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내 아이가, 나의 동글이가 부모의 이혼을 받아들이고 있는(아직 -ing 이다.) 마음 아픈 과정을 담고 있다.
끝내지 못한 채 중단된 '나의 이혼을 알리는' 브런치북의 후반부에 연재할 예정이었고,
다시 시작한 지금의 브런치북 전반부에 연재할 예정이었는데, 점점 뒤로 밀려났다.
지금도 쓰고는 있지만, 정해진 연재일에 연재를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어쩌면 다른 이야기가 또 이 이야기의 앞에 놓일지도 모르겠다.
나와 전남편의 이혼이 동글이의 온 우주를 산산조각 내 버렸으니까.
동글이는 산산조각이 난 우주를 끌어안은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리하여 동글이의 이야기는 내게, 가슴이 미어지는 이야기니까.
1. 엄마, 아빠는 이혼하지 않을 거야.
(그럴 것이라는 믿음)
동글이는 전남편이 내게 이혼하자고 소리를 질렀던 그날 밤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혼 이야기가 나오고 며칠 안 되었을 때, 거실에서 동글이는 엄마 아빠가 진짜로 이혼하는 거냐 물었고,
나는 아빠가 요즘 힘들어서 그런 것 같다고, 엄마 아빠는 이혼하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때 나의 그 마음은 진심이었다.
전남편이 이혼하자고 했을 때, 나는 그 이유가 여자 때문일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물론 외도 전적이 있긴 했지만, 두 번의 외도가 한 여자와 한 것이었고, 그 여자는 남자 친구가 생겼다.
그리고 지금은 장인어른이 편찮아서 와 계신 상황이니,
외도는 생각지도 못했고, 그저 전남편이 장인어른의 편찮으심에 따른 하위 상황들이 버겁고 지쳤을 뿐이라 생각했다.
전남편과 나는 이혼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 별거를 했는데,
동글이에게는 아빠가 지방 회사에 있는 일까지 하게 되어 이제부터 주말부부를 하게 되었다고 설명했었다.
동글이 친구 ** 역시 주말부부 집안이라 아빠와 주말에만 함께 해서, 이 부분에서의 이해는 쉬웠다.
문제는 전남편이 주말마다 오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어떤 주말에는 아프다고 했고, 어떤 주말에는 일이 많다고 했다.
기대하고 실망하고를 반복하는 나날이었다.
동글이도, 나도.
언제 올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른 약속도 쉬이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동글이는 불안해하지 않았다.
내가 분명 엄마 아빠는 이혼하지 않는다고 동글이에게 얘기했기 때문이다.
전남편이 새로 생긴 2번 상간녀와 데이트를 하러 간 어린이날이 낀 주말에도,
(이때까지는 상간녀의 존재를 몰랐으며, 이후 상간녀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이혼을 결심했다.)
동글이와 나는 아빠 보고 싶다고, 아빠와 함께 있고 싶다고 부둥켜안고 울었지만,
동글이도 나도 불안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지금처럼 주말부부를 할지언정, 이혼하지는 않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2. 엄마, 아빠가 이혼하게 되었지만, 동글이 엄마아빠로, 친구처럼 지낼 거야.
(거짓말이 되어 버린 말)
어린이날 이후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전남편에게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나는 이혼을 결심했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전남편에게 내가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얘기하지 않았다.
이유는,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전남편이 알게 된다면,
전남편은 숙려기간 동안 나와 아이를 만나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건 동글이에게 최악의 상황이다.
그래서 숨겼다. 다 알지만, 모르는 척했다.
그리고 우리는 여느 가족처럼 주말에 함께 밥도 먹고, (전) 시어머니 생신도 함께 보냈고, (전) 시댁 평창 별장에 여행도 갔고, 우주에 관심이 생긴 동글이를 위해 박물관에도 갔고, 카페도 여럿 다니며 주말을 보냈다.
다만, 전남편이 집에 들어오지 않을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모든 게 다 괜찮았다.
전남편이 꼴 보기 싫지도 않았고, 밉지도 않았고, 그냥 동글이 아빠였다.
