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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로 Sep 02. 2024

홍콩적 한국인

 내가 홍콩에서 잘 지낼 수 있었던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번화한 느낌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 아마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홍콩 영화를 좋아해 그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하는 기쁨도 작지 않았다. 길치도 이용하기 편리한 대중교통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기하게도, 홍콩에서는 한국의 위상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었다. 홍콩에서 만난 또래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냐고 물을 때, 10명 중 8명은 한국 가수의 이름을 대던 기억이 있다. 오랫동안 국내 아이돌을 좋아했던 나도 케이팝이 이렇게 유명한지 예상 못 했다. 그리고 작년 초 4세대 여자 아이돌의 연이은 성과로 케이팝의 인기는 기승을 부렸다. 나는 그 수혜자였다. ‘한국에서 온 여자애’에 대한 홍콩 사람들의 환상이 있었을 것이라 예상한다. 홍콩의 또래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나에게 순수한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한국 문화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했다. 그리고 난 그 질문에 대해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성실히 대답해 주었다. 좀 외향적인 성격인지라, 만인의 관심 대상이 된 것이 즐거웠다. 존재 자체로 자기 PR이 되다니 얼마나 신났는지 모른다.

 그러던 중, 두 나라의 굉장한 유사점을 발견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어느 날, 지갑을 버스에 두고 내린 적이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눈앞이 깜깜했다. 신분증과 체크카드, 옥토퍼스 카드까지 여권을 제외한 모든 것이 지갑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아무 희망 없이 지갑을 찾기 시작했다. 카드를 전부 정지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반나절 후 지갑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 반나절 동안 적게 잡아도 5명 이상이 나를 도와주었다. 지갑을 잃어버려 골머리를 싸고 있는 외국인을 방치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와 대면한 누군가는 버스 회사를 찾아주고 차 번호 검색 방법을 알려주었다. 나와 대면하지 않은 누군가는 내 지갑을 기사에게 전달해 주었다. 덕분에 동전 한 닢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나의 홍콩 친구들에게 해주었다. 그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이곳은 남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지 않는 곳’이라고 말했다.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미사여구였다.

 그렇게 나는 묘한 동질감의 원천을 찾았다. 남의 어려움을 모르는 척하지 않는 오지랖과 정해진 규칙은 지키고 사는 원칙주의적 특징, 그리고 잘 웃지 않으며 동시에 화도 참지 않는 한국인과 홍콩인은 성격적으로 매우 닮아있다.

 솔직히 나는 얼마 안 가 현지 친구들이 나에게 관심을 잃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접근 의도가 궁금증이라면 그게 해결된 후 더 곁에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궁금증이 해결된 후에도 서로에게 잘 섞였다. 함께 식사를 했고, 함께 놀러 다녔다. 밤을 새워 수다를 떨고 새벽 딤섬을 먹으러 터덜터덜 기숙사 밖으로 걸어 나갔다. 내가 느낀 동질감을 그들도 느낀 건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적인 친밀감이 서로 쌓이고부터는 대화의 물꼬가 텄다.

 서로 모국어가 아닌 영어를 쓰자 하니 원하는 만큼 의사 표현이 힘들었다. 우리는 그래서 홍글리쉬, 콩글리쉬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대화하였다. 홍콩 사람들은 말끝에 ‘~라’라던지, ‘~마’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 단어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지만 습관처럼 붙여 쓰는 어미의 개념이라고 했다. 그 특수한 어미를 친구들은 영어에 붙여서 발음하였다. 예를 들면, ‘오케이, 라’라던지 ‘노, 라’와 같은 식으로 말이다. 적극적으로 언어를 융합하는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질세라 나는 한국말을 영어에 섞어 쓰기 시작했다. 마침, 한국 드라마로 특정 한국어를 많이 접해온 친구들이 몇 단어를 알아들었다. ‘가자’, ‘싫어’, ‘좋아’ 정도였다.

 그렇게 언어의 교류가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무엇보다 중요한 ‘욕’을 서로에게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이전 글에서 홍콩은 한국과 욕의 형태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한국 욕만큼 홍콩의 욕도 된소리를 많이 사용한다. 그래서 배우기도 외우기도 쉬웠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서로 마음껏 욕을 사용하며 놀았다. 결코 진지할 수 없는 대화들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홍콩 언어문화에 친근해진 느낌이었다. 영어만으로는 부족했던 의사 표현들이 욕설로 채워졌다. 약간씩 저급해지며 가까워질 수 있는 관계라니, 이는 곧 수직이나 수평이 아닌 정비례의 관계가 아닐까.

 성격에서 언어까지, 한국과 홍콩은 닮은 것이 참 많다. 사실 이것 말고도 둘의 공통점은 쉽게 찾을 수 있다. 한쪽은 섬이고 한쪽은 대륙에 붙어있다는 지역적 특징과 언젠가 무역의 메카였다는 문화적 특징이 동일하다. 식민 지배를 당했다거나, 민주화 운동을 벌였다는 역사적 특징 또한 동일하다. 1990년대 한국인에게 가장 좋아하는 배우를 물으면 장국영이라고 대답하던 것이 2020년대에 홍콩인에게 가장 좋아하는 가수를 물으면 뉴진스라는 답이 돌아오게 되었다. 우연히 비슷한 성격을 갖게 되었다고 하기에, 홍콩과 한국은 많은 부분에서 닮아있다. 조금 과장해서 두 지역이 쌍둥이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홍콩과 한국 사이에서 ‘틀린 그림 찾기’를 하다가 깨달은 것이 있다. 어쩌면 모든 문화적 탐구는 ‘나’에서 시작할지도 모른다. 나랑 비슷하다, 혹은 나랑 다르다는 생각에서 그 이유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타자의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을 배웠고, 또 홍콩을 배웠다.

 가끔 홍콩 친구들이 왜 이리 홍콩을 자주 오냐고 묻는다. 글쎄, 왜일까? 그냥 아직도 많이 궁금하다. 내가 빨간 펜으로 표시해 둔 틀린 그림들을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다. 비슷한 점에 대해 탐구한 만큼 다른 점이 알고 싶다. 그리고 그대로 사랑하고 싶다, 언젠가는 ‘나’에 속하게 될 것이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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