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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사과 Mar 11. 2023

400번 버스를 타면

시와 감상

400번 버스를 타면

400번 버스를 타면 창문을 닫아야 한다


특히 한강진을 지날 때는 반드시 닫아야 한다


창문 틈새로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눈이 시려


저 멀리 날아가는 새도, 고고하게 흐르는 강도, 바쁘게 스쳐가는 차도 볼 수 없으니까


오후 1시 반, 순천향 대학병원을 지나 한강진 정류장으로 향하는 버스에서는


반드시 창문을 닫아야 한다.

 2023.03.11


오늘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사유의 방'에 대한 콘텐츠를 유튜브에서 시청한 이후부터 쭉 가보고 싶었던 참이었는데, 마침 날씨도 풀리고 오랜만에 시간이 나 설레는 마음으로 향했습니다.


사유의 방도, 한반도 유적 상설 전시도 보는 내내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아름답고 규모가 있었지만 책상에 앉아 오늘 하루를 반추하니 떠오르는 것은 400번 버스에서 바라본 한강의 모습이었습니다.


순천향 대학병원 앞에서 탄 400번 버스는 한강진 역과 이태원을 지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합니다. 오후 1시쯤이 되면 햇살이 한강에 부수어져 아름다운 윤슬을 만들어냅니다. 알알히 흩어진 빛의 조각들이 지나가던 차, 날아가는 새, 높이 솟은 건물들의 창문에 부딪혀 마치 온 세상이 빛에 휩싸인 듯한 황홀한 착각을 연출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창문을 열면 세차게 달리는 버스와 강바람의 협공으로 눈이 시려 자칫 이 장관을 놓치기 마련입니다. 피부로 느끼는 시원함도 매력적이지만, 역시 직접 마주한 절경은 오롯이 눈에 담아야 가슴에 박히는 법인 듯합니다.


혹시 400번 버스를 타고 이곳을 지나신다면, 굳이 400번이 아니라 다른 버스를 타고서라도 한강변을 지나신다면 꼭 창문을 닫고 이 풍경을 눈에 담아보시기 바랍니다. 빠르게 흐려지는 시야에서 천천히 걸으며 바라본 아름다움과는 색다른 무언가가 불현듯 날아와 박힐지도 모르는 노릇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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