그래서 그 모든 게 다 가능했다.
그리고 이혼을 하고 나서도 이 모든 게 다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물론, 내가 함께 전남편을 만나는 건 서서히 횟수를 줄여 언젠가부터는 동글이 혼자 제 아빠를 만나고 오는 것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이 부분을 전남편도 동의했다.
동글이는 순차적인 접근이 필요한 아이이기 때문이었다.
법원에서 '이혼'하고 땅땅땅 서류가 정리된 주말,
전남편은 시부모님께 우리의 이혼을 알렸다.
그리고 그즈음 아직 부모의 이혼을 몰랐던 동글이가 얘기했다.
"엄마, 할아버지가 빨리 건강해지면 좋겠어. 할아버지 건강해지셔서 광주 가면, 아빠가 다시 집에 올 거 아니야."
아뿔싸.
시기적으로 그랬다.
아빠가 집을 나가고 (주말부부를 하게 되었다고 알고 있지만.), 주말에 보기로 했는데, 자주 못 보는 것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우리 집에 와 계시기 때문이라고 동글이는 생각한 것이다.
아이들은 그럴 수 있다.
K언니가 복직하고 할머니가 첫째를 봐주러 오셨었는데, 첫째가 할머니 빨리 가라고, 할머니가 가야 엄마가 일하러 안 가고 집에 있는 거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동글이의 오해가 커지게 하고 싶지는 않았고, 동글이도 알아야 하는 일이었기에,
동글이에게 산책을 제안했다.
동글이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글아, 엄마랑 아빠랑 언젠가 밤에 얘기했던 거 기억나?"
"엄마랑 아빠 이혼한다고 했던 거? 기억나."
"엄마랑 아빠가 이혼을 하게 되었어. 근데 그냥 이혼을 하게 된 거지 생활은 지금이랑 똑같아. 주말에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갈 거고, 여행도 갈 거야. 가끔 엄마가 바쁘면 아빠랑 동글이랑 둘이만 만나기도 할 거야."
"아~ 그래? 그럼 지금이랑 별로 다른 게 없네?"
"응 그렇지. 동글이 그래도 괜찮아?"
"응! 괜찮지~"
"그래서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살 거야. 왜냐면, 엄마가 학교 가고 집에 없으면 동글이 봐줄 사람이 없잖아. 할머니가 동글이 지켜줄 거야. 할아버지가 아파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셔서, 아빠가 못 오시는 게 아니고, 아빠랑 엄마가 이혼을 해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광주 안 가시고 우리랑 같이 계시는 거야."
"하긴, 엄마 혼자는 힘들겠지~"
뭘 엄마 혼자는 힘들겠다고 말한 것일까 모르겠으나,
동글이는 괜찮았다.
정말 괜찮았다.
이후로도 우리는 여느 가족처럼 주말에 쇼핑몰에 가서 눈물의 돈가스를 먹었고, 애견 동반 카페에 가서 우리 집 댕댕이 이야기를 실컷 했다.
심지어 추석 연휴 때는 동글이가 엄마 없이 혼자 할머니댁에 가기 싫다고 해서 함께 시댁에 가는 바람에,
시부모님께서는 둘이 화해했다고 생각하셨고, 이혼 얘기 없었던 것이라고 오해를 하기까지 하셨으니 말이다.
그렇게 두어 번 함께 만났고, 한 번은 동글이 혼자 아빠와 만나 신나게 놀다 오기도 했다.
정말 너무나 Good이었다.
3. 아빠는 이제 우리 집에 안 와.
(이혼의 민낯을 받아들임)
그렇게 Good이었는데 So Bad가 되어 버린 건, 3주 동안 만나지 못한 채 만났던 30분간의 짧은 만남 이후였다.
바쁘다며 주말 면접교섭을 못하던 와중, 평일 오후에 서울 올 일이 있다며 저녁 시간에 잠깐 보자는 것이었다.
저녁을 함께 먹을까 했는데 길이 막혀 도착한 시간이 8시 30분이었다.
