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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로 Sep 27. 2024

내가 사랑하는 홍콩영화(2), 아비정전

사랑에 대한 이야기


 최근 정동극장 세실에서 연극을 하나 보고 왔다. 연극은 ‘장국영을 사랑하는 모임’ 소개와 함께 시작한다. 그들이 장국영 15주기 추모 영상을 찍기 위해 홍콩에 방문했을 때, 당시 홍콩은 2019년으로 홍콩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던 해였다. 장국영의 팬들과 시위대가 만나 벌어지는 일들을 허구적 상상력을 동원해 제작한 연극이 바로 <굿모닝, 홍콩>이다. 연극은 정말 좋았다. 연극 내내 은은하게 드러나는 팬심에서 장국영을 정말 좋아하는 연출가의 마음이 엿보였고, 무대에서 울부짖는 배우들로부터 시위대의 아픔과 슬픔이 잘 드러났다. 장국영을 기리는 연극인만큼 그가 나온 모든 영화가 언급되었다.

 연극에서는 주인공은 <아비정전>의 대사를 언급한다.

 “발 없는 새가 있지. 날아가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 대. 평생 딱 한 번 땅에 내려앉을 때가 있는데 그건 죽을 때지!”.

 <아비정전>을 처음 관람했을 때가 많이 기억났다. 헐렁한 러닝셔츠 한 장과 트렁크만 걸친 채 거울 앞에서 람보 춤을 추던 아비의 외로운 삶을 다룬 영화이다. 왕가위 감독이 당시의 홍콩을 참 불안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아비의 인생은 머묾과 떠나감의 반복이었다. 아비는 매력적이고 자유로운 남자이다. 많은 여자에게 마음을 다 주는 듯하다가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떠나기를 반복한다. 그를 사랑했던 려진과 루루는 최선을 다해 아비에게 인정받으려 하지만 그럴수록 아비는 멀어졌다. 현실에 정착하지 못하든 대신, 그는 언제나 자신을 버린 친어머니를 찾기 위해 멀리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친어머니를 만날 기회를 얻게 되지만 그의 친어머니는 그를 만나려 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그는 삶의 이유를 잃게 된다. 운명의 장난인지, 얼마 안 있어 불의의 사건에 휘말린 아비는 갱단의 공격으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아비의 삶에서 홍콩이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 ‘정착’이라는 키워드에 있을 것이다. 스스로 정체성을 찾기도 전에 어머니에게 거절당한 아비에게서 영국에게서 중국으로 정체성을 옮겨야 했던 90년대 홍콩이 보인다. 90년대 홍콩 사람들은 타의로 흔들리는 홍콩을 바라만 보아야 했다. 홍콩의 어머니는 영국일까 중국일까? 어째 혼란스러운 그 역사는 어디에도 정착 못 한 채 부유하는 아비의 삶과 많이 닮아있다. ‘나의 것’을 안전하게 지키는 일은 원래 어렵다. 하지만 만일 ‘나의 것’에 대한 정의마저 흔들린다면 그때는 그것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

 <굿모닝, 홍콩>에서 시위대가 ‘자유’에 대해 이야기할 때 눈물이 흘렀던 것 같다. 그리고 집에 와서 대사를 곱씹고는 다시 한번 울었다. 정체성이 부유하든 말든 자유를 소중하게 지키려는 그 용기를 생각했다. 불과 5년 전이다, 그 자유를 지키려 한 마지막 투쟁은. 이를 외면한 채 나는 종종 ‘옛날의 홍콩이 그립다’는 식의 기만을 하곤 하지 않았나.

 아비는 어머니에게 입은 상처를 주변인들에게 되돌려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비를 떠난 사람들은 모두 행복을 찾는다. 타인을 사랑하며,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서 말이다. 결국 결핍을 극복하게 한 것은 ‘사랑’처럼 보인다. 연극 속에서도 장국영의 팬들은 장국영에 대한 ‘'사랑' 하나로 홍콩에 들렀다가 시위대가 지키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 아니었나. 홍콩을 향한 둘의 사랑은 어떻게 보면 닮아있기도 한다.

 ‘사랑을 하자’는 참 뻔한 방법이지만 어쩌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기억하게 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꺼내어 곱씹다 보면 껌처럼 질긴 기억이 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속 아주 깊은 곳에 묻히기 전에 다시 꺼내어지고 곱씹어진다. 예를 들어보자면 이렇다. 나는 ‘옛 홍콩’이 좋아서 홍콩에 왔다가 사랑에 빠졌다. ‘현 홍콩’을 지키기 위한 무수한 노력마저도 내가 홍콩을 사랑하는 이유라면 이 사랑은 평생 갈 것이다. 사랑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홍콩에 남아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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