느라 아이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창밖에 띄엄띄엄 보이는 빨간색 십자가들이 무엇인지 아이들은 궁금해했다.


“저 빨간 십자가들은 교회란다”


church가 한국말로는 교회라는 것을 아이들은 그날 밤 알게 되었다. 난 서울의 밤엔 빨간색 십자가가 하늘의 별만큼 많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시골 ;명사 1
도시에서 떨어져 있는 지역. 주로 도시보다 인구수가 적고 인공적인 개발이 덜 돼 자연을 접하기가 쉬운 곳을 이른다. 네이버 어학사전에서




시드니는 호주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바쁜 도시이지만 꽤나 시골스럽다.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아파트에 살지 않고 집 앞에 당연히 상가나 상점이 없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배달문화가 어쩔 수 없이 정착되었다. 나와 한 이불 덮고 자는 남자를 포함해서  


“배달받는 것보다는 직접 픽업하러 가는 게 더 좋은데”


하는 신비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도 꽤 있다. 로켓 배송 같은 빠른 배달은 당연히 없으며 경험한 적도 없으니 필요성도 모른다.


지하철 역이나 길에서 서서 먹는 스크릿 푸드도 없다. 편의점은 당연히 24시간 열지 않는다. 코로나가 지구 세상에 찾아오기 이전부터 시드니는 어둠이 찾아오면 잠에 빠진다. 나이트클럽도 12시에 문을 닫는 곳이 대부분이다. 술을 구입할 수 있는 보틀 샵도 보통 10시에 닫으며 대목인 공휴일에 문을 닫기도 한다.


코카콜라사에서 얼마나 큰돈을 시드니에 지불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코카콜라 사인을 제외하고 시드니에 네온사인은 금지되어있다. 시드니! 이 도시는 서울에서 당연한 것은 당연하지 않고 당연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도시이지만 어쩜 도시가 아니고 시골 같지만 또 시골도 아니다.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마법 같은 시골 도시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은 서울의 82828282 에너지에 즉각 반응한다


 “ 너 정말 부담스럽다. 오버”





서울엔 사람이 많다. 여기도 저기도 지하철이나 버스도, 슈퍼마켓도, 쇼핑센터도, 집 앞도, 엘리베이터에도, 사람들과 몸과 몸이 부딪히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 서서 있는 것이 이렇게까지 피곤할 줄이야. 어느새 사람들 사이에 밀리고 밀려 인간 밀대가 된다. 어쩌다 지옥철을 탈 때면 헤어지지 않으려 우리 가족은 양손을 꼭 잡는다. 때론 2인 1조로 팀을 나누어 중대한 작전을 수행한다.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생기면 아이는 해맑은 목소리로


“자리 생겼어”


를 외친다. 다른 사람들의 배려심을 순간 자극하여 시간을 벌고 빛의 속도로 달려가서 자리를 확보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이산가족이 되는 우리는 멀리서 눈으로 서로의 안위를 확인한다. 그 긴 시간 동안 통하지 않았던 가족 텔레파시를 터득하게 해 준 ‘대중 고통’에 무한감사.


“총총총”


계단과의 힘겨루기는 어떠한가? 아이들은 이렇게 많은 계단을 심지어 많은 사람들과 줄줄이 맞춰 걸어본 적이 없다. 버스를 타면 계단을 재빨리 오르지 못하는 아이들 때문에 뒷사람이나 버스 기사님께 자주 핀잔을 듣는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바쁜 도시는 처음이라 아이들이 8282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어요”


팻말을 들고 다녀야 할까? 빙글빙글 돌고도는 서울.


“엄마 나 피곤해”


아이들은 서울에서 자주 피곤함을 호소했다.






서울엔 맛있는 게 많다. 코로나 때문에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거리와 지하철역 구석구석엔 스트릿 푸드들이 즐비하다. 문 앞을 나서면 화려한 간판, 현수막, 냄새로 유혹하는 음식점들이 어서 오라 손짓한다. 친정 집 4킬로 방면에 있는 음식집에서 하루에 세끼를 번갈아 가며 식사생활을 한다 해도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다 방문할 수 없는 것 같다.


나의 살던 고향에 도착하고 처음 일주일은 자가격리를 했고 두 번째 주에는 서울여행을 했다. 서울이 한눈에 보이는 커다란 창문이 있는 숙소에서 머물렀다. 서울여행 첫날이었다. 겨우 한 시간의 시차이지만 아이들은 시골 아이들답게 해가 뜨기도 전에 기상해서 배가 고프다 아우성이다. 숙소 바로 밑에 있는 24시간 열려있는 편의점에서 아침을 구입할까 하다가 친구가 알려준 배달 서비스 어플이 떠올랐다. 다급하게 어플을 다운로드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는 것이 어느새 귀찮은 일인이 돼버렸지만 시간과 수고를 사용하여 신세계인 배달 어플에 등록을 하고 식당 서치를 시작한다. 다행히 숙소 주변에 24시간 영업하는 식당이 몇 있다. 새벽 다섯 시에 주문했다.


