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지금이야 현명한 MZ들은 파이어족 성취를 위해 열심히 달린다지만, 20년 전만 해도 파이어족이란 용어는 있지도 않았을뿐더러 그 당시에 그런 말을 들었다면 일 안하고 놀려는 한량한 백수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 역시 그때는 모르고 지금은 알게 된 것 중의 한 가지. 지금 만약 누군가 빨리 은퇴하고 남은 인생을 즐기며 살겠다고 하면, 그 때와는 정반대의 생각으로 박수를 힘껏 쳐 줄 것이다.
오~ 똑똑한 사람~~~!!!
20년 전 탕비실에서 한 남자 동료와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오랫동안 싱가폴에서 살다 우리 회사, 즉, 한국회사에 입사했는데 1년도 채우지 않고 곧 회사를 떠날 것이었다. 나는 평소 그와의 관계가 나쁘지 않아 퇴사를 앞둔 그에게 서운함이 조금은 있었다. 회사에서 인정도 받고 있었는데 왜 떠나는 것이냐며 물었을 때 그는 연봉이 맞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그가 원하는 연봉을 회사에서 올려주지 않겠다고 한 것. 내가 다닌 한국회사에서는 잘 듣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그 당시만 해도 말만 연봉협상이지 거의 회사의 일방적인 연봉 통보에 수긍하지 않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 남자, 연봉이 맞지 않아서 퇴사한다는 이 남자가 멋졌다는 것 또 뒤늦게 찾아온 감회였다. 당시에는 한국 사정을 모르고 한국 회사에 적응못하는 사람 정도로 치부해버렸다.
연봉이 많이 안 맞아요?
내가 물었을 때 그의 대답에 나는 그 사람이 한심하게까지 느껴졌다. 일 안 하는 아내와 어린 아들도 있었던 걸로 아는데 그는 자기 꿈은 빨리 돈을 벌어 놓고 하루라도 빨리 은퇴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되도록 높은 연봉을 받아야 하는데 지금 회사가 자신의 목표를 총족시켜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직장생활 십수 년을 하고도 서울에 변변한 집 한 채 가지지 못한 나, 그리고 준비해 놓은 노년생활 따위 없기에 가능한 오래오래 일해야 당위성에 짓눌려 있는 지금의 나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십수 년 전 탕비실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그가 얼마나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인생을 향해 계획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아가고 있었던가 생각한다. 그리고 단순히 일을 오래 하는 게 능사가 아니고 하고 싶으면 하고 하지 않으면 안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상황에 자신을 안착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어느 호텔의 한때 잘 나가던 카피 문구처럼, 핵심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삶을 설정하고 선택하고 그렇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고, 그때는 다소 어쩌면 많이 늦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작금이다.
이 글을 읽는 젊은 분들은 부디,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숙고해서 설정하고 그대로 자신만의 삶의 방향을 향해 노 저어 나가시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