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방울
매일 미루던 작은 결정을, 오늘만은 실행하려 했지만 사소한 버릇들이 연쇄적으로 막아선다. 구겨져 나동그라진 휴지 뭉치. 제 자리에 놓는 것 마저 미뤘더니 이곳저곳 굴러다는 연필과 펜들. 먹다 만 커피가 담긴 머그컵. 좋아하는 사탕 몇 개. 펼쳐진 다이어리. 충전기에 꽂힌 채로 걸려있는 헤드폰.
이걸 다 정리해야 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분명 정리하고 나면 글을 쓰고 싶지 않겠지. 아니, 지금도 쓰고 싶지 않으니까 상관없나.
따뜻한 햇살을 보고 싶다. 우중충한 날씨가 책상을 더 어지럽히는 것 같다. 환기를 좀 해야겠다 생각하고 일어난다. 햇살은 없지만 동네의 내리막길이 훤이 보이는 창가를 좋아한다. 오늘따라 시끌시끌한 밖을 내다보니, 연두색 공이 멈추지 못하고 내리막길을 발판 삼아 튕겨져 내려가고 있다. 공을 잡으려고 뛰어가는 아이들의 소리가 시끄럽다. 농구공인가. 공이 점점 강한 힘으로 튕겨져 올라온다. 연두색 공이 주차되어 있던 차에 가로막혀 아이들에게 잡혔다. 힘들게 따라잡아 잡은 공일 텐데 철없는 아이들에게는 그게 문제가 아닌가 보다. 말리는 방앗간 아저씨를 웃음소리로 무마하며 아이들은 또다시 연두색 공을 바닥으로 던졌다. 연두색 공은 탄성이 좋은 건지 조금만 더 힘을 받으면 건물 높이를 넘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커피를 홀짝이는 순간. 연두색 공이 부딪힌 바닥에서 응원을 받아 우리 집 창문 앞으로 올라왔다. 생각지도 못하게 눈앞의 연두색 공을 마주한 나는 무턱대고 찰나의 공을 잡았다. 아주 가벼운 고무공이었다. 이런 걸 탱탱볼이라고 하던가. 창문 아래 멀리서 아이들의 탄성소리가 들린다. 뒤이어 공을 던져달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상하게 연두색공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냥 창문을 닫으면 그만일 텐데.
공을 왼손에 들고 고개를 돌려 집안을 둘러본다. 아까처럼 어지럽혀져 있는 책상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찬란한 연두색 공까지 집에 들여놓을 공간은 없어 보인다. 무심하게 창문 아래서 연두색 공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한번 바라보고는 갑자기 올라오는 장난기를 참지 못하고 힘차게 창문 밖의 내리막길로 공을 던졌다. 빠르게 지면에 닿아 튀어 오르던 연두색 공이 갑자기 여러 개로 증식했다. 처음에는 너무 세게 던져서 공이 찢어진 줄 알았지만, 연두색 공은 한숨에 끝없이 생기는 비눗방울처럼 방울방울 거리를 떠다녔다. 아이들의 감탄 어린 목소리가 들린다. 나 또한 감탄 어린 눈으로 창밖을 내다본다. 내가 한 건가. 내가 연두색 공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계속 사라지지 않고 튕겨지는 연두색 공이 아른거린다. 저 중 하나쯤은 집에 두면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다가, 그만둔다. 연두색공이 하나도 아니고 내 집에서 증식해서는 곤란하다. 다시 커피잔을 들고 글이 써지지 않던 책상으로 돌아온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그라든다. 연두색 공은 아직도 그대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