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로 Sep 10. 2024

홍콩 음식(4)

부속 고기 홍보대사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부속 고기를 혐오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 나는 후자의 사람이다. 곱창볶음을 처음 먹어본 어린 시절, 세상을 생각보다 더 살만하다는 것을 느꼈다. 통마늘과 함께 구운 철판 막창은 중요한 날에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떡볶이와 함께 순대를 시킬 때면 순대보다 내장을 더 많이 달라고 하곤 했다. ‘내장 많이 주세요’ 하는 초등학생을 떡볶이집 아저씨 아줌마들이 신기하게 보곤 했다.

 사실 한국에서 부속품을 못 먹는 것은 엄살이라는 생각을 한다. 한국의 식당에서는 양파, 파인애플, 사과, 마늘 등등의 야채와 과일을 양껏 사용해 최대한 잡내가 제거된 부속 고기를 판매하지 않는가? 잡내가 제거된 부속품은 사실상 조금 더 질긴 고기 그 이상도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때부터 비위 좋게 부속 고기를 먹을 수 있던 것도 다 깔끔히 제거된 잡내 덕분이지 않았나 싶다. 닭발은 또 어떤가. 캡사이신의 민족답게 우리는 닭발을 아주 맵게 먹는다. 뻘겋게 버무린 양념에 닭발을 볶으며 토치로 불향까지 낸다. 잡내란 것이 낄 틈조차 없다.

 이와 비교했을 때, 홍콩의 고기 요리에는 특이점이 있다. 첫째, 고기 요리는 주로 간장으로 조리되어 매운맛이 잘 나지 않는다. 그로 인한 잡내 제거 효과가 없다. 둘째, 그렇다 하더라도 고기의 잡내가 좀 많이 나는 편이다. 이는 절대 특정한 식당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딤섬이나 솥밥, 덮밥 등 고기를 이용한 모든 음식에서는 잡내가 사라지지 않은 채 남아있다. 마치 잡내가 잘 제거되지 않은 채 요리하는 것이 미덕인 듯 말이다.

 그렇다고 그 잡내가 거슬리는 것은 아니다. 양념과 요리의 종류에 따라서 잡내의 필요성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노란 피에 돼지고기랑 새우 속을 채운 딤섬, ‘시우 마이’는 베어 무는 순간 육즙과 함께 그 특유의 풍미가 확 올라오는 음식이다. 그렇기에 돼지고기와 새우의 맛의 조화가 무척 중요하다. 이는 식감도 당연하거니와, 두 종류의 고기의 향의 조화도 무척 중요하다. 그래서 시우 마이에 들어가는 고기는 그 특유 잡내가 남아있다. 이 ‘잡내’가 풍미를 좌우하는 순간 이는 더 이상 ‘잡’내가 아니게 된다. 우습지만 돼지고기 ‘향’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홍콩에서는 특수 부위를, 혹은 흔히 얘기하는 ‘부속물’을 어떻게 요리할까? 일반적인 살코기보다도 더욱 잡내가 많이 나는 내장 부위나 닭발 요리 역시 같은 방식으로 요리된다. 잡내를 그대로 유지하되, 그 잡내를 풍미로 느껴지게끔 요리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잘 먹었던 음식은 간장 양념 된 닭발이었다. 직접 가져다 먹는 딤섬 집에 가면 종종 닭발이 수북하게 담겨있는 작은 그릇이 보인다. 나는 그 닭발 그릇을 하나씩 집어와 내 앞에 두고 독식하곤 했다. 진한 갈색빛을 띠고 식감이 연한 것을 보아 간장에 오랜 시간 조려진 게 분명했다. 닭 특유의 냄새가 그대로 나지만, 어째 간장과는 더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요리여서 너무 즐겁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즐겨 먹지는 않지만, 홍콩에서는 막창, 천엽, 오소리감투 등을 간장에 조려서 파는 모습도 많이 보았다. 또래 친구들은 그런 음식들을 참 맛있게 먹었다. 부속물 좀 먹는다 하는 한국에서도 그런 부위는 호불호가 있는 편인데, 여기 친구들은 ‘호’에 취향이 몰려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야식을 먹을 때 꼭 그런 메뉴 하나씩은 껴서 먹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곤 했다. 한 번은 치킨 핫팟을 먹으러 로컬 친구들을 따라간 적이 있었다. 막창과 천엽을 주문해 핫팟 속에 야무지게 데쳐 먹는 모습이 놀라웠다. 부속물을 잘 먹는 나도 부속 고기를 ‘데쳐’ 먹는 것은 좀 어려웠다. 심지어는, 알 수 없는 부위를 주문했었다. 그 희고 물컹하고 동그란 형태의 고기를 핫팟에 넣기 전 나에게 이게 무엇인지 아냐고 묻는 것이었다.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비주얼이었다. 정답은 ‘닭 고환’이었다. 답을 듣고서는 나도 모르게 깔깔 웃어버렸다. 고기에 대한 편견이 없는 친구들이었다.

 그렇게 부속 고기의 냄새에 익숙해져 있다가 한국에 돌아와서 야채 곱창을 먹으려니 뭔가 아쉬운 기분이었다. 들깨와 고춧가루, 깻잎으로 잡내란 잡내는 깔끔하게 지워버린 곱창의 맛은 그것대로 훌륭했다. 하지만 동시에 항상 맡던 고기의 향이 그리웠다. 문득, 한국은 ‘식감’에 더 치중하여 음식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한국의 곱창은 잡내를 없애는 대신 굽기의 정도나 익히는 정도에 있어서는 그 다양성이 홍콩보다 탁월하다. 홍콩은 웬만하면 곱창과 막창을 부드럽게 조려 놓기 때문이다. 식감을 중시한다면 한국의 부속 고기를, 향을 중시한다면 홍콩의 부속 고기를 맛보라고 추천할 수 있겠다. 물론 나 같은 부속 고기 박애주의자에게 이 다양성은 행복한 선택지일 뿐이다.

이전 13화 홍콩적 한국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