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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로 Aug 19. 2024

내가 사랑하는 배우, 장국영

할아버지가 된 당신이 보고 싶어요 / 내가 사랑하는 홍콩 배우들

 드디어 사랑하는 배우 시리즈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다. 사랑하는 홍콩 영화의 2부를 시작하기 전에 사랑하는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었다.

 이 주제로 글을 쓰기 전 고민이 많이 되었다. 내 인생에서 ‘덕질’은 필수 항목이 되어버렸다. 케이팝 가수, 팝 가수, 제이팝 가수, 국내 배우, 할리우드 배우, 뮤지컬까지 (정말 잠시지만 클래식 음악가도 좋아한 적이 있다) 거친 후 이제는 라이트 하게 홍콩 영화배우 덕질을 하는 시점이다. 전성기 시절 홍콩 영화를 좋아하다 보면 내가 덕질할 수 있는 배우들의 모습 역시 그들의 전성기 시절이다. 사실 그 때문에 관련 정보를 찾기가 애매하다. 리틀 할리우드였던 시기가 지나가고 홍콩 영화의 위상은 예전만큼 못하다. 물론 홍콩 영화배우들은 전설로 남았다. 하지만 현재의 행보는 과거만큼 활발하지 않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책이나 인터넷 서핑을 통해 그들의 당시 모습을 공유받는다. 주로 40~50대가 운영하는 블로그, 혹은 유튜브 채널, 혹은 에세이에서 원하는 정보를 얻기 좋다. 현지 친구들에게 직접 그 시절에 관해 물어보기도 한다. 그러다 종종 ‘벌거벗은 세계사’나 ‘방구석 1열’과 같은 교양 채널에 8090 홍콩 영화들이 소개되기도 하는데, 이제는 정말 역사서로 배워야 하는 문화가 된 건지 의심도 된다. 그도 그럴 것이, 홍콩 영화의 흥망성쇠는 홍콩의 역사적 흐름과 밀접하다. 게다가 그 홍콩의 흐름은 곧 세계의 흐름 아닌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이렇다. 나는 이 중대한 역사적 흐름을 ‘덕질’이라는 가벼운 단어로 다루려고 한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것이니까. 그것에 몰입하고 열광하고자 하는 내 마음은 아이돌이나 뮤지컬을 좋아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동시에 떠오른 다른 생각은 이렇다. 이 시리즈를 무겁고도 가볍게 끌고 가고 싶다면 반드시 시작은 그와 함께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세대 부모님의 영원한 첫사랑, 장국영이다.

 장국영의 이름을 얼굴보다 먼저 알았다. 그 ‘먼저’라고 함은 홍콩에 대한 관심보다 훨씬 먼저였다. 신원호 PD의 <응답하라> 시리즈가 그 시작이었다. 5:5 헤어스타일을 고집하던 1994편의 삼천포와 <영웅본색 2>를 보며 울던 1988편의 동네 친구들에게 공통된 키워드는 바로 장국영이었다. 장국영이란 사람은 누구길래 88부터 94까지의 사람들을 쥐락펴락했을까. 그렇게 처음 프로필을 찾아보았고, 의아했던 것은 그의 나이였다. 우리 부모님보다도 훨씬 많은 나이인데, 왜 그의 나이 든 사진은 보이지 않을까? 그리고 곧 생년월일 바로 밑에 적힌 사망일을 보았다. 고인이었구나.

 그가 출연하는 영화를 보기 시작한 것은 홍콩 영화 덕질을 시작하면서다. 수많은 그의 작품을 보았다. 딱히 그의 작품을 골라서 본 것은 아니다. 그저 그가 정말 많은 수작에 출연했을 뿐이었다. 장국영의 연기에는 특유의 색깔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가 연기를 하면 배우보다 캐릭터가 남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는 그의 실제 성격이 어떤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의 성품은 자고로 눈빛에서 나오지 않나? 그는 영화마다 눈빛을 갈아 끼운다. 여기에는 그가 다양한 장르를 도전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로맨스여도 <아비정전>의 아비, <연분>의 폴, <패왕별희>의 청데이는 모두 다른 눈을 가지고 있다. 양아치의 사랑과 순애보의 사랑, 그리고 짝사랑을 대체 어떻게 그렇게 다르게 표현한단 말인가! 참 신기하고 희한한 사람이다. 원로 팬들의 증언과 남아있는 영상 자료를 보면 그가 꽤 해맑은 스타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 현장에서도 그 해맑음을 유지했을지 궁금증이 생긴다.

