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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붕이 Nov 24. 2024

일 잘하긴 글렀나

처음 찾아온 두통

 11월 22일은 한 달간 학생들과 꼬물꼬물 준비한 학급학예회 날이었다. 전날 5~6교시 리허설을 마치고 함께 준비하거나 개인적으로 준비한 작품을 선보이는 날! 학생들은 몰라도 담임선생님은 엄청 떨리는 날이다.

 스포츠강사님이 체육수업을 진행해 주시고 학생들이 뛰고 달리고 체육활동을 하고 난 후, 4층까지 올라가는 계단에서 제대로 운동도 안 한 나만 다리를 무겁게 끌어올리며 힘들어하는 게 일상인 것처럼, 출연은 학생들이 하건만 스텝인 본인만 힘들게 느껴졌다.

 리허설 전날 퇴근시간보다 늦게까지 프로그램으로 쓸 PPT를 만들고 리허설 당일은 오전부터 함께 무대를 꾸몄다.

 실전과 비슷한 리허설을 마치고 모두가 신나서 어수선하게 돌아가고 혼자서 책상 배치와 꼼꼼한 청소 마무리까지 하고 나니 학예회를 위한 준비 끝!


 마음 홀가분히 집으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2차례 아들과 산책하고 짜증 내는 옆에서 달래기, 아들과 아빠 기다리기로 현관문 바라기를 한 후 남편과 바통터치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래서일까 아들과 산책할 때 원인 모를 짜증에 심적 스트레스가 컸었나? 새벽녘에 뒷머리 두통에 잠을 깼다. 뒷목 뻣뻣, 뒷머리는 꾹꾹... 그래도 잠은 계속 잤다.

 아침인 학예회 당일, 두통이 가시질 않았다. 다른 날도 아니고 피할 수 없는 이 날에... 출근이냐 병원행이냐 고심하다 출근과 동시에 보건실로 향했다. 친정어머니께서 마른 몸에 당뇨와 고혈압이 있으셔서 혹시나 해 가보니 평소보다 높은 혈압으로 138/88이 나왔다.

 쉰 가까운 나이에 정상혈압만 있는 줄 알고, 가끔 몸이 불편할 때면 저혈압에 가까워 80/50까지 떨어지는 혈압이라 웬일인가 했었다.

 수축기 혈압 140, 이완기 90이 넘어가면 고혈압 의심군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낮은 혈압이 아니란 말도 들으면서 보건실을 나와 교실로 올라갔다.


 1, 2교시는 교과수업, 스포츠강사님 수업이라 쉬엄쉬엄 보내고 대망의 학예회 시간! 스텝, 사진촬영기사, 프로젠테이션, 음악 담당까지 한 번에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시간은 후딱 갔다.

 점심시간 10분 전까지 무대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리허설 때까지 없던 순서를 넣어 시간 외에 하염없이 늘어져 끊었던 학생이 혼자 맘 상해 울어서 달랜 후, 김치볶음밥을 안 먹는다고 더 속상해 엎드려 버린 그 학생을 위해 급식실에 가서 맨밥을 구해 김자반을 뿌려와서 제공했다.

팀별 발표를 한 친구들만 단체사진을 찍었다. 개인발표만 했던 친구들은 왜 이 사진에 없는 걸까...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5교시 끝나면 미리 예정된 병조퇴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기운을 냈다.

 월요일 2교시에 수학 단원평가가 예정되어 있어 마지막 문제 풀이 단원을 풀어 제출한 학생에게는 학예회 뒤풀이로 노래방 마이크를 제공하기로 했다.

 문제풀이를 못하는 학생을 위한 일대일 공부, 수학부장도 힘을 보태고 특수학생 모니터 하시는 선생님께서도 같은 모둠 학생을 가르쳐 주셔서 모두의 뒤풀이, 노래방 타임이 있었다.

 한쪽에서 알림장 내용으로 라벨을 만드는 것까지 해서 일찍 끝마치려 책가방까지 든 학생들을 진정시켜 하교시간 맞춰 교문까지 내려갔다.


 오늘 방과 후에 공부하는 학생이 잘하고 있나 확인하고 월요일 시험에 백지시험지를 내겠다는 위험한 신호(이미 2학기 들어서 3번의 백지 수학시험지를 낸 적 있는 학생이었다.)를 감지해서 어머니께 연락을 했다. 방과 후 전담하시는 강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고민타임도 잠시, 학예회 끝난 무대 정리와 시간표 스티커 뒷 종이를 바닥에 던지고 간 학생 몇 명의 자리를 정리하고 교실청소 오시는 여사님께 교실정리를 부탁드렸다. 병조퇴 시간보다 1시간이 지난 시간, 근처 지하철역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지하철 환승으로 40여 분 걸리는 한방병원에서 허리, 어깨 도수 치료를 받으며 뒷머리 두통에 대해 이야기하니 갑자기 스트레스를 받으셨냐고 물어본다. 혈압이 평소보다 높다는 말씀만 전달하고 알록달록한 우리 반 학예회 출연진 학생들의 모습과 뒤풀이까지 파노라마로 엮어서 이야기 나누다 보니 40여 분이 뚝딱 갔다. 아무래도 목까지 도수치료를 더해 주셨는지 원래 치료시간보다 더해 주신 듯했다. 우훗!(감탄사)

 

 한방 원장님께도 뒷머리 통증을 말씀드리니 스트레스 이야기를 또 하셨다.