“딩동”


15분 만에 도착한 아침 한상. 믿을 수가 없다.


“새벽시간에는 주문량이 거의 없어 더 빠르게 조리하고 배달할 수 있어요”


나의 감탄에 밝게 웃으시며 대답해주시는 배달의 기수님께 감사를 전했다.


서울구경을 하며 며칠은 숙소 앞 빵집에서 아침을 해결했다. 일곱 시에 문을 여는 프렌차이저 빵집들은 전국 방방 곳곳에서 몇 킬로 간격으로 자리 잡아 온 국민에게 빵을 공급한다. 덕분에 빵 냄새를 맡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10000원에 네 식구의 아침식사를 거뜬히 해결할 수 있었다. 부담 없는 가격의 분식집은 어떤가? 돈가스와 함께하는 분식 세트는 우리 가족의 단골 메뉴이다.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에는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치킨까지 24시간 제공된다. 김밥을 말고 치킨을 튀기며 자급자족하며 살던 시드니에서의 나의 요리 노동 세계에 드디어 휴업이 찾아왔다.


우리 가족의 서울구경은 좀 남달랐다. 숙소 밖을 나가는 것을 피곤해하는 아이들 덕택에 창밖의 서울의 풍경을 바라보며 배달음식과 함께했다. 서울은 그림의 떡!


“엄마 치킨 시켜줘”


아이들은 숙소 창밖에 보이는 화려한 서울을 구경하며 먹는 코리안 프라이드치킨을 좋아했다. 이름하야 ‘서울의 닭 패키지’






서울엔 혼 날일이 많다. 평소에는 혼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서울에서는 혼나는 일이 된다. 그 시작은 마스크. 팬데믹 기간 동안 호주는 단 한 번도 아이들이 마스크를 쓰는 것을 의무화한 적이 없다. 도시 전체를 몇 달 동안 꽁꽁 닫아놓고 인간 간의 만남과 자유를 강력 규제한 적은 몇 회 있지만 말이다. 마스크를 써본 적이 없으니 한국에 오는 비행기 안에서 시작된 마스크 생활이 아이들에겐 갑갑하다. 처음 몇 주는 아이들이 마스크를 코 끝까지 올려 제대로 쓰는 것은 아마도 내가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기적을 이루는 일만큼 힘든 일 거라 생각했다.


“잔디를 밟지 마세요”


보기 위한 잔디밭이 대부분인 서울. 잔디를 밟고 뒹굴며 자란 아이들은 잔디밭에 들어가서 잔디를 밟아서 혼난다. 아이들은 걷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무엇이든 올라탔다. 놀이터에서, 방과 후에, 학교에서,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은 친구들과 나무를 올라타며 놀았다. 서울의 거리와 공원에는 나무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나무에 올라타서 혼난다. 혼내는 사람은 경비 아저씨가 되기도 하고, 지나가던 행인이 되기도 하고, 외할머니가 되기도 한다. 나와 남편은 나무 위에서 위험에 처한 아이들을 방관하는 무책임한 부모로 극진히 대우받았다.


아이들에겐 나무는 올라타기 놀이터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할 이유가 없었던 아이들은 서울의 대중교통에서 많은 사람들 사이에 가만히 서 있지 못하고 움직여서 혼난다. 대중 음식점에선 돈 내고 먹는 눈칫밥도 금세 익숙해졌다. 시골아이들에겐 서울은 혼만 내는 못된 도시이다. 혼내고 싶지 않으나 혼낼 수밖에 없는 아빠와 엄마도 서울 생활이 편치만은 않다. 갑작스럽게 생겨난 규칙들을 생전 처음 경험한 아이들은 서울에게 화를 낸다.


“엄마 나 서울 진짜 싫어”






서울엔 에너지가 많다. 복지국가라 불리지만 불편하고 후진  투성인 호주. 안전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심심한 천국에서 살다보면 사는   재미가 없다. 내겐 드라마가 필요하다. 8282 8282 8282 서울이 자꾸 말을 걸어서 서울의 에너지를 주워 먹기로 작정한다. 혼자 재래시장과 동대문 새벽시장을 미친 듯이 쏘다녔다. 흥정하는 소리와 서로 밀고 밀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있으니, 그동안  어깨를 짓누르고 목구멍에 가득  있던 체증 같던 느림 에너지가 쑤욱 내려간다.


“얼쑤”


하고 춤사위라도 한판 벌일 뻔했지만 참았다. 시장  복판에서 춤출 만큼 내가 그렇게까지 미친년은 아니다. 숨통이 트인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묵은 체증을  밀어낸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들과 길에 붙어서서 떡볶이와 오뎅을 먹으며 허기진 배를 채운다. 새로운 유행인듯한 매운 오뎅 국물이  몸을 따뜻하게  달궈준다. 이제  안에서 깊이 잠자고 있던 8282 DNA 주체를  하고 꿈틀거린다.




서울이 내게 자꾸만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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