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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로 Aug 05. 2024

홍콩 음식(1)

차찬텡 홍보대사

 여러분은 영웅본색 극 초반, 주윤발이 가래떡도 아니며 전병도 아닌 것을 정말 맛있게 먹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창펀’이라는 딤섬 종류이다. 쌀반죽으로 만든 전병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딤섬집의 주력 메뉴로 알고 있으나 작게 말아서 간장을 뿌린 길거리 음식으로 파는 것도 종종 보았다. 주윤발이 먹던 창펀이 바로 이 길거리 창펀이다. 창펀 한 그릇을 시켜 후루룩 먹는 주윤발의 모습을 한국에서 현지화 시켜보자면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후다닥 먹는 장면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주윤발의 길거리 창펀은 취향 밖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창펀은 새우튀김이 쌀피에 감싸져서 나오는 창펀이다. 따뜻하고 쫄깃한 쌀피를 베어 물면 바삭한 튀김옷이 씹하고 동시에 새우의 감칠맛이 훅 끼쳐 들어온다. 한입 가득 창펀을 넣고 우물거리다 보면 세상의 모든 근심이 사라져버리는 기분이다. 8000원(식당마다 다름) 가량으로 세 가지 식감과 함께 감칠맛까지 느낄 수 있다니 가성비 넘치는 음식이 아닌가!

 국내의 홍콩 음식점을 방문하면 황당하기 그지없다. ‘마라’로 범벅된 메뉴들 사이에서 정작 흔하디 흔한 덮밥 하나 보이지 않는다. 강조하건대, 홍콩에서는 마라를 음식에 흔히 넣지 않는다. 마라를 맛볼 수 있는 곳은 대부분 쓰촨 음식점이다. 경험상 홍콩 사람들은 매운 맛 보다는 단맛을 더 좋아한다. 완탕면도 덮밥도 차슈도 딤섬도 모두 달다. 달짝지근한 향을 내기 위해 설탕과 간장을 넣고 조리하거나, 혹은 아예 음식 위에 단 간장을 뿌려 서빙 한다. 홍콩 음식이 다소 짜다고 느끼는 사람은 아마 이 이유 때문일 것이다. 설탕과 간장의 향연을 견디지 못하는 자, 그리고 즐기는 자로 나뉘는 한국인에게 홍콩 음식은 호불호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홍콩의 식문화가 특이한 이유는 영국식 식단이 일상적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밥과 국이 아닌 빵과 파스타를 주식으로 먹는 아시아 나라는 홍콩이 유일하다. 그렇기에 색다른 식사를 즐기기 위해서 차찬텡을 방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차 식당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이 곳(?) 들은 구글맵으로 검색할 시 ‘café’로 번역된다. 더운 낮에 갈증을 참고 방문한 이 ‘café’들 중 어느 한 곳에서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발견하지 못한 한국인으로써 이러한 네이밍에 대단히 불만을 가지고 있으나, 이방인이 고유 문화를 어떻게 거스르겠나. 알고 보니 홍콩은 한국과는 다르게 음식과 함께 음료를 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슬쩍 음식점에 들어가 음료만 하나씩 사서 나오던 나를 특이하다고 생각했을 점원들이 생각났다. 마찬가지로, 이방인이니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다시 돌아와 음식 얘기를 해보자면, 차찬텡의 주력 메뉴는 딱히 없다. 메뉴가 굉장히 많은 것이 차찬텡의 특징이자 매력이다. 아침, 점심, 저녁용 음식을 다르게 파는 차찬텡도 종종 있다. 개인적으로는 홍콩식 프렌치토스트를 매우 좋아한다. 튀기듯 구워서 나오는 토스트 사이에 발라진 땅콩 버터는 빵과 굉장히 잘 어울린다. 느끼해 질 때쯤 짓이긴 레몬을 섞은 레몬티를 마시면 정말 완벽한 한끼 식사가 된다. 이 밖에도 사테이 양념이 들어간 누들, 런천미트를 끼워 넣은 샌드위치 등 간단하게 제조되는 음식을 차찬텡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동네 차찬텡들은 비교적 여행객이 잘 방문하지 않는다. 동네 사람들이 광둥어로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구석에 앉아 레몬티를 마시고 있을 때면 90년대 홍콩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고즈넉한 정통 차찬텡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란퐁유엔’을 방문하자. 장국영의 단골집이었던 ‘란퐁유엔’은 이미 한국에서도 필수 방문 코스로 잘 알려져 있다. 웬만해서는 보기 힘든 영어 메뉴가 이를 입증한다. 란퐁유엔에 들어서면 다소 허름한 내부를 목격할 수 있다. 낡은 테이블과 색이 바랜 포스터는 한국의 여느 동네 분식점을 떠올리게 한다. 란퐁유엔에서 파는 홍콩 토스트는 나의 경험상 가장 맛있는 홍콩 토스트였다. 잘게 잘라 레몬티와 함께 먹다 보면 물리기 전에 음식이 사라져 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테이블 사이, 낯선 사람과 끼여 앉아 수저를 드는 경험은 무척 새롭다. 저 낯선 이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나만이 계속해서 관찰할 뿐이다. 문득 나와 마찬가지로 타인과 끼여 앉아 식사를 했을 그가 생각났다. 90년대 가장 유명했던 사람 중 하나인 그도 이 아늑함을 못 잊어 여러 번 되돌아왔을 것이다. 이 평범한 공간에서, 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다. 내가 한국어조차 제대로 깨치지 못했을 나이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 그가 그리워 지는 것은 어쩌면 주책일까 싶어 먹던 토스트나 마저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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