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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붕이 May 02. 2024

미식가 달달이

미래의 푸드에세이 작가님과 함께 지내요.

이번 해 우리 반에는 미각이 뛰어난 달달이(당연 애칭)란 학생이 있다.

먹거리에 투자를 많이 하시는 가정에, 중학생 오빠가 있는 현실남매 여동생이다. 국내, 국외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기도 했고, 먹는 즐거움을 아는 학생이라 자신의 마음에 드는 음식 앞에서 리필하려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이 학생의 장래 희망은 음식에 대한 기행이나 소설을 쓰는 작가다. 아직 어린이라 쓴 푸성귀 종류는 잘 먹지 못하지만 고기 종류는 두루 잘 먹고 어린이들에게는 좀 생소한 요리 종류까지 잘 먹다. 가끔 이미 먹어봤는데 맛이 없게 느껴졌던 음식은 절대 입에 대려 하지 않아 실랑이를 하 다. 달달이의 미각에 맞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서 불쾌한 감각이 이후 작품에 영향을 끼치면 안 되니 일단 한수 내려놓고 다음번에는 꼭 도전하도록 이야기하곤 한다.


유독 미각에 예민하다 보니 다른 감각도 어떠한지 궁금했다. 학교 텃밭에서 기른 바질과 로즈마리의 향을 손을 대어 맡지 않아도 공기 중에 퍼진 향으로도 알아낸다. 보통 바질의 향까지는 또래 학생들의 취향을 사로잡지 못하는데 입맛까지 다시며 맛있겠다고 미소 짓는 모습을 보니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 나이에 선생님은 바질이 뭔지도 몰랐는데 확실히 향에 예민하니 맛도 잘 느끼나 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말을 덧붙인다.

 "제가 청각이랑 후각이 민해서 몰폰 하기 좋아요."

 "몰폰?"

 "엄마 몰래 휴대폰 하는 거요. 엄마 오기 전에 미리 알고 끄니까 한 번도 들킨 적 없어요. 헤헤."

 역시 어린이는 어린이. 뛰어난 감각을 사용하는 방법이 참신하다.

 

하루는 디저트카페에 대한 책을 가져와서 나에게 읽어 보라고 권다. 선생님이 4월 말까지 보고서 때문에 바쁘다고 말하자 며칠 빌려줄 테니 읽어보라며 선생님 책상에 올려놨다. 그리고 1주일 후 칼같이 그 책을 찾아갔다.

자신에게 정말 재미있고 흐뭇한 책이건만 선생님이 못 읽은 걸 서운해하는 눈치다.


달달아~ 선생님이 사실 너희들 잠깐씩 가르치고 그걸 준비하고 업무 하기에도 벅차단다. 지금의 정신력 고갈 때문에 병가 낼 준비로 1주일마다 병원 진료 도장 찍기도 바쁘다는 걸 이야기할 수도 없고. 표지부터 달달한 그 책을 가져가는 달달이의 뒷모습 쓸쓸해 보였다.


달달이는 맛이 자신에게 안 맞거나 싫어한다고 못 먹는 요리를 제외하고는 음식을 먹는 과정 자체를 아한다. -딱 한번, 수학시험을 망쳐서 속상한 상태에서 급식을 제대로 먹지 못한 날을 제외하고. 이 학생을 담임한 지 2년째인데 그런 날은 처음이었다.


며칠 전 제주도 특선요리로 특식이 나왔을 때 몇 명의 학생은 고기국수를 못 먹었지만 잘 먹었고,

수육과 보쌈김치가 나왔을 때도 수육과 보쌈김치를 리필하는 열성을 보였다. 대부분의 학생이 보쌈김치를 남기거나 잘 먹는 학생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조금씩 받았는데 조금 먹어본 학생은 잘 먹지만 시도조차 못하는 학생도 있었다.


강원도 전통음식 테마 요일에는 들기름막국수도 맛있게 먹었다. 본인은 강원도는 아니고 가평에서 명장이 직접 뽑은 들기름막국수를 먹어보았다면 달달이는 강원도에서 직접 먹어보는 경우다.

맛에 대한 평가는 솔직하게 그렇게 맛있지는 않다였지만 대부분 처음 보는 들기름막국수 시식 자체를 못했다.


달달이가 5월 초 근로자의 날부터 연이틀 교외체험학습을 냈다. 5월 2일인 오늘, 학년 소체육대회가 있는 날이라 열량 보충용 맛있는 급식이 나왔다.

보통 학생들이 좋아하는 햄버거 스테이크에 치즈, 스마일 포테이토를 얹은 스마일감자 치즈버거, 어묵가락국수, 샐러드, 솜사탕 등이 메뉴였다. 


스마일포테이토 햄버거가 생각보다 다양한 취향의 학생들에게 어필하는 부분이 조금씩 달랐다. 스마일포테이토에 토마토케첩이 올라간 걸 싫어해서 케첩 없는 스마일포테이토를 달라는 학생, 치즈 못 먹어서 빼달라는 학생, 하다못해 햄버거스테이크를 못 먹는 학생... 정말 학교급식 배식하다 패스트푸드점 직원이 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달달이는 치즈, 포테이토, 햄버거스테이크... 이 중 어느 것을 못 먹었을지도 모르지만 오늘 함께 있지 않아서 같이 식사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점심시간이었다. 


미식가 꿈나무를 키울 만큼 미각이 예민하지 않지만 달달이의 푸드 에세이 작가의 꿈은 응원하고 싶다. 청출어람이라 하니 스스로 노력하는 달달이는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가 될 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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