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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Feb 13. 2023

어머니와 진뫼 마을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 (김도수 지음, 전라도닷컴)를 읽고-


쓰라린 아픔도 잊고 싶었던 애증도 추억이라는 옷을 입으면 소중해진다. 그 소중한 것들, 흘러간 것들을 건져 올릴 수 있는 옹달샘 같은 책이 있다.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 (김도수 지음, 전라도닷컴, 2015)이다.

<섬진강 푸른 물에 징·검·다·리> (전라도닷컴, 2004)에 이어 두 번째 산문집인 이 책은 잊히거나 잃어버린 고향의 정경과 찰진 모국어가 맑은 소리를 내며 추억을 소환한다. 저자의 마음걸음을 따라 읽다 보면 어릴 적 뛰놀던 강산이 펼쳐지고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가족들, 헤어진 이웃과 친구들이 그리움이란 이름표를 달고 불쑥 다가선다  


“취직되먼 주말마다 술병 들고 진뫼 마을로 달려오라”는 어머니. 저자가 첫 봉급을 타던 날에는 이미 세상에 안 계셨다. 그것이 사무쳐 첫 봉급 타던 날부터 부모님께 드리고 싶었던 속옷, 술, 용돈 등의 명목으로 저축을 했다 그 돈으로 부모님의 땀방울 버무려진 고추밭 가장자리에 사랑비를 세우고 그리움을 달랜다. “오매! 보고 싶어 미치겠소. 울 오매는 어째서 막둥이 자식 술 한 잔도 못 받고 고생만 허다 가불었데아”

반가운 것은 “굶지 말고 꼭 밥 히 묵고 댕겨라 잉. 한참 클 때 밥 굶으먼 키가 안 커 부러. 알았제”, “쬐깨만 더 매다 가자”등 말맛을 살린 점이다. 더불어 추억의 음식 맛도 되살아난다. 껌처럼 씹던 삘기, 노란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 싱건지 거섭을 넣고 비빈 구수한 청국장, 아궁이에서 금방 꺼낸 고구마,‘변또’ 뚜껑에 타 먹던 강냉이죽, 아버지 몰래 빼먹던 곶감, 동글동글 새알심을 만들어 쑨 동지팥죽 등에서 고향과 부모님을 향한 그리움이 몽글몽글 피어난다.


또 순박한 정이 넘쳐나는 고향의 정서가 촘촘히 숨 쉬고 있다. 이제는 추억의 저 뒷장에 묵혀버린 못줄 잡기부터 쇠죽방에서 모여 민화투 치던 이야기, 이마 튕기기, 손목 때리기, 입대하는 이웃사촌을 위해 닭서리 하기. 다슬기 잡다가 불어난 물에 허우적거리는 주민을 마을 사람들이 합심하여 구한 이야기들이 속살거리며 흐르고 있다.


진뫼마을 공동체를 다시 살리려는 저자의 간절함도 보인다. 죽어가는 정자나무를 되살리고 잃어버렸던 바윗돌까지 찾아와 마을을 지키게 만드는 정성. 징검다리 한 개, 손톱 사이에 낀 흙, 흘러가는 구름조차도 사랑한 그의 사모곡이 돌아서는 발걸음을 되돌려 놓는다.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살다 가리라. 어둠을 뚫고 산을 돌아 이윽고 바다로 흘러가는 섬진강 저 의연한 강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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