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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붕이 May 12. 2024

걱정을 날려버리기

내 마음의 고향은 어머니였다.

 <커버사진:Pixabay.martins2018>


 친정아버지 생신이 오늘이라 어제 오후 출발해서 고향에 내려왔다. 이제 친구들도 40대 후반이고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도 전국 각지에 살고 있는터라 만나기 힘들다.

 오늘은 고향교회 예배에 참여하기로 해서 아버지랑 언니 먼저 길을 나서고 혼자 늦은 아침식사랑 상치우기까지 마친 후 내려갔다.

 고향교회는 빨리 걸으면 5분 거리로 가깝다.


 기억에 남는 건 어버이주일이라 어버이 은혜를 주제로 찬양도 설교도 중간중간 찬송가도 온통 어버이를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라는 것.


 사실 내가 늦게 밥을 먹는 건 연로하신 아버지와 한 상에 앉아서 밥 먹기 힘들어서다. 바로 위 언니는 웬만하면 명절을 제외하고는 본가에서 식사를 안 한다. 냉장고를 열면서부터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고향 가족만의 생활상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아침에 혼자 살짝 마른 장어를 꺼내 양념을 바르고 가스불에 타도록 굽고 있는 아버지를 봤다.

 매번 식사준비는 말 한마디면 되는 줄 아셔서 메인요리라고 생각되는 불고기 등을 불에 올려놓으신다. 그런 아버지 때문에 고향집에 가면 쉴 수 없다. 그나마 새벽시장 봐서 6시면 내 앞에 드시고 싶으신 음식의 재료를 내려놓으시던 건 엄청 화내서 못하시게 했다.

 마지막 어머니께서 암에 걸리시기 몇 년 전부터 혈관성 치매로 힘들어하실 때 새벽마다 찬거리를 사서 어머니 앞에 내려놓는 걸 봤다. 새벽기도 다녀오시면서 곤히 자는 가족들 깨울까 봐 몰래 들어가시는 배려는 없고 몸이 안 좋고 새벽에 일어나 계속 무언가를 닦고 새벽기도 다녀와서 누워계시던 어머니 앞에 일거리 내려놓으시는 그 모습이 너무 싫었었다. 밥 하는데 2시간이 걸리고 옆에서 말 걸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잊어버리곤 하셔서 일하는 걸 힘들어하시는 친정어머니셨다.


 어머니께서 2020년 11월에 소천하시고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안쓰러움이 마음에 남아 지금까지도 편치 않은 부분이 있다. 남에게 베풀고 자기 면 서는 건 좋아하시지만 처자식 곪아가는 건 잘 모르시는 분이라 상처가 많았었다.

 마지막까지 어머니를 아버지와 분리해서라도 편히 모시고자 했던 남동생은 늦게라도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마음으로 독립했다. 계속 기대고 희생이 희생인지 모르는 아버지와 살다 간 상처가 아물지 않아 곪아버려 스스로 그 냄새에 질식할 것이기에.


 평생 교육자로 살아가신 아버지라 우리 앞에서도 교육자의 모습이시지만 고령이셔서 아이 같은 면에 부쩍 투정이 많아지시고 오해도 잘하시는 아버지시다. 물리적 거리가 먼 덕에 그나마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막내딸이라 다행이라 여긴다.


 어제저녁에 도착해서 간단하게 인사말과 아들의 야참 정도만 챙기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간단한 싱크대 주변 닦기, 아침식사 준비, 화장실 청소를 하고 나니 오전 10시 20분이 되었다. 후루룩 늦은 아침밥을 먹고 설거지하다 보니 시간이 제법 됐다. 뛰다시피 걸어서 내려가 다른 사람은 잘 모를 곳에 자리를 잡고 예배를 드렸다. 예배 전 한 분, 마치고 알아보시는 분 한 분, 두 분 다 어머니를 아시거나 짧게 대학시절 같은 부서에서 섬겼던 분들이었다. 마스크를 쓴 얼굴도 누구인지 바로 알아채셨다.


설교 말씀 전 '요게벳의 기도'라는 찬양과 동영상을 보여주시는데 여기저기 눈물 지으시는 모습이 보였다.


https://youtu.be/cAmq9LH46Xg?si=jhFinPjuGlDuivOZ

 아버지와 고향 가족에 대한 걱정, 아들에 대한 걱정 둘 다 내 몫이 아닌 듯 내려놓으련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엮어놓으셨지만 내가 원해서도 아니고 신의 뜻이면 그분께서 책임지시리라.

 나는 걱정이 아닌 짧은 도움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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