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합석문화는 한국 사람들도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한 테이블에 모르는 사람이 함께 앉아 밥을 먹을 일이 거의 없는 한국과 달리, 홍콩은 당연하게 모르는 사람과 마주 보고 밥을 먹는다. 오래된 차찬텡에 들어가 보면 애초에 여러 사람이 함께 식사할 수 있도록 둥글고 커다란 테이블을 배치해 두었다.
합석 문화의 정도는 로컬함에 따라서 그 수준이 다르다. 허름하고 오래된 식당일수록, 또한 외국인보다 현지인이 많이 가는 식당일수록 합석의 레벨이 높아진다. 합석의 정도를 수치화해보자면 이렇다. 1단계, 한 테이블에 일행 하나가 식사한다. 혼자 와도 마찬가지이다. 2단계, 커다란 테이블에서 일행이 아닌 사람과 함께 식사한다. 3단계, 작은 테이블에서 낯선 사람과 딱 붙어 식사한다. 그래도 일행과 더 모여 앉아있다. 4단계, 낯선 사람과 아주 마주 보며 식사한다. 종종 일행의 얼굴보다 낯선 이의 얼굴을 더 많이 보며 먹어야 한다. 명예 홍콩인이 되려는 만큼 나도 모든 단계를 경험해 보았지만, 당최 이 합석 문화는 적응이 쉽게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나는 혼밥을 즐기는 편이다.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며 예절에 신경 쓰거나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 무의미하게 대화하지 않아도 된다. 혼자 식사를 하면 밥 먹는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할 여유가 생긴다. 좋아하는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 두 편을 연달아 보는 시간 정도면 딱 내 식사 시간에 알맞다. (물론 나중에는 오프닝만 보아도 배가 고파지는 부작용이 있긴 하다)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는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그것도 가장 좋아하는 행위인 먹는 행위를 하며 그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소중하다. 홍콩에 가서도 나는 종종 혼자만의 데이트를 즐기곤 했다. 맛집을 찾아간다기보다는 아무 차찬텡이나 들어가서 국수나 덮밥을 하나 시켜놓고 먹고 나왔다.
하지만 합석 문화 때문에, 그놈의 합석 문화 때문에 골치 아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맞은편에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가 힘겹게 식사를 하고 빨리 자리를 치워주는 것을 보며 혼자 앉은 내가 어떻게 여유를 가지고 밥을 먹을 수 있었겠나.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들은 종종 호기심을 가지고 맞은편에 앉은 외국인에게 말을 걸곤 했다. 혹시나 이 외국인이 제대로 먹을 줄 모르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시트콤 두 편이면 넉넉하게 밥을 먹고 나올 수 있던 나는 시트콤 하나가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뜨게 되었다.
사실 ‘합석’의 존재 이유 자체가 회전율을 좋게 하기 위해서 인데, 죽치고 자리를 뜨지 않는 한 명 손님이 식당 입장에서도 달갑지는 않을 터였다. 그래서 혼자 다닐 때는 인적이 드문 식당을 주로 찾아다녔다. 다행히 입맛이 까다롭지 않기에 어디를 가도 만족스럽게 식사하고 나올 수 있었다. 그마저 식당도 찾기 힘든 지역으로 놀러 갈 때에는 ‘하나 무스비’에 들러 연어 삼각김밥을 샀다. 이곳은 삼각김밥 전문점인데, 어떤 전철에 가더라도 존재한다. 그리고 어떤 지점을 가던 맛이 똑같다 (좋다). 열차에 오르기 전 잔뜩 입에 욱여넣고 물과 함께 넘기면 한 끼가 든든하게 해결됐다. 이것도 혼밥이라고 하면 혼밥일 것이다. 편의를 위해 찾은 곳이지만 내가 정말 괜찮게 생각한 ‘식당’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홍콩의 생활 문화 중 정말 적응하기 힘든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트림의 자유’이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트림하는 것이 예의인 한국과 달리 홍콩에서는 다 들리게 용트림을 해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 심지어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다고 해도 괜찮다. 트림에 대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와중, 나는 신경이 쓰였다. 미친 듯이 신경 쓰였다. 홍콩의 식당에서도 가끔씩 기분 좋게 식사를 한 사람들의 트림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그러면 한창 식사를 하던 나는 입맛이 완전히 달아나 버리는 것이었다. 자연스러운 인간의 생리 현상임을 알고 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남의 생리 현상 사정을 알고 싶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함께 식사하면 우리 테이블에 집중하느라 남의 테이블을 신경 쓸 겨를이 없지만 (한국인인 우리를 위해 현지 친구들이 트림은 자제해 주었다), 혼자 식사하면 이상하게도 다른 테이블 소리가 잘 들린다. 사소한 이유이긴 하나, 식당에 혼자 눌러앉아있기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가 이 때문이었다.
이런 합석 문화가 한국에 돌아오기 직전에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다. 합석의 불편함을 신경 쓰기엔 먹어둬야 할 홍콩 음식이 너무 많았다. 한국에서 홍콩식 토스트나 완탕면을 먹으면 절대 현지의 그 맛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돌아오기 전에는 혼밥 하기 좋은 식당을 줄기차게 방문했다. 다행히 요즘에는 신식 차찬텡이 많이 생겼다. 혼자 식사를 하러 가면 사람과 마주 보지 않아도 되는 바 테이블 형태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홍콩에서 혼밥 하는 요령이 생기자 그런 류의 차찬텡만 찾아다녔다. 식당에 들어가 완탕면이나 볶음 국수, 그리고 함께 마실 똥랭차 한 잔을 시켰다. 그리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폰으로 <김씨네 편의점>을 틀어놓고 이어폰을 끼곤 했다.
어느 날은 북적북적한 식당 안에서 더 북적북적한 도시를 넘겨 보다가 가만히 영상을 껐다. 그리고 바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풍경을 반찬 삼아 먼저 도착한 똥랭차 먼저 홀짝였다. 음식 맛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풍경만큼은 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