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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가지 않은 길 Oct 22. 2022

겨울보다 추웠던 여름

노점상

  캠프로 돌아가는 길. 그동안 사정을 봐주던 사막의 폭군이 본색을 드러냈다. 달걀을 올려놓으면 반숙이 된다는 모래밭 열기. 사막은 거대한 가마솥이었다.

  한국의 삼복더위가 아라비아 사막에 견주랴만, 7년 전 무길은 누구보다 지독한 더위와 싸웠다.  

                              



  푹푹 찌는 7월 중순. 동대문시장 앞에 모습을 드러낸 냉차 구르마. 통 안에는 두둥실 얼음덩이가 떠있고, 씽씽 바람개비가 돌아가며 노오란 오렌지 주스를 차 냈다. 분수처럼 퍼져나간 주스가 물통을 때리고 유리벽을 따라 빗물처럼 흘러내린다.

  무길이 구르마를 시장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사람이 많은 곳이라야 잘 팔릴 테니 시장만 한 곳이 없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얼마를 들어가니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들을 데리고 나온 중년 아주머니가 그를 세웠다.

  “냉차 두 잔만 주세요. 웬 날씨가 이렇게 덥담.”

  첫 번째 손님이었다. 이렇게 금방 손님을 맞다니. 해볼 만한 장사임이 틀림없다. 무길이 마음이 설레며 기대감이 부풀었다.

  아주머니가 첫 잔을 아들에게 주고 다음 잔을 받아 들었다.

  그때, 갑자기 주위가 소란해졌다.

  “아니, 여기가 어디라고 냉차 구르마가 들어오는 거야!”

  “여보. 당신 제정신이야!”

   ····································

  상인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아차, 여기는 함부로 들어오는 곳이 아니구나. 비로소 그는 시장 안에 냉차 장사가 자기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들 터가 좋다는 걸 몰랐을 리 없는데.

  “빨리 나가지 않고 뭐 하는 거야!”

  "빨리 꺼지라고!!!"

   ····································

  갈수록 고함소리가 커졌다.  앞뒤 좌우에서 쉴 새 없이 터졌다.

  무길이 마음이 조급해졌다. 빨리 나가야 할 텐데.··· 아주머니와 아들의 손에 들려있는 냉차 잔을 바라봤다. 너무 차가워 후후 불며 마시느라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아이, 급해 죽겠는데, 저러다가 언제나 다 마시려나.

  “그래도 안 나가!?”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거야!!!" 

   ····································

  똥끝이 탔다. 난들 어쩌란 말인가. 저걸 다 마셔야지.··· 그러나 모자의 냉차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아줌마가 좀 어떻게 해줬으면······.

  “야, 말이 말 같지 않아!”

   ································

  으르렁대는 상인들의 말투가 잡아먹기라도 할 기세였다.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남의 속을 몰라주는 아주머니가 야속하고 원망스러웠다.

  “썩 꺼지지 못해!?”

  ··························

  이젠 어디서 뭐라도 날아올 듯 험악해졌다. 모두 저쪽 사람들뿐, 그의 편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였다. 아주머니가 상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아유, 왜들 이래요. 왜들! 내가 세웠어요, 내가!”

  주위가 조용해졌다. 너도나도 한 마디씩 던지던 말들이 쑥 들어갔다. 아이 하나를 놓고 못살게 굴던 떼거지들이, 아이 엄마가 나타나자 움찔해진 꼴이었다.

  그녀는 마시던 냉차를 그대로 바닥에 흘려 잔을 비웠다. 아들을 달래서 두 개의 빈 잔을 무길에게 돌려줬다.

  “여기 있어요. 괜히 나 때문에 고역을 치르네요. 미안해요.”

  냉차 값을 치르며 말했다.

  “같이들 벌어먹고 살지, 원.”

  아주머니가 상인들에게 이맛살을 찌푸리고는, 무길에게 미소를 지으며 엄지 손가락을 펴보였다. 나는 당신 편이라는 듯.

  무길이 코끝이 찡했다. 가슴이 먹먹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나를 위해 나서 주는 사람··· 세상에 나 혼자만이 아니구나. 그는 아주머니에게서 6·25 사변 통에 사망해 기억에도 없는··· 어머니를 느꼈다.

  다시 상인들이 소리를 질러댔지만, 이젠 당황하지 않았다.

  “나가면 될 거 아뇨! 나가면! 너무 그러지들 마시오.”