 10월 말경부터 우리 반 수학 포기 시도 학생 몇 명 때문에 수학공부시간이 빡빡해지고, 한걸음수학이라는 교재도 추가 점검한다. 채점을 하다 보니 잘못 계산하는 부분을 추가점검하며 빨간펜지도까지 하다 보면 퇴근시간 넘기기는 일상이 되었다.

 초3학년 2학기 수학이 어려워지는 시기가 되다 보니 즐거울 수만은 없는 요즘 수학시간.

곱셈, 나눗셈, 다음으로 도형도 원이지만 컴퍼스 사용이 힘들어서 제대로 형태가 안 나오는 학생을 위한 추가지도까지 하다 보니 매일 어떻게 하면 더 문제를 풀게 하나 고민이 이어진 한 달이었다.

 요즘 진도 단원인 분수 단원도 곱셈 나눗셈 기초가 없으면 한 문제, 한 문제 그림을 그려가며 풀어야 해서 쉽지 않은 단원이긴 했다.


 한방치료가 치료실 쪽에서만 있을 때라 원장님 추가진료를 받으러 따로 기다려 상담했다.

 일단 뒷머리 통증은 오늘의 한방치료를 통해 나아졌으면 괜찮고 혈액순환의 문제일 수 있으니 우황청심환을 처방해 주셨다.


 오후 3시경 출발해서 진료가 끝난 5시 30분쯤에는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며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아들과 만날 시간이 다되어서 급히 이동했다. 아들 저녁식사도 챙겨야 하는데... 우황청심환을 챙겨 먹은 뒤에도 뒷머리 통증이 더 세졌다. 병원을 나올 때 잠깐 찬바람을 맞아서 그랬을까 긴장이 풀려서인지 두통이 더 심해졌다.

 남편한테 급하게 일찍 와 달라하고, 뒷머리 통증을 달래 보려 누워있으려니 아들이 나가야 한다 재촉한다. 아들을 어르고 달래 남편이 오후 8시경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 근처 대형병원 응급실에 가야 하나 야간진료가 있는 응급의원으로 가야 하나 망설이다 아들 덕분에 자주 가는 응급의원으로 갔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나요?"

  "오늘 새벽 3시 30분경, 뒷머리 통증으로 잠에서 깨서 지금까지 두통이 있어서 응급실로 가려다 여기로 왔습니다."

  "이부프로펜이나 타이레놀 계통의 약은 드셨나요?"

  "지난주까지 비염 치료를 위해 약을 먹다 이번 주에는 약은 안 먹고 있어요."

  "평소 혈압이 높은 편은 아닌데 혈압이 오늘 재어보니 아침에는 138/88, 여기에서 149/99 제 인생 최대치예요. 혈압 때문에 두통이 있는 게 아닐까요?"

  "혈압 때문에 두통이 있으려면 170~180은 나와야 합니다. 이 정도는 약을 먹으면서 치료하는 게 맞아요."

 약을 먹는 게 우선이라는 의사 선생님  말에

  "제 지인 중에 두통이 심해서 병원 갔다가 다음 날 죽은 사람이 있어요."

 내 지인의 지인 이야기이지만, 가까운 지인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건강의심증처럼 벌벌 떠는 소심이인 내게 냉정하게 말씀하신다.

  "모든 사람에게는 두통이 있어요. 약을 먹고 괜찮으면 검사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지금 상태는 그럴 상태가 아닙니다."

  "그래도 제대로 된 검사를 받는 게 어떨까요?"

  "제가 보기에는 그렇게 급한 상황이 아닙니다. 4일 치 약 처방해 드릴 테니, 약을 먹고 두통이 없어지면 약은 안 드셔도 됩니다. 안전한 약이니까 드시고 상태를 보세요."

 평소와는 다르게 냉정하게 말씀하시는 의사 선생님을 속으로 욕하면서 나왔다. 비염이나 단순두통이 아니라 거의 하루종일 계속되는 편두통을... 평소와는 다른 고혈압까지 있는데 약 몇 알 주고 돌려보내시다니 이럴 수 없습니다.

