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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달 Aug 09. 2024

부모의 이혼 앞에 놓인 만 8세 어린이 (2)

'지금, 여기'에서 평온하기

- 지난 이야기에 이어 -


4. 아빠에게 여자친구가 있어.

(아프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동글이는 다 나아 퇴원을 했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눈물의 상봉을 했다.

새해를 병원에서 맞이해 떡국도 못 먹고, 속상한 동글이에게 기분 좋은 일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마침 디즈니 영화 '위시'가 상영 중이었고

동글이와 가까운 극장에 가서 사랑해 마지않는 캐러멜 팝콘을 먹으며,

감동의 눈물을 흘려가며, 영화 감상을 끝마치고 오는 차 안이었다.

평화주의자 동글이는 주인공의 고난과 역경을 지켜보는 것을 어릴 때부터 힘들어했는데,

주인공 아샤가 매그니피코 왕이 놓은 덫에 걸려 큰 위기에 봉착했지만,

그런 고난과 역경에도 포기하지 않고 결국 해냈다는 것에,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고 감상평을 전했다.

동글이도 지금 이런 상황(부모의 이혼, 할아버지의 투병 생활)들이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나 보내면 좋은 일들이 올 것이라 얘기해주고 싶었는데, 운전에 집중하느라, 타이밍을 못 잡고 있었다.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동글이가 갑자기 제 아빠 이야기를 꺼냈다.

동글이도 어쩌면 같은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동글이는 아빠가 보고 싶다고 했고, 나는 언제 보러 올 수 있는지 연락해 본다 했다.


"엄마, 근데, 엄마랑 아빠는 왜 이혼한 거야? 싸우지도 않았잖아."

(나와 전남편은 동글이 앞에서는 절대 언성을 높이지도, 말다툼을 하지도 않았다.

동글이 앞에서만큼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주 웃었고,

그렇게 자주 웃었더니,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 수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어쩌면 싸우지 않았기 때문에

동글이가 부모의 이혼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더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음.. 나중에.. 동글이가 조금 더 커서, 이해할 수 있게 되면 그때 얘기해 줄게."


분명, 나는, 조금 더 커서,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얘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가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분명.


그런데, 나는 몇 분 뒤, 무슨 생각이었는지, 뱉어버리고야 말았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집으로 올라가려고 가방을 챙기는데, 울먹이는 동글이를 발견했다.

계속 아빠가 보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슬픈 것 같았다.


"엄마~, 근데~ 우리~ 아빠랑 다 같이 평창 가고 싶다."

"그러게~. 동글이 아빠랑 여행 가고 싶구나~. 그렇게 되면 좋겠다.

  근데, 거기에 엄마는 이제 같이 못 갈 것 같아."

"왜? 이혼해도 같이 여행 가고 그럴 수 있다고 했잖아."

"동글아, 엄마랑 아빠가 이혼을 했잖아. 근데, 아빠한테 여자친구가 생겼어. (새 아내가 생겼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동글이 학교에서 **이랑 &&이가 사귀다 헤어지고, **이가 또 $$이를 사귀는 거랑 비슷한 건데~ 어쨌든 동글이랑 아빠랑 만나는 건, 아빠가 딸을 만나는 거니까 여자친구가 괜찮다고 하겠지만, 아빠가 엄마를 만나는 건, 그 여자친구 입장에서는 기분 나쁠 수도 있거든. 그래서 엄마는 같이 여행 갈 수가 없어."

"그럼 같이 밥 먹는 거는?"

"글쎄,, 그건, 아빠랑 얘기해 봐야겠지?"


오 마이 갓.

무슨 생각이었을까.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그냥 엄마랑 아빠랑 잘 안 맞아서 이혼했어."라고 하면 될 질문에 대해서는 크면 얘기해 준다고 하더니,

아빠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말을 이제 막 열 살이 된, 아이 앞에서 뱉어버리다니.

내가 돌았다, 돌았어.

후회해도 늦었다.

뱉어버린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다.


'위시'를 보며 기분 전환을 해 주고 싶었는데,

힘든 아홉 살 잘 보내주어 고맙다고, 열 살은 우리 행복하자고,

그 시작에 오늘을 행복한 날로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열 살이 되자마자 겪는 불행한 날로 만든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집에 올라온 동글이는 쭉 시무룩해서는 그 좋아하는 1박 2일도 안 보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방에 들어가서 시무룩한 동글이를 초콜릿으로 유혹해 달래니 이런저런 얘기를 꺼낸다.

(언젠가에도 얘기했듯 초콜릿은 우리 둘만의 기분 전환 방법이다.

달콤한 초콜릿을 한입에 쏘옥 넣고 물고 있으면 그 달콤함이 스르륵 온몸으로 전해진다.)


"엄마, 아빠는 왜 엄마 말고 다른 여자친구가 생긴 걸까?"


