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여느 때처럼 냉막했다. 낡은 문고리가 나를 반겼다. 아니,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은색의 빛바래고 녹슨 문고리가 필사적으로 막아섰다. 작은 열쇠구멍의 어두운 틈에서 소름 끼치는 고요함이 흘러넘쳤다. 그러나 오래된 계단식 아파트 15층에서 도망갈 곳은 없다. 위도, 아래도 온통 계단이다. 도망갈 곳은 없다. 집을 떠나며 조금은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벽이 밀려왔다. 강철의 문과 끝없는 계단이 밀려왔다.
틈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성이고 있을 때 문이 벌컥 열렸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몸이 움츠러들었다. 단발머리의 작은 체구를 가진 중년의 여자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의 굳게 다문 입 주위에 주름이 자글거린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그럴 때면 나는 발가벗겨진 채 오들오들 떨던 5살의 12월로 돌아간다. 움츠린 손바닥으로 세차게 날아오는 두꺼운 작대기를 떠올린다. 나를 붙잡고 서럽게 울던 중년의, 하지만 지금보다는 젊은 엄마를 떠올린다.
"뭐 하고 있어? 들어오지 않고."
나는 짐짓 짐이 무거운 체하며 말을 돌렸다.
"짐 정리 좀 하고 있었어요. 끈이 떨어질 것 같아서."
어머니는 가방끈을 힐긋 바라보며 다그쳤다.
"멀쩡하기만 한데 뭐. 너는 항상 그러더라? 제대로 똑 부러지게 하는 게 없어. 문 두드리면서 왔다고 말하는 게 그렇게 힘들어? 한심한 놈."
잔소리가 길어질 기미가 보인다. 나는 의식적으로 주의를 돌렸다. 어린 시절부터 터득한 생존전략이다. 이 전략의 핵심은 상대방이 내가 듣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일정하게 고개를 끄덕이거나 대답을 하는 것이다. 네, 알겠어요, 죄송해요. 이 셋은 마법의 단어다. 이 단어로 언제라도 주의를 돌릴 수 있고, 들키지 않을 수 있다.
"밥은."
"죄송해요. 아니, 먹었어요."
"먹었다고? 먹지 말라고 어제 말했잖아!"
이런, 하마터면 들킬뻔했다. 오랜만이라 주의가 부족했다. 사실 밥 따위는 어제부터 먹지 않았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다. 게다가 어머니와 마주 앉아 대학 생활을 이야기하며 밥 먹을 생각을 하니 명치에 돌이 올라앉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연신 죄송하다 말하며 고개를 꾸벅 숙이고 방으로 들어갔다. 벌써 기숙사 생활이 그리웠다.
옷을 벗고 침대에 가만히 누웠다. 익숙한 천장이다. 기숙사보다 높은 천장이 나를 짓누른다. 새하얀 벽지는 내가 마시고 먹어야 할 양분까지 모조리 빨아들인다. 이 방은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급하게 떠나느라 책상 밑에 떨어뜨린 펜 한 자루마저. 정말 숨 막히는 공간이다.
"저녁 먹어라."
방문 너머로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어둠이 방안까지 밀어닥쳤다. 잠깐 잠에 들었나 보다. 빳빳하게 굳어버린 손을 쥐락펴락하며 몸을 일으켰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기분이 들어 오른손으로 왼손 엄지께를 만지작거렸다. 의지를 가진 생물처럼 제멋대로 경련하던 손이 무언가 빠져나가는 감각과 함께 현실로 돌아왔다.
시간을 보니 벌써 오후 8시다. 기숙사를 나온 것이 8시, 역에 도착한 것이 8시 반, 그리고 2시간 정도 지하철을 탔으니 집에 도착한 시간을 어림잡아 10시 40분에서 11시일 것이다. 그 뒤 어머니의 잔소리를 잠깐 듣고 방에 돌아오자마자 쓰러졌으니 8시간 정도 잤나 보다. 그 사이에 몸에 변화가 있는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발끝부터 몸을 더듬었다. 다행히 아직 이곳에 있다.
하지만 다행은 아닐지도 모른다. 개강 일주일 전부터 기숙사가 열리기 시작한다. 나는 이곳에 두 달가량 메어있어야 했다. 어떻게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 처참한 공간에 붙어있었는지 모르겠다. 기억이 시작된 그 순간부터 끊임없이 어딘가로 나가고 싶었던 이유는 아마 그러한 심정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방문 너머, 내 방과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음에고 부엌에 있는 어머니의 불편한 심기가 전해졌다. 어쩌면 그저 내가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나가야 했다. 더 미적대다간 간수가 들이닥칠 것이다. 슬며시 연 방문 사이로 오렌지색 불빛이 쏟아졌다. 집에서 과외를 하시는 어머니가 아이들의 면학 분위기를 위해 몸소 선택한 색이다. 오렌지색의 불빛 사이로 음울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두 남자가 각자의 방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아버지와 형은 지친 얼굴로 나를 바라볼 뿐 그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형은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내 눈치까지 살피고 있었다. 어머니는 별말 없이 반찬을 내려놓고 안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 갔다. 잠시 후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높아진걸 보니 과외 학생의 학부모인 듯했다.
