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로 Aug 05. 2024

내가 사랑하는 홍콩영화(1)

지극히 덕후스러운 입덕 계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 왜 혹하였을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사실 큰 이유가 없다. 당시 사용하던 OTT 플랫폼 ‘왓챠’에서 열심히 광고했던 감독이었다. 게다가 마침 좋아하는 아이돌이 영화 <중경삼림>을 오마주하여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는 얘기가 들렸다.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틀었다. 맥주와 팝콘을 준비하고 바퀴 의자에서 다리를 떨며, 새벽 1시쯤.

 거장의 영화를 본다는 자부심이 컸던 것 같다. 게다가 <중경삼림>은 내 또래 세대보다는 부모님의 세대와 더 가까운 영화가 아닌가. 또래보다 조금 더 특색 있게 ‘걸작’을 ‘유미’할 줄 아는 영화 입맛을 가진 대학생처럼 보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히 그 이유만으로 이 영화를 좋아한다기에 난 <중경삼림>에 푹 빠져버렸다. 홀로 있을 때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온종일 흥얼거리며 왕페이의 막춤을 몰래 따라 해봤다. 양조위라는 배우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그쯤이었다. 평소 지향하던 이상형의 얼굴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자를 벗고 눈을 마주치며 들어오는 그의 모습이 자꾸 아른거렸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영화 여운을 약 3일간 즐겼다. 그리고 이 만족감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왕가위의 <화양연화>를 보았다. 역시 편한 복장에 맥주와 함께 즐기기로 했지만, 마음은 조금 달랐다. 기대감과 불안함이 함께하는 마음으로 <화양연화>를 틀었다. 느린 호흡이 나른하여 잠깐 졸다가도 다시 일어나 10초 전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하며 새벽 4시까지 영화를 봤다. 앉은 자리에서 영화의 분위기를 전부 느끼고 싶었다. 사실 <중경삼림>에 비해 <화양연화>는 좀 천천히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슬로우도 많이 걸리고 노래도 잔잔했다. 그럼에도 순간마다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던 것은 금방이라도 사고를 칠 것만 같은 장만옥과 양조위의 텐션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전히 <화양연화>만큼 점잖게 섹시한 영화를 본 적 없다고 생각한다.

 두 영화를 연달아 본 후 <해피투게더>를 보았고, <타락 천사>를 보았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삶 속에는 크고 작은 굴곡들이 있었지만 비현실적이지는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는 쿨하기도 찌질하기도 했다. 열정이 있기도 없기도 했다. 부도덕적이기도 하고 양심적이기도 했다. 그들이 가진 유일한 공통점은 솔직함이었다. 그들은 삶에서 마주하는 날것의 사건을 들이마시고 자신의 방식으로 소화했다. 그리고 관객은 내레이션으로써 그들로부터 소화된 일련의 사건들을 마주한다. 문득 이런 삶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삶 같았다. 내 인생에 솔직해지는 것, 관조적인 시선으로 내 삶의 사건을 마주하는 것, 큰 사건도 작은 사건도 모두 소화해 버리는 것 말이다. 남의 도시 이야기에서 나를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을까 타국 사람들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았다.

 그때부터 홍콩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홍콩 사람들은 모두 왕가위의 영화 속 인물들과 같은 온도로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왕가위의 영화 촬영지가 정말 그 정도로 아름다운지 확인하고 싶었다. 나도 그 안에서 비슷한 온도로 섞일 수 있을까 알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에게 이를 확인할 기회가 주어졌다. 교환학생 프로그램 명단에 홍콩의 대학교가 적혀있었고 나는 주저 없이 신청했다. 그리고 나의 많은 것이 바뀌었다. 홍콩에서의 4개월은 인생 최고의 나날들이었다. 그러니까 이 글을 포함한 나의 홍콩에 대한 집착은 모두 영화에서 시작되었다.

 홍콩의 영화는 묘한 친근감을 자아낸다. 90년대를 돌아보게 하는 미디어 노스텔지어가 그 이유일 것이다. 리틀 할리우드를 누리던 90년대 홍콩 영화 산업은 정말 다양한 영화를 내놓았다. 장국영을 포함한 청춘스타들의 활약으로 구질구질하면서도 어딘가 쓸데 없이 힙한 청춘 영화들이 대거 등장하였다. 예를 들면 <열화 청춘>에서의 청춘들은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낭만과 사랑을 지키지 않는가. <연분>의 매염방이 사랑하는 남자의 행복을 위해 장국영을 장만옥에게 데려다주는 장면은 또 어떤지. 그 시절 홍콩의 낭만은 겪어본 적 없는 향수를 자아낸다. 영화가 주는 분위기가 독보적이다.

 사실 위의 이유는 대외적이고, 지인들끼리 농담조로 이야기하는 이유는 ‘욕’이다. 홍콩의 욕은 한국 욕의 억양과 비슷하다. 유래나 쓰임, 용법 역시도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가장 많이 들어본 단어 ‘띠우’는 한국의 ‘씨발’과 비슷한 쓰임을 가진다. ‘띠우’는 ‘띠우레이’ 등으로 응용된다. 마치 ‘씨발’이 ‘씨발 새끼’, ‘씨발놈’ 등으로 응용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욕을 많이 쓴다는 점, 단어를 응용한다는 점, 그리고 억양마저 비슷하다는 점에서 홍콩의 욕은 묘한 친근감을 자아낸다. 이를 한 번 인지하고 홍콩 영화를 보면 색다른 경험이 가능하다. 왠지 화가 난 듯 사용하던 단어들이 모두 욕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앞서 말했듯이 대외적으로 언급할 수 없는 개인적 감상이다.

 홍콩의 면모를 세밀하게 살펴보면 한국과 비슷한 모습이 꽤 많이 발견된다. 특히 사람들의 생활에서 그렇다. 때로는 화끈하고 때로는 쌀쌀맞지만 주로 다정한 성격을 가진 홍콩 사람들에게서 묘한 기시감을 발견하곤 한다. 민족적 불의에 저항하고자 하는 그들의 모습은 과거의 우리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영화에는 그런 면모가 많이 발견된다. 한국인이 홍콩 영화에 친숙함을 느끼는 건 예견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가봐야 하지 않겠는가! 홍콩으로!

이전 02화 홍콩과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