"근데 엄마, 아빠 여자친구가 엄마를 닮았으면,, ㅎㅎ 그건 진짜 웃기겠다."


"엄마, 아빠가 그 아줌마(아빠 여자친구)랑 얼른 헤어지고, 다시 우리 가족으로 돌아오면 좋겠다."


그러다가 얘기했다.


"엄마, 근데, 그냥 비밀로 하지 그랬어. 쫌 나중에 얘기해 주지..."


부모의 이혼을 받아들이는 것도 버거운 만 8세 어린이에게,

나는 아빠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더 버거운 말을 해버렸고,

만 8세 어린이는 그 버거운 사실을 나중에 알았으면 좋았겠다고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이후 기분이 풀려 함께 1박 2일을 보며 밥을 먹었는데,

나는 밥이 잘 넘어가지도 않았고, 잠이 오지도 않았다.


왜 그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왜 그때 그 타이밍에 그런 얘길 했을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아빠의 여자친구에 대해 물어보면 뭐라 답해야 하나.

수많은 고민들 밤을 새웠지만,

동글이는 만 8세 어린이답게,

또 아무것도 기억 못 하는 척, 대수롭지 않은,

열 살의 나날을 보냈다.


그렇게 제 아빠를 보지 못하는 수많은 날들이 지났다.


새 학년이 되고, 아빠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나날 속에 동글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동글이와 나는 자기 전에 "잘 자, 사랑해~"로 시작하는 그날 있었던 고마운 일들에 대해서 얘기하는 수면 전 루틴이 있다.

"엄마, 다음 생에는 아빠랑 이혼하지 마.."

자기 전 동글이가 "잘 자, 사랑해."이후에 한 말이다.

샤워 후 아빠 보고 싶다고 시무룩해 있다가 자려고 누워한 말이..

다음 생엔 아빠랑 이혼하지 말라니..

받아들였구나 싶었다.

아프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동글이는.

부모의 이혼을.

가슴 아픈 사실이지만,

나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준 동글이가 대견했고, 기특했고,

눈물날만큼 고마웠다.


그즈음 동글이는 아빠가 집에 오는 꿈을 자주 꾸었다.

자고 일어나면 눈물을 머금은 채로, 한껏 아기 목소리로 옹알대며 꿈 내용을 얘기하는데,

그 눈을 보고, 그 목소리를 듣자면,

이 작은 아이에게 내가 얼마나 큰 아픔을 지게 한 건지,

아침부터 가슴이 미어져 하루 내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날 꿈속에서 아빠는 빵을 사 왔다는데, 한입 한입 아껴먹으라고 했단다.

그래서 2주 동안 아껴먹었더니 안에서 작은 쪽지가 나왔고,

거기엔 다음에 만날 약속이 적혀있었다고 했다.


동글이는 이번엔 엉엉 울지 않았다.

눈물을 또르르 흘리며 "엄마, 나를 위로해주지 말고,  이해해 줘."라고 했다.

내 작은 천사가 이해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작은 천사의 마음을 100%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아빠가 있었고, 지금도 편찮으시지만 우리 집에 아빠가 계신다.

"아빠!"라고 부르면 "응."하고 대답해 주는 아빠가 있다.

나의 작은 천사 앞에서 나는, 그러한 연유로 아빠를 아빠라고 부를 수가 없다.

할아버지!이다.

아빠가 보고 싶은데 볼 수 없는, 이 동글이의 마음을 나는...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다만, 내 마음도 같이 아플 뿐이다.

(미안해 동글아..

엄마가 너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서...)


언젠가는 아빠가 보고 싶다고 울다가

"엄마가 한 일들이 나는 다 아주 좋은데, 아빠랑 이혼한 건 안 좋은 일이야."라고도 했다.


동글이가 아빠 얘기를 한동안 꺼내지 않았을 때는 아이가 혹시 혼자 참는 건 아닌지 걱정이었는데,

자주 아빠 보고 싶다며 솔직하게 말하는 동글이를 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구나. 싶었다.


5.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아빠.

(또 여러 달 못 만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이 만남의 루틴이 지속되기를.)


그렇게 동글이는 아빠를 그리워했고, 보고 싶어 했고,

참다 참다못해 내가 먼저 전남편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5월.

6개월 만에 부녀가 상봉했다.

(부녀 상봉의 이야기는 '잔인한 5월의 대설특보' 편에 실려 있다.)


아빠를 만나고 와서 아빠를 목놓아 외치며 우는 동글이를 안고 한없이 함께 울었다.

동글이는, 내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고 답답하고 먹먹하다 했다.

고작 열 살 아이 입에서.

먹먹하다니.


나는 엄마도 그 마음을 안다고 했다.

어떤 식으로 먹먹하냐면,

귀이개가 엄마 마음속을 후루룩 들어갔다 나오면 엄마의 답답함이 귀지처럼 뾰로록 다 파졌으면 좋겠다고. 그만큼 답답하고 먹먹하다고.