집에 함께 있었다면 8시 30분이든 9시든 중요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한 집에 있을 수 없는 가족이다.
동글이는 9시가 넘어가면 졸려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나라의 어린이'이다.
8시 반에 졸린 눈으로, 오랜만에 아빠와 만나는 상황은, 피곤한데 반갑고, 좋은데 힘든 상황이다.
만나서 반갑고 좋지만, 늦은 시각이라 금방 헤어져야 할 것을 알기에,
집 앞 카페에서 음료를 시켜놓고 동글이는 제 아빠를 앞에 두고 자꾸만 내게 말을 걸고, 내게 기댔다.
어색한 동글이의 모습에 나도 전남편도 그만 눈시울이 붉어져 버렸다.
동글이는 집에 가고 싶다고 투정을 부렸고,
목이 메어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전남편은 집에 데려다준다고 했다.
집 앞에서 헤어질 때면 제 아빠에게 집에 같이 올라가자고 했던 동글이가 언제부턴가 떼쓰지 않았다.
이날도 로비에서 헤어지며 "안녕~"하고 인사한 게 전부였다.
집에 올라와 샤워를 끝내고 전혀 피곤해하지 않는 동글이에게 물었다.
"아까는 피곤하고 졸린다더니, 하나도 안 졸려 보이네?"
"샤워했더니 다 풀렸어."
"그럼 아빠랑 좀 더 있다가 올 걸 그랬네.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러게.. 아빠가 우리 집에 같이 올라왔으면 좋았을 텐데.. 할머니 할아버지도 안 계시고.."
동글이가 자꾸만 기대하고 실망하는 것이 싫었던 나는, 헛된 희망고문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동글이에게 사실 그대로를 말해서 아이를 큰 충격에 빠뜨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아홉 살이 이해할 수 있는 만큼은 사실대로 얘기해주고 싶었다.
어느 정도까지 이해할 수 있을지를 몰라 그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었다.
"동글아, 엄마랑 아빠랑 이혼을 했잖아. 동글이 엄마 아빠로 친구처럼 지내고는 있지만, 아빠는 이제 이 집에는 안 오실 거야."
동글이는 울었다.
울면서 얘기했다.
사촌동생 **이(3살)는 좋겠다고.
할아버지가 그냥 아프다고만 알지, 암이라는 것은 모른다고.
동글이는 아홉 살이라서 다 알아들어서 할아버지가 암이라는 것도, 엄마 아빠가 이혼한 것도, 다 안다고.
아홉 살이 너무 힘들다고.
아홉 살은, 애매하다.
다 이해할 수도, 아무것도 모를 수도 없는 나이.
만 8세.
주말에 언제 또 볼 수 있냐고, 약속을 잡았으면 좋겠다고 전남편에게 연락을 했지만, 말이 없었다.
얼마 후, 전남편에게 전화가 왔고, 전남편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어수선한 마음을 전했다.
요점은 동글이를 보고 오면 본인이 너무 아파 사흘을 앓는다고 했다.
그래서 동글이를 이대로 만나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 많다고 했다.
(이후 올라온 2번 상간녀의 프로필을 통해, 그들이 혼인 신고를 했다는 것을 알았고,
뒤이어 올라온 사진을 통해 그들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도 알았다.
예정일은 2024년 7월.)
크리스마스 선물로 동글이 운동화를 사주겠다고 약속했던 전남편은, 면접 교섭도, 전화도, 문자도, 선물조차도 없었다.
크리스마스인데 아빠는 왜 못 보냐는 그런 말도 안 했다.
그리고 동글이는 고열에 시달리고 아팠다.
병원에 입원을 했고,
신정 연휴가 낀 주말이라, 입원한 아이들의 엄마와 아빠가 돌아가며 보호자를 하는 집들이 많았다.
아빠들 목소리가 들리면 동글이가 아빠 보고 싶어 하면 어쩌지? 전남편은 아이를 아예 안 볼 생각까지 하고 있는데, 애가 아프다고 전화를 하는 게 맞나? 전화를 한다고 올까? 여러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혔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