 여유 있게 시장 밖으로 나왔다.


  시장에서 쫓겨난 그는 대로변 행인이 많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얼마 있으니 시골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왔다.

  “냉차 한 잔 주게나. 얼마인가?”

  “네, 5원입니다.”

  할아버지가 냉차를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돈을 내며 말했다.

  “시골에서는 얼마든지 있는 게 물인데, 서울에서는 돈을 내고 사 먹어야 해.”

  할아버지가 굽은 허리를 펴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아까부터 저쪽에 있는 인상 험악한 냉차 장사가 신경이 쓰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손가락으로 다른 곳으로 가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못 본 척하고 있었더니 녀석이 커다란 문신이 새겨진 팔을 흔들며 다가왔다.

  “야, 너 말이 말 같지 않아? 짜식,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게. 사람 성질 돋우지 말고 빨리 꺼져!”

  녀석과는 체격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는 문신에게서 멀리 다른 자리를 찾아갔다. 한데 문신은 거기만 있는 게 아니었다. 좋은 자리는 이미 다른 문신들이 차지해 터 잡기가 쉽지 않았다. 얼마를 헤맨 끝에 의정부행 버스 정거장 앞에 구르마를 세웠다.  

   

  많은 행인이 지나갔지만 냉차 찾는 사람은 없었다.······ 메모장을 구르마 위에 얹어 놓고 보며 손님을 기다렸다. 30분 정도 지나자 의정부행 버스가 도착했다. 여기는 시발점이라 오래 정차하므로, 최소한 운전기사와 버스안내양은 손님이 되리라 기대됐다.

  맛있는 것을 바라고 엄마 얼굴을 쳐다보는 아이처럼 그쪽으로 눈길을 보내고 있으려니, 버스 문 앞에서 다리를 꼬고 서 있던 안내양이 손가락을 까닥여 그를 불렀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잔을 받쳐 들고 다가가자 그녀는 더위에 말하기도 귀찮은지 쥐고 있던 주먹을 돌려 엄지손가락으로 운전기사를 가리켰다. 운전기사에게 잔을 올리고 내려가려니, 그녀가 손가락으로 뒤통수를 톡톡 치고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막 대하는 태도가 거슬렸지만 그런 걸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알았어, 알겠다고.  

    

  그렇게 일주일이 갔다. 처음 기대와는 달리 수지가 맞지 않았다. 장사는 자리가 생명인데 할 만한 곳은 문신들이 차지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더 좋은 자리를 찾고 장사하는 요령도 생기면 나아지겠지 하고 마음을 다독였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도 행인 중에 고교 동창인 오태일이 보였다. 무길의 동네에서 제일가는 부자로 아버지가 소작하던 지주의 아들인데, 학교 성적이나 품행은 형편없는 녀석이었다. 얼굴을 돌려 피하려 했으나 그쪽에서 먼저 알아봤다.

  “여-어,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여기서 이렇게 만나다니!”

  “그러게. 세상 참 좁군.”

  무길이 쑥스럽게 답했다. 태일의 가슴 위에서 대학 배지가 반짝했다.

  “대학에 들어갔구나.”

  “그래, xx대.”

  녀석이 어깨를 으쓱했다.

  돈만 있으면 저렇게 쉬운데 ······. 지금 무길에게는 세상에서 대학 배지보다 좋아 보이는 건 없었다. 

  “공부 잘해봤자 말짱 헛일이군. 우리 학교 수재 강무길이 이렇게 될 줄이야.”

  녀석이 허세를 부리더니 이내 난처한 듯 말했다.

  “모처럼 만났는데 미안해서 어떡하지? 데이트 약속 시각이 급해서 말이야.”

  “그럼 빨리 가 봐야지.”

  “깔치 하나 꾀었거든.”

  그가 새끼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으스댔다.

  “너는 알 턱이 없지만, 대학은 별천지야, 별천지. 그럼 장사 잘해라.”

  녀석이 야릇한 웃음을 흘리며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무길. ‘너는 알 턱이 없지만···’이란 말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 심사를 건드렸다.


  다리도 제대로 뻗을 수 없는 비좁은 공간에 장정 여럿이 누워있었다. 노점상들이 이용하는 하루 50원짜리 숙소였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장사를 접고 들어 왔는데, 늦게 온 무길은 몇 개 안 되는 목침 차지가 오지 않았다. 똑, 똑, 똑, 똑, 바닥에 받쳐놓은 깡통 속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신경을 거슬렸다. 빈대가 있는지 옷 속에서 스멀거리고 물어댔다. 그래도 그는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다.      


