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친 엽서

2024.12.02 ~ 2024.12.08

by 휘슐랭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심심한 일상을 보내던 와중 내 앞으로 엽서 한 장이 도착했다. 나에게 엽서를 보낼만한 사람이 누군지 짐작도 안될뿐더러 요즘 세상에 엽서라니 의아했다. 뒷면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인 김광석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아무래도 나의 취향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발송한 것임이 분명했다. 왠지 모를 두근거림을 안고 엽서의 앞면을 확인하자 바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작년 크리스마스이브, 대구 여행을 다녀왔었다. 평소 김광석의 노래를 즐겨 듣는 나기에 김광석스토리하우스를 여행 필수일정에 적어놓았던 기억이 반짝했다. 흐릿해진 기억을 되짚어보니 그곳에 김광석이 그려진 엽서와 느린 우체통이 있었단 사실도 함께 떠올랐다. 내가 나에게 썼던 엽서가 1년 뒤에나 도착하는 느린 우체통을 통해 이제야 도착한 것이다. 어떤 내용을 적었는지 전혀 기억도 안 나는 걸 보니 1년이 시간이 짧은 시간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물론 내용과 관계없이 엽서 그 자체로 이전의 즐거웠던 추억을 회상할 수 있다는 점도 감사할 일이다.


1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내가 어떤 사람이길 바랐을지 편지를 쓰던 상황을 회상하며 엽서를 읽었다.


"1년 후의 나에게 보낸다. 엽서를 보내는 지금까지는 큰 풍파가 없던 삶이었지만, 이 엽서를 받은 나는 크고 작은 흔들림을 이겨낼 줄 아는 단단한 사람이면 좋겠다. 그렇게 되지 못했더라도, 1년 전 가졌던 생각이 이 엽서로 하여금 다시 상기될 수 있길 바란다."


나는 내가 스스로 바라던 단단한 사람이 됐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잘 모르겠다. 삶의 풍파라고 느낄만한 큰 이슈가 없어서 그런 건지, 나를 흔들만한 이슈가 있었지만 정말 단단한 사람이 되어 느끼지 못한 건지 판단이 쉽게 서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를 객관적 시선으로 재단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난 후 자신의 지난 다짐을 되돌아보는 일은 무용한 것인가?


사람이 정신과 육체로 구성되어 있듯이, 세상 모든 일은 내가 바라보는 주관적인 시각과 변하지 않는 객관적 사실로 존재한다. 내가 나를 돌아보는 행위 자체는 주관적인 시각에 속한다. 주관적 시각은 개인의 정서 및 의견에 관여하기 때문에 나는 이러한 사람이다라는 객관적 판단이 이루어지긴 힘들다. 어디까지나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일 것이다' 정도의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하지만 주관적 시각과 무관하게 '나는 이러한 사람이다'라는 객관적 사실 또한 존재한다. 나의 다짐대로 내가 실제로 단단한 사람이 되었는지는 나의 주관적 시각으로는 판단이 어렵지만, 분명히 나는 어떠한 사람이란 사실로써 존재한다. 결국 시간이 지난 후 자신의 지난 다짐을 돌아보는 행위는 주관적 시각을 넘어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끔 연습하는 과정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연습을 통해 우리는 조금이나마 팩트를 체크할 수 있는 눈에 가까워진다.


엽서에 동봉되어 있던 것은 단순한 추억 회상이 아니었다. 지난 1년간의 내 모습을 되돌아보게 함으로써 반성과 안도를 할 시간을 내주었고, 나 스스로를 조금이나마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려는 고마운 시도 또한 들어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셀프 엽서 한 장은 지난 1년을 되돌아볼 기회를 주었다. 아울러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할 시기라는 것도 다시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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