동글이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둘 다 눈물을 글썽였다.

엄마도 동글이가 아빠와 함께 하는 그런 일상이 좋았는데,

동글이가 계속 그런 일상을 살았으면 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엄마는 언제 그런 기분이었냐 동글이가 물었다.

엄마는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런 기분을 느꼈었다,

동글이보다 더 많이 소리 지르고, 더 많이 울고,

그런 다음에 엄마의 감정이 정리가 되었다, 그러니 지금 울어도 괜찮다 했다.

엄마는 그런 나날동안 그래도 엄마 옆에 동글이가 있어 행복했다고.


그리고,

우리가 작년에 그나마 아빠를 한 달에 한두 번은 만났을 때를 생각해 보자고 했다.

그때도 슬프고 힘들었냐 물으니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엄청 슬프거나 힘들지 않았다고, 왜냐면 그건 다음에 또 만나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이렇게 힘든 건 6개월 만에 아빠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다시 또 만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아빠랑 6월에 또 만나기로 했으니 아빠가 약속을 꼭 지킬 거라고.

한 달에 한 번씩 보는 게 일상이 되면 또 우리는 여기에 적응해서 아빠 보는 일이 오늘처럼 먹먹한 일이 되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우리는 얘기했다.


그리고,

동글이는 아빠에게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줄걸 그랬다며 작은 후회를 했다.

고작 열 살이 후회하는 것이,

사랑한다고 더 많이 말해줄걸.. 이라니...

제 아빠가 해야 할 후회를, 내 딸이 하고 있다.

다음에 만나면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지금 전화해도 되고, 문자해도 되니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을 땐 망설이지 말고 연락하라고 해줬다.

(딸이 제 아빠에게 보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연락한다는데,

그것도 이해 못 해주는 상간녀라면(이제는 두 번째 와이프),

인간도 아닌 것 아닐까.)



8월이다.

5월에 한 번, 6월에 한 번.

그렇게 동글이는 아빠와 만나 즐겁지만 아쉬운 시간을 보냈다.

7월엔 동글이와 아빠가 만나지 못했다.

회사 일이 바쁘다 했지만, 안다.

예정일이 7월이었으니까.

동글이와 전남편은 8월에는 꼭 보기로 약속을 했다.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아빠.

어쩌면, 이 패턴이 쭉 유지만 잘 된다면,

동글이가 아빠를 그리워하고, 친구 아빠를 보면 제 아빠를 생각하고, 부러워하겠지만,

그래도 아빠를 못 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해방되어,

편안하게,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삶에 있어서

행복한 것보다 중요한 것은

평온함이다.



만 8세.

열 살 동글이는, 어디까지 이해했을까.

전부 이해한 것도 같았다.


그래서, 끝없이 얘기해 줬다.

앞으로도 끝없이 얘기할 것이다.

중요한 건 '지금, 여기'에서 동글이가 평온한 것, 행복한 것이어야 한다고.

힘든 일도, 슬픈 일도, 다 지나가는 일들이라고.


좋은 기회가 있어 지역에서 무료로 하는 가족 상담을 8회 받았었다.

상담을 통해, 동글이는 내 생각보다 단단한 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런저런 상황 속에서 함께 있어주는 것이, 진짜 강함 엄마라는 것을 알았다.






엄마랑
산다.


아빠가 없는 게 아니라,
엄마가 있다.

언젠가 동글이가 읽던 동시집을 집어던지고 울었다.

왜 책을 집어던지냐고 혼냈는데,

동시집의 마지막에 이런 시가 있었다.

동시집을 끌어안고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그래서,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사랑한다고 해주는 요즘이다.


나는 동글이의 열 살이 너무나 소중하다.

손틈새로 빠져나가지 않게 단단히 동글이의 열 살을 그러쥐어,

아파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싶다.


부모의 이혼으로 아무렇지 않은 아이는 없다.

온 우주가 산산조각이 나 부서지고, 깨지고, 유리 파편이 여기저기서 날아들 것이다.

그리하여,

동글이 마음에는 구멍이 숭숭 뚫릴 수밖에 없다.

아프지 않기를, 구멍이 뚫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바보 같은 바람이다.

당연히 아프고, 당연히 휑하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냐면.

깨어져서 날아드는 유리 파편을 함께 맞아주고,

함께 피 흘리며 아파하고,

아픈 구멍에 호~ 하고 따뜻한 입김을 불어넣어 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알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평온하게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 k 언니는 종종 얘기한다.

동글이가 몇 년 전에는 주변을 많이 살피는 기색이 있었는데, 지금은 동글이만의 색을 드러낸다고.

분명 표면적 상황은 전보다 불안한 상황임에도, 동글이는 훨씬  평온하게 자신의 생활을 하고 있다.

이는 주양육자 마음의 평온의 반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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