  장사는 지지부진 나아질 조짐이 없는데 더위는 한풀 꺾이고 있었다. 돈을 아끼려고 점심을 삶은 달걀 하나로 때웠다. 그것으로 저녁까지 버티면 뒷골목에서 파는 점심값 50원이 굳는다. 50원이면 냉차 열 잔 값이니 적지 않은 돈이었다.     


  걸핏하면 갈비뼈가 엇갈린 듯 가슴이 결렸다. 숨을 들이쉬면 압박이 가해져 통증이 더 심해졌다. 바닥에 주저앉아 통증 부위를 감싸 안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가라앉기를 기다려야 했다.

  저쪽에 허리에 경관봉을 찬 경찰이 오고 있었다. 경찰은 그것으로 냉차 구르마를 부술 것이다. 무길은 허겁지겁 구르마를 골목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또 가슴이 결렸다. 허둥대고 뛴 탓인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점점 더 조여들어 숨이 버겁다. 주위가 빙빙 돌아가고 있었다. 

                                   



  머리가 질끈 댔다. 왱왱대는 모기소리도 들렸다. 여기가 어딘가, 눈꺼풀을 떼려고 안간힘을 썼다. 뿌연 안갯속에 초등학교 시절 돌아가신 할머니 얼굴이 어른거렸다. 차츰 안개가 걷히며 주름살이 사라지고, 젊은 여자가 걱정스럽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신이 좀 드세요?”

  간호사복이, 그리고 흰 가운에 청진기를 걸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길에 쓰러져 있는 걸 행인들이 데려다 놨단다.

  “무슨 일을 하는 젊은이인지 모르지만, 이대로 가면 영양실조와 과로로 위험하네. 휴식을 취하며 영양을 보충해야 해.”

  청진기의 남자가 말했다.

  학교 선생님 같은 충고, 선생님은 언제나 말 안 해줘도 알고 있는 얘기만 한다. 청진기는 남의 처지를 모르고 한가한 충고를 했다.

  아직은 안 된다며 한사코 말리는 의사와 간호사를 뒤로하고, 비실거리며 병원 문을 나섰다. 한시도 쉬어서는 안 될 것 같아 누워있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천일장 부회장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구멍가게라도 자기 장사를 해야지, 월급쟁이는 평생 월급쟁이라고. 그는 회장과 창업 멤버인데, 회장은 자기 장사로 자신은 월급 받는 입장으로 시작했단다. 지금에 이르러 회장은 10여 개나 되는 업소를 거느리고 있지만, 자신은 그 밑에서 월급 받는 처지를 면치 못한다는 것이었다.

  새겨둘 필요는 있겠지만, 적금을 헐어 시작한 자기 장사는 말처럼 쉽지 않았다. 빠른 시간 내에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 주지 않았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오니, 냉차 구르마는 보이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메모장만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겉표지에 적혀있는 문구가 그의 눈을 덮었다. ‘Where there is a will, there is a way.’

  구르마는 보건소 차가 싣고 갔을 게 뻔했다. 경찰은 때려 부수고 보건소 직원은 통째로 싣고 갔다. 전 같으면 벌금을 물고 찾아오겠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었다.

  병원에서 오는 동안 곰곰히 생각해봤다. 의사의 충고에 대해. 장사를 계속하느냐 마느냐에 대해.··· 냉정하게 바라보니 그것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칫하면 대학문 앞에 가기도 전에 죽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불쑥 당치도 않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부모님이 있으면 좋겠다. 다른 애들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데. 먹고 자는 거나 등록금 걱정은 안 해도 되는데··· 나도 부모님이 있으면 좋겠다.   

                                   


     

  그게 7년 전 일이었다. 자신의 과거였지만 정말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싶었다. 한 달 1,800원을 받아 적금을 붓던 시절도 있었고, 5원짜리 냉차 한 잔을 못 팔아 안달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 1,800원은 일당에도 못 미치는 금액에 불과했고, 5원은 돈이라 할 것도 없었다. 칼바람 속 천일장 옥상에서 바라보던 딴 세계 사람 쇼윈도의 세계. 언제부턴가 자신이 그 별천지에 들어와 있었다.    

 

  “강형,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는 거요? 꼭 다른 세상에 가 있는 사람 같네.”

  하기사가 차를 세우며 말했다. 어느새 캠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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