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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로 Aug 16. 2024

홍콩 음식(3)

토마토 쌀국수 홍보대사

 술을 진탕 마신 다음 날 국밥이 없는 홍콩에서 해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 1번, 전날 마트에서 사 온 라면 한 봉지를 끓인다. 2번, 똥랭차를 마셔 갈증을 해소한다. 3번, 배달 앱을 켜서 탐자이 삼거 토마토 쌀국수를 주문한다. 세 방법 모두 써봤지만 가장 효과가 좋은 건 3번이었다. ‘탐자이’는 홍콩에서 가장 유명한 프랜차이즈 쌀국수 집이다. 마라 국수를 파는 걸로 유명하지만 난 언제나 토마토 국수를 먹는다. 매콤하고 새콤한 것이 정말 정말 중독적이다. 주로 친구들과 둘러앉아 함께 먹는 이 음식에는 교환학생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침사추이의 골목들을 지나다 보면 인자하게 생긴 안경 아저씨가 세숫대야만 한 국수 그릇을 들고 있는 그림이 크게 보인다. 그것도 꽤나 자주 보일 것이다. 그 모든 곳이 전부 탐자이다. 같은 탐자이도 삼거와 믹시안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현지 친구들의 말로는 형제가 브랜드를 나누어 따로 장사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민초 파와 반민초 파가 나뉘듯이 홍콩의 MZ들은 삼거 파와 믹시안 파로 나뉘어 열렬히 싸운다고 한다. 국물의 맛이 다르다고 하는데, 둘 다 먹어본 입장에서 사실 전혀 모르겠다. 한국으로 따지면 ‘동대문 엽기 떡볶이’ 정도의 인지도 일 듯하다. 좋아하는 연령층도 그 정도 같다. 아니, 그보다는 30, 40대 정도의 고객도 많이 보였던 것 같다.

 탐자이 삼거는 운남 쌀국수를 파는 음식점이다. 운남 쌀국수의 면은 베트남 쌀국수의 면과 조금 다른데, 짬뽕면 같은 형태의 조금 더 탱글탱글한 식감을 갖고 있다. 맵거나 신 국물 맛 또한 베트남 쌀국수와 차별화되는 특징이다. 하지만 국물의 맛은 음식점마다 다르기 때문에 자신과 가장 잘 맞는 음식점을 찾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탐자이를 추천한다. 5가지 이상의 국물 맛 선택지가 있으며 맵기 정도도 조절 가능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마라 맛을 5단계로 (5단계가 중간 맛인 줄 알았다) 고른 날 하루 종일 복통에 시달렸던 기억이 있어 나는 웬만해서 3단계 이상으로 잘 올리지 않는다. 거기에 약 20가지 선택지의 토핑을 고르면 된다.

 해장이 필요할 때면 항상 맵기 3단계 토마토 국수에 팽이버섯과 숙주만 넣어 먹었다. 이게 들리는 것만큼 이상하지 않다. 매운 국물과 새콤한 토마토의 조화를 깨닫는 순간 왜 토마토가 과일이 아닌 야채인지 납득하게 된다. 매운맛이 과하지 않도록 신맛이 잡아주면,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괜찮다. 그때부터 끝없이 그릇에 고개를 처박게 되는 것이다.

 탐자이는 배달이 편하다. 직접 일어날 힘도 없을 때 클릭 몇 번으로 음식을 주문하면 기숙사 침대에 앉아 속을 데울 수 있다. 토마토 국수를 인정해 주지 않는 다른 한국인 동료들은 마라 국수를 먹는다. 탐자이의 마라 국수는 한국의 마라탕과는 느낌이 다르다. 마장 소스의 농도가 매우 낮기 때문에 노골적인 마라향이 더 잘 느껴진다. 얼얼함 역시 두 배다. 애초에 탐자이 마라 국물의 영어 이름은 ‘맵고 얼얼한 수프’로 표기가 돼 있다. 먹기 전에 주의해야 한다.

 기숙사 친구들과 광란의 술 파티를 즐긴 다음 날 오후 1시 나와 내 한국인 룸메이트는 라면을 누가 끓일 건지에 대해 고민 중이었다. 그때 우리와 가장 친했던 친구이자 기숙사 학생회장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탐자이 삼거에 배달을 시킬 건데 옵션 잘 선택해서 알려줘’ 사실 술 파티는 기숙사 내에서 허가되지 않은 모임이었다. 학생회가 비밀리에 진행하여 현지 학생들만 참여할 수 있었고,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우리는 기숙사 회장 특권으로 유일하게 초대받은 외국인이었다. 사실 나랑 룸메이트, 그리고 학생회 친구들은 신기한 유대감으로 얽혀있다. 교환학생으로 들어간 학교에서 기숙사를 제공해 줬었다. 한국에서 ‘n동’을 쓰듯 홍콩에서는 기숙사 건물들에 숫자를 붙여 ‘n홀’이라고 명칭 했었다. 나와 룸메이트는 우리가 머물던 2홀 기숙사 내 유일한 한국 학생이었다. 입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우리는 다수의 한국인이 분포해 있던 6홀을 부러워하곤 했다. 기숙사 학생회가 우리 방문을 두드리기 전까지 말이다.

  현지 학생들 입장에서도 한국인은 신기한 상대였을 것이다. 4세대 여자 아이돌의 연이은 승승장구로 케이팝의 위상이 무척 높았을 때 만난 첫 한국인일 테니 말이다. 홍콩 영화를 좋아하는 나와 케이팝을 좋아하는 현지 친구들의 조합은 지금 생각해도 꽤 신선하다. 나는 양조위와 탕웨이의 <색, 계> 이야기를 했고, 영화의 한국 제목을 들은 그들이 한국 욕 ‘새끼야’가 생각난다며 농담을 던졌다. 대화는 항상 이렇게 뒤죽박죽이었다. 90년대 홍콩 배우가 멋있다는 나의 말에 그들은 반발한다. 너무 나이가 많다는 이유이다. 06년생 아이돌이 멋있다는 그들의 말에 나는 반발한다. 너무 어리다는 이유이다. 어이가 없는 대화지 않나. 이 친구들과의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다.

 그 친구들과 둥그렇게 둘러앉아 탐자이 국수를 먹으며 함께 해장했다. 물론 목적은 수다에 있었다. 전날 음주가 부른 몇 사건들을 언급하며 깔깔 웃었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던 친구의 놀라운 주량을 알게 되었고, 취기가 부른 로맨스 사건도 (치정에 가까웠지만) 꽤 있었다. 전날 우리는 모두 즐거웠다. 그릇이 비어도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던 건 그 즐거운 여운을 길게, 다음 날 오후가 될 때까지 느끼고 싶어서이지 않았을까. 국물만 남은 그릇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내가 기숙사 주방에 둘러앉아 이들과 다시 한번 해장 국수를 먹을 수 있을까? 교환 학기가 끝나고 다른 기회로 홍콩에 돌아오리라 다짐했지만, 그때면 이들은 졸업 후 기숙사를 나간 상태일 것이다. 한국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마음이 시큰했다. 어쩌면 그건 떠나기도 전에 찾아온 그리움이 아니라 토마토 신물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보다 더 친한 한국 친구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바닥이 보일 만큼 국물을 싹싹 긁어먹으며, 오래오래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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