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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붕이 Apr 29. 2024

밥친구

점심시간이 즐거운 이유

지금으로부터 9년 전 모 초등학교 마지막 해의 급식실 풍경 이야기를 해본다.

당시에 근무하던 곳은 식당이 지하 1층에 있고 한 번에 2~3개 학년이 식사가 가능한 큰 규모였다.

 점심시간마다 학년 단위로 점심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다른 반 식사 모습이 보이곤 했다.

그해 동학년 부장선생님 반에는 '밥친구'라는 독특한 점심시간 문화가 있었다.

선생님과 순서를 정해 짝꿍으로 같이 식사를 하며 이야기하는 것으로, 학생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시는지 궁금해지곤 했다.

당시 내가 담당한 학년은 4학년이라 1, 2학년이 3교시 마치고 급식을 받고, 4교시 마친 점심시간에 5, 6학년, 마지막으로 3, 4학년 먹는 순서여서 배식이 끝나고 배식도우미로 오신 어머니들 식사가 끝나고 정리하시는 시간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선생님과 학생 짝꿍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부장님,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셨어요?"

 하루는 궁금해서 여쭤봤다.

 "그냥 밥 먹으면서 보통 하는 이야기를 하는데요.

처음에는 서먹한데 2~3번쯤 밥친구로 이야기하다 보면 학생들이 마음속 이야기를 잘해요."

학급경영의 베테랑이셨던 부장님의 학급문화가 내게는 참 신선해 보였다.


식당급식을 하게 되면 반마다 급식줄에 서는 규칙이 다르기는 하지만 고르게 앞순서로 받을 수 있도록 순서를 정한다.

식당에서 급식을 먹으면 대개 번호 순서대로 서서, 오늘 첫 번째로 먹은 학생이 다음 날은 제일 뒤로 가고 한 자리씩 앞으로 순서를 당기는 방식을 쓰곤 한다. 급식받은 순서대로 앉다 보니 옆에 앉는 친구가 거의 비슷하다.

앞뒤 줄 서는 학생끼리 밥을 오랫동안 먹게 되니 사이가 좋은 학생들은 문제가 없지만, 예전 학년부터 사이가 틀어진 학생이라면 급식을 받기 전까지 사소한 일부터 심각한 일까지 서로 분위기가 싸늘하곤 했다. 급식 줄 때문에 일부러 손을 늦게 씻고 와서 제일 뒷줄에 서곤 하는 학생도 있었다.-이런 경우를 방지하고자 미리 손을 씻고 순서대로 줄을 선 다음에 내려가곤 했었다.


남학생들의 경우 대부분 빠르게 먹고, 운동장에 가서 놀 생각으로 단순한 이야기를 좀 나누다 숟가락질, 젓가락질 몇 번에 식사를 끝내고 급식실을 나선다.

여학생들의 경우, 아주 활달한 학생부터 조용히 식사를 천천히 하는 학생, 짝꿍과 이야기를 나누며  웃긴 이야기로 학생들이 식사를 멈추고 박장대소하는 경우까지 다양하다.

유난히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친구가 한 명 있으면 식사시간은 즐겁지만 급식실 안이 다소 시끌시끌해진다. 일찍 식사하고 5교시 수업에 맞춰 교실에 가려면 점심시간 대화가 길어지면 곤란하기에 자주 대화는 교실 올라가서 마저 하라며 종용하게 된다.


대화에 정신이 집중된 학생은 식당급식, 교실급식에 상관없이 점심식사를 하는 시간이 길다. 선생님의 잔소리도 반찬과 함께 먹게 되었을 거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막판에 좋아하는 몇 가지만 먹고 잔반처리하러 어난다.


반마다 차이가 있지만 우리 반의 경우 식사 후에 아주 늦게 먹어서 같이 올라가지 못하는 몇 학생을 제외하고는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올라가는 방법으로 교실까지 이동했다.

매일 밥친구처럼 앞뒤 함께 식사하며 1년을 보내면 정말 많은 정보를 알게 될 텐데... 초등학생의 친구 사귐은 단순하고 일상적이리라. 옆에서 듣고 보면 피식 웃게 되는 대화에 직접 끼지는 못하지만 관망하는 재미가 있는 식당급식이었다.


나도 밥친구 한 명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해였다. 그들만의 이야기, 하교시간 만나서 놀 약속까지 약간은 소란했던 그때의 점심시간이 떠올라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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