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딤섬
기숙사는 고급 동네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거지를 쌓아 올리는 게 일반적인 홍콩에서 단독 주택이 즐비한 동네라고 하면 그 느낌을 알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한남동쯤 될 듯싶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숙사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아주 빽빽한 주거지가 나온다. ‘섹깁메이’라는 동네이다. 한국에 와서 이곳의 역사를 찾아보다 알게 된 점이 있다. 섹깁메이는 판자촌이었던 동네를 재개발해서 아파트를 줄줄이 세운 동네라는 것이다. 고급 주택이 들어선 곳 바로 옆이 판자촌이라는 점마저도 한남동과 비슷한 곳이다.
섹깁메이에는 아기자기한 추억이 많이 서려 있다. 장을 보기 위해 줄기차게 방문한 마트가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기숙사에서 가장 가까운 마트는 쇼핑몰 지하에 위치했기에 접근성은 좋았으나, 학생인 내가 부담하기 물가가 다소 비쌌다. 그래서 조금 걷더라도 섹깁메이에 있는 ‘wellcome 마트’를 이용하려고 했다. 일주일, 혹은 이주일 치 식재료가 담긴 장바구니를 끌고 버스를 기다리던 시간은 친구들과 내게 잊지 못할 추억이다. 가끔 지나가는 길에 초밥집에서 8 피스 초밥을 포장해 와서는 냉장고 도둑 눈에 띄지 않게 (이곳에서 어떤 물건도 도둑맞아 본 적 없지만, 희한하게 식기구나 식재료를 가져가는 사람은 즐비했다) 비닐 채 처박아두곤 했다. 생활에 밀접한 기억이기에 섹깁메이에 대한 추억이 서려 있는가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실 장 보러 다닌 빈도만큼, 야식을 먹으러 이곳을 자주 들락거렸다. 시간은 반드시 새벽이어야 했다. 왜냐하면, 새벽에만 장사하는 딤섬을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섹깁메이에는 ‘메이킹’이라는 아침밥 음식점이 있었다. ‘백종원의 유튜브’나 ‘전지적 참견 시점’ 홍콩 여행 편에서, 그때그때 나오는 딤섬을 가져다가 먹고 빈 그릇으로 계산하는 식당을 본 적 있을 것이다. 메이킹도 같은 시스템이다. 카트 가득 쌓여있는 딤섬 찜통을 한 개씩 열어보면 그 안에 하가우도 들어있고 시우마이도 들어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딤섬은 메추리알이 올라간 첸마이였다. 첸마이는 시우마이와 맛이 거의 비슷한데 그 위에 올라간 메추리알이 짭짤한 맛을 잘 잡아줘서 좋았다. 차슈바오도 참 맛있었다. 카트 앞 주인아주머니한테 차슈바오 하나 달라고 하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찐 바오를 무심하게 툭 올려주었다. 뜨거운 속을 잘 불어가며 먹는 맛이 일품이어서 그것도 참 좋아했다.
식당은 오전 4시에 열어서 오전 11시에 닫는다. 가장 맛있는 딤섬을 먹으려면 반드시 4시까지 깨어있어야 했다. 하지만 4시에 오픈런해도 이미 음식점에는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대부분 할아버지다. 홍콩에서도 할아버지들은 아침잠이 없어 4시부터 식사를 하러 오신다. 딤섬 한두 그릇, 죽 한 그릇, 그리고 펼쳐있는 그날의 신문이 테이블마다 보인다. 아마 아침을 먹고 일을 하러 나가는 분들일 것이다.
3번쯤 들렀을 때는 슬슬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섹깁메이로 넘어오는 길에는 커다란 공원을 하나 지나야 했다. 새벽에도 그곳은 늘 활기로 가득 차 있는데, 운동하러 나오신 부지런한 할머니들이 지르는 기합 소리가 멀리서도 들린다. 그 공원을 지나가다 종종 마주치는 할아버지 한 분이 있었다. 그는 언제나 한국인들끼리 쫑알쫑알 떠드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코리안!’하고 외쳤다. 나중에는 우리도 그의 얼굴을 기억하고 함께 아는 체를 했는데, 깔깔 웃다가도 금세 갈 길을 위해 흩어지는 것이다. 식당에서도 아는 얼굴이 있었다.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죽을 시켜 먹는 아주머니 한 분과 아저씨 몇 명이 있었다. 나중에 여행으로 홍콩을 방문했을 때 메이킹을 들렀는데,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식사하는 그들을 보았다. 그들은 나를 모르겠지만, 나 혼자서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 ‘익숙한 얼굴’에 대해서는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인이 그 정도의 로컬 음식점을, 그것도 오전에만 여는 음식점을 방문한다는 것은 주인에게도 특이한 일이었는지 몇 번의 방문 후에는 우리를 기억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인 무리로 갈 때는 당연히 티가 났을 테고 홍콩 친구들에 섞여 갈 때는 다 같이 영어를 쓰는 모습이 특이하게 보이긴 했을 것이다. 주인은 무뚝뚝한 표정을 일관하는 두 명의 아주머니였는데 번갈아 가며 계산서를 작성해 주었다. 어느 날, 주인아주머니 한 분이 딤섬 그릇 합산이 끝난 계산서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영어로 물었다. ‘한국인이니?’ 무척 다정한 목소리였다. 살짝 웃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는데, 원래 까칠해 보이던 사람이 다정하게 다가오면 더 감동 아닌가. 나를 포함한 한국인 무리는 오버 액션을 하며 ‘맞다’라는 의사를 전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주인아주머니 두 분 다 우리를 기억했다. 영어로 한 두 마디씩 던지며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던 기억이 생생하다. 수많은 손님을 상대하면서, 그중 타지인을 기억하고 알아듣게 인사해 주는 것은 참 세심한 배려이다. 곱씹을수록 가슴 따스해지는 기억이다.
메이킹에서 먹는 딤섬이 홍콩 전역에서 맛본 딤섬 중 1위라는 친구의 평이 있던 반면, 나는 그곳의 딤섬 맛이 특별하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홍콩의 어디를 가도 맛있는 딤섬은 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졸린 눈을 부릅뜨고 20분쯤 걸어서 도착한 딤섬 집은 특별했다. 아침을 시작하는 노인들과 이제 들어가서 한잠 푹 자야 하는 대학생들의 조화는 묘하기 짝이 없었다. 다른 하루 패턴을 가진 사람들이 오로지 딤섬을 먹겠다는 의지 하나로 모인다는 게, 지금 생각해 보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메이킹의 딤섬에 대한 기억을 오래오래 남겨주는 건 새벽 4시 그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오묘한, 하지만 정겨운 분위기일 것이다. 이는 고스란히 섹깁메이에 남아 매일 아침 다시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