 장국영은 상대 배우와의 케미를 훌륭하게 창조해 내는 사람이기도 했다. <금지옥엽>의 원영의 같은 맹랑함도, <천녀유혼>의 왕조현 같은 차가움도, <해피투게더>의 양조위 같은 자상함도 모두 잘 흡수한다. (단, <연분>이나 <아비정전>의 장만옥만큼은 장국영보다는 양조위와 훨씬 더 잘 어울렸는데 이는 두 배우 특유의 인상 때문인 듯하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다) 다양한 성격을 연기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데, 상대의 다양함에 본인을 맞춰줄 수 있다는 것은 더 대단하다. 상대 배우를 얼마나 배려하며 호흡을 맞추는지 알 수 있다.

 작년은 그의 추모 20주기였고, 한국에서도 홍콩에서도 그의 작품이 많이 재개봉하던 해였다. 4월의 언젠가 침사추이의 K11 영화관에서 <연지구>를 보았다. 과거 사랑하던 연인이었던 장국영과 매염방은 모종의 이유로 동반자살을 했다. 매염방만이 귀신이 되어 장국영을 찾는다. 알고 보니 장국영은 살아남아 노인이 되었고, 무명 배우가 되어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다. 매염방은 그런 그를 발견하고 슬프게 돌아선다.

 영화는 여운이 컸다. 마지막 장면이 지나고 크레딧이 전부 오를 때까지 자리를 나서지 못했다. 1열에 앉아 있던 나는 눈앞에 스크린이 하얘지고 나서야 뒤를 돌았다. 그리고 그대로 벙찌고 말았다. 관객들 대부분이 극장을 나가지 않았고, 수많은 이들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 광경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그들의 눈물은 영화의 여운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공간은 장국영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장국영이 아직 살아있었다면, 그때는 저런 노인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돈 한 푼 받지 못하는 무명 배우더라도 그는 배우라는 직업을 사랑했을까.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관객들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떤 집단적 감정이 발목을 잡아 나 역시도 거대하고 텅 빈 스크린을 마주한 채 한참을 더 앉아있었다.

 그가 아직 살아있었다면, 일흔 가까이 된 나이의 장년 배우였을 것이다. 하지만 장국영에게는 나이 든 사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죽음 이후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강산은 두 번이나 변했다. 그럼에도 장국영은 홍콩의 영원한 그리움의 객체이자 슬픔의 대상이다.

 사람은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에 죽음의 이유를 타인이 함부로 정의할 수 없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마음껏 안타까워하거나 비통해할 수도 없다. 사라진 그의 마음을 헤아리기 전 나는 홍콩에, 한국에 남은 팬들을 먼저 떠올렸다. 그들이 느꼈을 한 없는 공허함을 떠올렸다. 그 당시 팬들은 장국영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더 큰 사랑을 주지 못했기에 자책했을까. 더 큰 사랑을 주지 못하게 한 상대를 원망했을까. 장국영의 죽음 이후 최진실의 팬은, 마이클 잭슨의 팬은, 설리의 팬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죽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듯, 상실한 사람의 마음 또한 헤아릴 수 없다. 죽음의 이유가 다양하듯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도 다양할 테니까. 누군가는 영화관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가 남긴 흔적을 쫓아 여행을 다니기도 할 것이다. 내가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사실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이 지금은 건강하게 지내며 자신의 우상을 아름답게 추모하고 있기를 바란다.

 나에게 ‘홍콩 배우’는 장국영의 얼굴을 하고 있다. 가지런한 눈썹과 크고 깊은 눈, 곡선적인 옆선과 얼굴형은 잘생긴 동시에 예쁜 느낌을 준다. 그 시절 홍콩 배우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참 비슷한 인상을 하고 있다. 너무 남성적이지도 여성적이지도 않은 얼굴. 웃을 때는 한없이 해맑다가도 눈에는 아련함이 남아있는 얼굴. 공손함과 무례함이 다 잘 어울리는 얼굴. 난 그런 얼굴이 참 좋다. 장국영의 연기를 보다 보면 그가 자신의 장점을 잘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표정을 할 때 영화의 분위기가 어떻게 바뀔지 전부 알고 있었을 것이다. 평생 한 개도 찾기 힘든 자신만의 분위기를 여러 개 찾아 영상으로 남겨두다니, 단연 배우에 천직인 사람이다.

 20년 전보다 영화계도 많이 바뀌었다. 그가 도전해 보지 않은 장르 속에서 그는 어떤 연기를 했을지 무척 궁금하다. SF영화 주연 장국영, 넷플릭스 시리즈 주연 장국영, 마블 영화 주연 장국영. 알 수는 없으나, 분명 잘 어울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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