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대체 뭐 하면서 놀아?”
아직까지도 또래 홍콩 로컬들을 만나면 물어보는 질문이다. 작은 홍콩 땅에서, 길어도 2시간이면 끝에서 끝까지 이동할 수 있는 땅에서, 엠지스러운 곳은 열 손가락 안에 꼽을 땅에서 대체 그들이 뭘 하면서 노는 건지 모르겠다. 쬐끔 더 큰 한국에 산다고 유세 떠는 건 아닌가 싶지만 서도, 오지랖 넓은 걱정이 되었다. 한국은 청년들이 놀러 다닐 만한 데는 확실히 많다. (어린이랑 어르신이 다닐 데는 없지만) 하지만 이곳에서도 밥집이든 전시든 인기가 있으면 30분이고 1시간이고 줄을 서야 하는 곳이 태반이다. 그렇다면 한국 인구 밀도를 훨씬 초월하는 홍콩은 어떻겠나. 이 좁고 빽빽한 곳에서 ‘너희는 뭘 하며 노니?’에 대한 대답을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첫째, 클럽을 간다. 하지만 유명한 클럽거리는 겨우 란콰이펑 하나이긴 하다. 그것마저도 클럽들이 자리를 못 잡고 고층에 위치해 있다. 그만큼 수가 적다는 뜻이다.
둘째, 술을 마신다. 한국 대학생처럼 밥 먹듯 술을 마시는 것은 아니지만, 홍콩의 대학생도 술 문화를 즐긴다. 우르르 술집에 가는 경우보다는 야외에서 노상을 하는 경우를 더 많이 보았다. 저번에 언급한 것처럼 기숙사에서 몰래 마시는 경우도 있다.
셋째, ‘오캠’을 간다. ‘오캠’은 ‘오티 캠프’의 준말이라고 알고 있다. 오캠은 기숙사 단위로, 과 단위로, 혹은 학생회끼리 가는 경우가 많다. 대학 동아리를 만들 수 없는 홍콩에서 학생들이 단체로 모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데, 오캠에서 만큼은 원 없이 게임하고 술 마시고 수다 떨 수 있다고 한다.
넷째, 해외여행을 간다. 홍콩 친구들은 해외여행을 정말 자주 다닌다. 홍콩이 지리적으로 여행 다니기 쉬운 위치인 이유도 있지만, 이를 고려하더라도 그들은 여행을 정말 많이 다닌다.
의외로 나처럼 영화제나 예술제를 기웃거리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되려 나와 같은 외국인 친구들이 그런 이벤트를 즐겨 찾았다. 홍콩의 예술 문화를 향유하러 예술계열 학생들이 교환학생을 자주 오곤 한다. M+뮤지엄이 완공된 이후에는 예술 인프라가 훨씬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정작 본토 친구들은 그런 인프라가 모여있는 서구룡 쪽에 관심이 없었다. 예술 전공 친구들이 있었다면 달랐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친구들 중에서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로컬 친구들과는 취미를 공유하기 쉽지 않았다.
갓 도착한 교환학생에게 홍콩의 첫 이주는 환상이었다. 실제 이 시기를 부르는 명칭이 있는데, 허니문 기간(honeymoon period)이라고 한다. 그 이후의 한 달은 고향에 대한 향수로 허덕이게 되는 기간을 맞이하게 된다. 나조차도 그 마의 시기에 접어든 계기가 있었는데, 같이 팀플을 하는 친구들이 나를 빼고 광둥어로만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학 팀플에서 교환학생을 끼워주지 않으려는 것은 전세계 공통인 듯하다) 물론 내가 있어 불편할 상황이 이해는 되었다. 하지만 소외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자리에 더 정이 붙지는 않았다. 역시 다른 나라에서 온 내가 홍콩에 완전히 섞일 수는 없겠다는 생각에 슬슬 무료함이 덮쳐왔다.
그쯤 기숙사 친구들이 나를 포함한 한국인 무리를 데리고 다녔다. 어느 날 그들은 ‘사이쿵’이라는 지역의 바베큐 파티장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사이쿵은 홍콩 구룡반도 북동쪽에 위치한 해안 지역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을왕리 느낌의 동네이다. 그곳에 무한리필 대형 바베큐장이 있었다. 소, 돼지, 닭, 떡, 옥수수 등 온갖 구이용 재료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종류가 많아 골라먹는 재미가 있었다. 넓은 공간에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있으니 엠티 분위기가 났다. 1시간이면 오는 거리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참 신기했다. 바닷가에 가는 것도, 바비큐장에 가는 것도 홍콩에서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지역이 좁은 게 큰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한창 무료함을 겪던 내가 홍콩에 다시 애정을 붙이게 된 계기가 바로 이날이었나 싶다. 특별하지 않은 일상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는데, 왜 자꾸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 했을까? 홍콩의 모든 걸 알아야만 섞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나? 겨우 한 시간만 가도 바다를 볼 수 있는 지역에 머물고 있다. 바다를 그렇게 좋아하는 내가. 그거 하나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궁금하다. 홍콩의 청춘들은 뭘 하며 젊음을 즐기는지. 그래서 계속 물어본다. ‘너희는 대체 뭐 하면서 놀아?’ 오늘 간 데는 어디야?‘ ’아직도 클럽에 다니니?‘ ‘한국에도 이런 거 있어. 놀러 올래?’
계속해서 그들과 시시한 연락을 주고받도록 하는 건 결국 식지 않는 애정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