집에서 제일 큰 방은 어머니가, 그다음 티비가 있는 방은 아버지가, 베란다와 맞닿아있어 계절을 타지만 가장 작지는 않은 방은 내가, 창고같이 음습한 방은 형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 방들은 일종의 서열이었다. 퇴직 후 자격증 공부만 하느라 가장의 기능을 상실한 아버지는 안방을 빼앗겼고 과외를 통해 가장의 기능을 대신한 어머니가 그 방에 들어섰다. 기대받는 수재였던 형은 계속된 입시 실패로 나에게 베란다가 딸린 방을 내어주고 창고로 들어갔다. 거실은 집에 속한 구역이 아니었다. 하얀 커튼으로 분리된 거실에는 소파와 TV 대신 커다란 책상 네 개가 열댓 개의 의자를 품고 있었다. 거실은 우리에게 집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수저를 들며 먼저 식사를 시작했다. 강요당한 예절이 허기를 억눌렀다. 두렵고 답답한 공간도 이틀간의 허기를 막지 못했지만 예절이 이성의 자리를 대신했다. 이내 형이 숟가락을 들었고 나도 이어서 젓가락을 들었다. 어머니는 식사에 참여하지 않는다. 집안의 남자들과 벽을 쳐놓고 철저히 단절하기를 선택했다. 어머니는 우리와 다른 곳에 속해있다. 어머니의 공간은 안방, 거실이었으며 우리는 각자 방에 속해있다. 부엌은 집에 속해있지만 어머니에게 기울어져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깔아뭉갰고 형을 짓눌렀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매달렸고 형을 깔아뭉갰다. 형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매달렸지만 아무도 깔아뭉개지 못했다. 나는 그 굴레에서 벗어났다고 여겼지만 내가 대학에 들어간 후로 형이 나에게 깔려있었으며 나는 여전히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깔아뭉개져 있었다.
식사 시간은 조용했다.
'밥을 먹을 때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
그건 일종의 강령이다. 숟가락으로 밥그릇의 가장자리를 긁어서도 안되고, 소리를 내며 음식을 씹어도 안되고, 젓가락을 잘못 쥐어서도 안된다. 숟가락은 그릇과 부딪히지 않도록 가볍게 쥐어야 하고, 젓가락 한쪽은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다른 쪽은 약지에 올려두어야 한다. 당연히 젓가락끼리 교차되어서는 안 된다. 그게 법칙이다. 깨어져서는 안 되는 숭고하고 대단한 법칙이다.
그러나 형은 언제나 법칙을 어겼다. 고의로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형의 숟가락은 항상 밥그릇에 붙어있었고, 입에서는 요란한 음식 씹는 소리가 났으며 젓가락은 서로 교차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왼쪽 눈썹이 꿈틀거리며 살며시 올라갔다. 심기가 불편하다는 뜻이다. 아버지의 심기라 하면 불편할 때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훨씬 많았다. 밥을 먹는 순간에도, 바닥에 먼지가 떨어져 있을 때도, 발 뒤꿈치를 붙이고 걷을 때도 심사가 뒤틀렸다. 그런 행동은 아버지의 무너질 대로 무너진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 형과 나는 그런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항상 조심했고 집안은 결벽적인 고요함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형은 식사 이외에도 아버지의 법칙을 어겼다.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형은 항상 부주의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모범생이었다. 숟가락은 항상 가볍게 쥐어 밥그릇과 공간을 두었고, 입을 다물고 음식을 씹었으며, 젓가락은 '정석으로' 잡았다. 매일 물티슈로 방을 닦았으며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었다.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려봤자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아버지의 예민함은 퇴직 이후 더욱 심해졌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일 때부터 공부를 시작했으니 벌써 7년째 책과 씨름하고 있는 것이다.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전산 회계라든가, 공인중개사라든가 하는 자격증을 당당하게 들고 돌아왔을 때는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자신감을 얻은 아버지는 법무사에 도전했고 번번이 떨어졌다. 1차에는 무난하게 붙는 것 같더니만, 2차 시험은 도저히 감을 못 잡는 듯했다. 아버지가 포기하지 않을 때마다 어머니가 감당해야 하는 무게가 늘어났고 아버지의 괴팍함은 점점 심해졌다.
형은 그에 휘말려 뚜렷한 목적도 없이 공무원 공부를 시작했다. 듣기로는 공무원을 준비한다고 했다. 이제 대학은 어찌 되어도 괜찮으니 학벌로 평가받지 않는 직업을 가지라는 아버지의 말에 넘어간 것이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투자한 게 아까워서라도 대학을 꼭 가야 한다고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둘의 의견차이는 좁혀지지 않았고 집은 내가 기숙사로 떠나기 전보다 더 고요해졌다. 형은 대학 입시 공부와 공무원 공부를 병행해야 했다.
불편한 침묵은 아버지가 설거지를 하러 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설거지와 분리수거는 아버지의 몫이다. 그 누가 부탁하지도, 강요하지도 않았지만 아버지는 그걸 스스로의 몫으로 정했다. 그건 집에서 아버지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권위였다. 아버지는 갈 데 없는 분노를 그릇에 돌렸고 그릇은 언제나 깨끗했다. 형은 아버지가 일어나자 하나 남은 소시지를 내 밥 위에 올려주고 식탁을 치웠다.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허겁지겁 밥을 밀어 넣었다. 목이 메어 밥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티를 내서는 안 된다. 이 기이하고 불쾌한 침묵을 깨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았다. 심지어 가장인 어머니조차 이 침묵을 깨서는 안된다. 침묵은 어느새 집안의 성경으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