 내심 서운한 마음에 약국에 가니 처방된 약 중에 중증 통증에 먹는 진통제는 울렁거림과 어지럼증이 생기면 응급실 갈 정도로 심한 부작용을 느낄 수 있지만, 약만 안 먹으면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부작용이니 알려만 드린다는데 처방약 중 속 쓰림이 심한 약이 있으니 식후 복용하라 이야기해 주셨다.

 새벽부터 오후까지 진행되던 두통은, 저녁과 밤에는 거의 지끈거릴 때면 욕이 튀어나올 만큼 심해져 있었다. 한방병원에서 웬만한 통증은 잘 참는다는 사람인데 두통이 이리 아픈 건지 처음 겪어봐서 면역이 없었다.


 남편에게 먹을 것을 사 달라고 부탁하니 밤 9시가 넘은 시간에  "밥 먹으러 어딜 갈까?"란 말에 두통 때문에 예민해져 화부터 냈다. 약 먹으려고 먹는 거니 근처 김밥집에서 김밥 한 줄만 사달라고 응급의원 근처에 있던 김밥집을 말하니 못 찾고, 10여 분 거리까지 네비를 켜서 찾아갔지만 거기 있던 김밥집도 못 찾았다. 시간이 늦어서 프랜차이즈 김밥집들은 문을 닫았을 시간이고 집 근처 김밥집을 찾아가려고 아파트 단지 상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남편은 급한 마음에 편의점에 들어가 김밥과 샌드위치, 전복죽 하나를 사들고 나왔다.

   "늦게 가서 먹을 만한 김밥이 한 줄 밖에 없었어."

 남편의 말에 아들이 집어갈 틈을 주지 않고, 김밥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방으로 들어갔다.

 김밥과 약을 먹고 누워서 30분 후쯤부터 칼날처럼 예리하게 지끈거리는 통증은 칼집 속에 들어간 것처럼 잦아들었다.


 다음날 토요일 새벽부터는 타는 듯한 갈증으로 잠을 깼다. 물을 마셔도 사라지지 않는 갈증이었다. 500밀리 물병을 하나 비우고 다음 병은 여러  나눠마시다 10여 분 정도 입 안에 머물기를 계속했다. 오전 9시 30분쯤 속 울렁거림이 심해서 두통약을 챙겨 먹을까 응급실에 갈까 고민하며 약국으로 전화하니 중증 통증에 먹는 약만 빼고 먹으란다. 내 몸은 부작용, 드물게 나타나는 부작용도 피해 가지 못했다.


 아침부터 사막샘에서 주문한 샌드위치를 먹고 울렁거림을 참으며 겨우 다시 약 복용 후, 누웠다.

전날 밤만큼의 지끈거림이 계속되고 여기에 울렁거림까지 덤으로 왔으니 참기 힘들었다.

 남편과 아들은 걱정이 되어 안방으로 찾아왔지만 점심때가 되어도 사라지지 않는 두통에 울렁거림(중증 진통제 먹고 12시간 이상 지났는데도 그랬다.)에 점심으로 밥 먹기는 힘들고 약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샌드위치를 한 입 먹다 다 토했다.

  "응급실 갈래요?"

 남편의 걱정스레 묻는 말에도 천천히 누웠다 다시 숙제하듯 남은 샌드위치를 먹고 약을 삼키고 누웠다. 토요일 밤인가 하루종일 자리보전한 끝에 통증이 사라졌다.

 오늘 아침에는 이틀 동안 괴롭히던 통증이 없어져서 못 보던 카카오페이지 웹소설도 가벼이 보고 브런치 글도 읽을 수 있었다.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해서 배고픈 거 외에는 상태가 좋아졌다. 오랜만에 남편의 희생으로 얻은 휴식 덕분에 살만 해져서 감사하다.

 

 응급의원 원장님 말, 그 옆 약국 약사님 말을 안 듣고 대형병원 응급실에 갔으면 대기하다 지났을 몇 시간씩을 집에서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내 나이 한국 나이로 쉰에 이제는 일을 규모 있게, 요령 있게 할 때가 되었나 보다. 1시간을 앉아있을 수 없는 허리에, 40분 이상 걸으면 아픈 무릎, 배드민턴체 40분 휘두르면 아파지는 어깨(이 정도는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며, 만세운동을 하지 않으면 굳어지는 어깨와 목까지, 입맛이 좋아서 밥을 더 먹으면 반드시 탈이 나는 위장. 약하게 타고난 몸과 짧은 집중력에 잔 걱정 많은 마음까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고민되지만 오늘도 오늘의 삶을 살아간다.

 아들이 갑자기 소리 지르며 우는 게 평소 편두통이 심해서 그런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가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머리를 벽이나 문에 퍽퍽 박고 있으니 편두통이 있을 거라 생각해 봤다.

 절대안정의 시간이 주는 치료 효과를 절실히 느낀 주말이다. 일은 요령껏 하고, 학생들 수학은 필요 느끼면 열심히 하겠지 생각하며 넘기련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은 딱 여기까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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