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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로 Aug 05. 2024

홍콩 음식(2)

똥랭차 홍보대사

 이번 여름 홍콩에 방문하며 처음 본 광경이 있었다. 한 프랜차이즈 딤섬 집에서 냉차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곧 쪄 죽어도 뜨거운 차만 마시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역시 섭씨 35도를 웃도는 날씨에 체온보다 높은 온도의 차를 마시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던 와중, 음식점 내에서 냉차를 마시는 건 오로지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신들은 이 날씨에도 뜨거운 것이 그리 좋으냐’며 속으로 크나큰 리스펙을 보냈다. 새삼 겨울에 한국에 놀러 왔던 나의 홍콩 친구가 ‘너는 찬 게 그렇게 좋으냐’며 치를 떨었던 기억이 났다. 한국인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유난히 찬 음료를 좋아한다. 생각해 보면 유난스러운 것은 한국인일 수도. 그렇지만 차지 않은 음료는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는 것을 어떻게 하는가.

 좀 오버를 했다. 사실 홍콩 사람들도 찬 음료를 꽤 마신다. ‘물처럼’ 마시지 않을 뿐, ‘음료처럼’은 마시는 편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대부분의 식당에서 밥과 함께 음료를 제공해 준다. 디저트의 개념으로 차고 단 음료를 마신다는 뜻이다. 한국 교환학생들끼리 처음으로 로컬 식당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단 음료는 식사를 마친 후 섭취해야 한다고 교육받아 온 한국인으로서 이 점이 매우 어색했으나, 선택할 수 있는 차가운 액체가 그뿐이었다. 하지만 웬걸, 짭짤한 홍콩 음식들과 달고 찬 음료는 꽤 잘 어울렸다. 금세 적응이 된 후 식당에 방문할 때면 각자 최애 음료가 생겼다. 누구는 밀크티만, 누구는 탄산음료만 마셨다. 나 역시 메뉴를 읽을 필요도 없었다. ‘똥랭차’ 한 잔 달라고 하면 되기 때문이다.

 젖소가 그려진 귀여운 컵에 담긴 홍콩식 밀크티는 잘 알면서도, 레몬 서너 점 동동 띄운 레몬티는 다들 잘 모르는 것 같다. ‘똥랭차’를 직역하면 차가운 레몬차이다. ‘얼 동(涷)’ 자를 현지에서는 ‘똥’으로 발음한다. 한국처럼 ‘차가울 냉’으로 쓰였을 줄 알았던 ‘랭’ 발음은 레몬을 뜻한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얼음 빙(氷)’ 자를 써서 ‘삥’으로 발음한다고 하는데, 차가운 것을 주문할 때 쓰이는 한자가 ‘냉’, ‘똥’, ‘삥’으로 가지각색인 것이 재미있지 않나! 소리 내서 발음하다 보면 좀 귀엽기도 하다, 냉, 똥, 삥) 똥랭차를 마실 때는 음료에 같이 들어있는 수저로 레몬을 잘 짓이겨야 한다. 정도는 취향껏. 나는 아주 아주 오래 짓이긴다. 홍차 맛과 레몬 맛이 잘 어우러지도록 말이다. 커스터마이징이 끝나고 나면 그때부터는 어떤 뜨거운 음식도 두렵지 않다. 바로 옆에서 대기 중인 똥랭차가 있기 때문이다.

 똥랭차의 매력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잊게 했다. 매일 하루 한 잔씩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으면 곧 쓰러질 듯한 상태이던 나는 똥랭차를 만나고 커피를 끊었다. 홍차의 적당한 카페인이 수혈되어 하루를 날 수 있었고 달콤한 시럽으로 떨어지는 당도 챙겼으며 레몬의 상큼함으로 개운함도 갖추었다. 무엇보다 매일 마시던 아메리카노의 카페인 함량보다 홍차의 카페인 함량이 낮았기에 마음이 한층 놓였다. 단, 인슐린 걱정은 좀 되더라. 한국에 와서는 어떤 아이스티를 마셔도 똥랭차의 그 맛이 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다시 아이를 들이켜기 시작했다. (관성이란) 직접 똥랭차를 만들어보겠다던 지인에게는 실패한 홍차 원액만 몇 통씩 생겨버렸다. 그 특별함은 홍차에 있을까 아니면 레몬에 있을까. 정말 별거 없어 보이는 것이 그런 파급 효과가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우면 뭐, 그 핑계로 또 홍콩에 가야지 어쩌겠나.

 똥랭차는 포기했지만, 희한하게도 차는 계속 마시고 있다. 홍콩의 기숙사에서 떠다 마시는 물은 염소 냄새가 심하게 났다. 하지만 물을 사다 마시기에는 뭔가 손해 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두 가지 방법을 썼는데, 티백을 떠다 놓은 물에 풀어 마시다가 귀찮을 때는 플라스틱병에 담긴 냉차를 사 마셨다. 막판에는 귀찮음이 앞서 사 마시는 방법만 애용했다. 그러다보니 어떤 브랜드의 우롱차가 가장 맛있는지 까지 파악이 될 정도였다. 그때의 입맛이 한참 지난 아직도 남아있다. 이번에 홍콩에 갔을 때 현지 친구들이 입 모아 추천하던 차가 바로 내가 마시던 그 우롱차인 것을 알게 되자 무척 뿌듯했다. 하도 먹고 마셨더니 30% 정도는 홍콩 현지화된 것이 아닐까.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 향긋한 우롱 냉차 맛을 잊을 수 없었다. 얼음을 가득 담은 유리컵에 티백을 넣어 놓으면 하루 종일도 마실 수 있다. 이제는 맹물보다는 향긋한 물이 좋다. 이번에는 돌아오며 말린 찻잎을 한가득 사 왔다. 기왕이면 냉차 제조법을 제대로 배워보는 건 어떨까 싶다. 이렇게 50%의 현지화로 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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