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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달 Nov 15. 2024

싱글맘의 연애

결혼은 안 해요, 그래도 연애는 하고 싶어요

싱글맘도 연애를 했다.


말랑말랑했다.

달달했다.

마시멜로를 퐁신 머금은 마냥.



"가지마."


D는 돌아서려는 나를 잡았다.

그 순간 알았다.

내 마음은 D에게 향하고 있었다.


나를 애달프게 했던 D의 "가지마."를 떠올리면, 아직도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D는 전남편으로 인해 산산이 조각난 나의 여자로서의 자존감을 하나하나 다시 이어 붙여 주었다.

내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었지만,

매력적인 여자라는 사실은 잊은 지 오래였다.


D는 내가 D를 남자로 보지 않았던 그날들부터 끝나던 순간까지

쭉 나를 '사람'으로도 '여자'로도 빛나게 해 주었다.


D는 내가 무르디 무른 두부 같은 상태에서 벗어나 껍질도 깨기 힘든 단단한 '호두'가 되기를 원했지만,

나는 그냥 껍질을 두른 채 여전히 누르면 알맹이가 톡 터지는 '귤'정도에서 진화를 멈추었고,

D가 좋아하는 '귤'이기에 D는 그 정도의 성장을 축하해 주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D와 감정을 나누었고,

D와 수십 번의 카톡을 했고,

D와 몇십 번의 통화를 했고,

D와 몇 번의 데이트를 했다.


D는 좋은 사람이었고,

D는 직업적 커리어에 있어서도 스스로 '대한민국 최고'라 자부할 만큼, 직업을 대하는 그 태도가 멋진 사람이었다.


D는 나의 여러 상황을 알고 나를 배려해 주었다.

동글이가 제 아빠를 많이 보고 싶어 한다는 것도,

내가 전남편의 면섭교섭 불이행으로 힘들어한다는 것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는 것도,

아빠가 많이 아프다는 것도,

엄마가 이런저런 일들로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도.


D는 동글이에 대해서도 엄마를 닮아 얼굴도 마음도 예쁜 아이라며

동글이 일이라면 열 일 제쳐두고 뛰어가는 나의 모성애에 힘껏 힘을 실어주었다.

(언젠가 이런 내게 서운하지 않냐고 물었을 때, 아이가 최우선인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이런 모성애가 내게 없었다면 아마 나를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아빠가 챙기지 않는 동글이의 여러 날의 선물을 주기도 했고,

초코를 좋아하는 우리 모녀를 위해 해외출장을 갈 때면 작은 초콜릿을 준비해 오기도 했다.

나는 고마웠고,

동글이에게  '선배'라는 정체로 그 챙김의 출처를 밝혔을 때, 동글이도 "엄마, 그 사람, 고맙고 좋은 사람이네~"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D의 이야기 속에 '우리의 미래'가 담기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을 살아내기도 버거웠는데,

D는 언젠가 '우리의 미래'가 그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조금씩 그런 D에게 미안해졌다.

내가 D에게 갖는 감정이 단순히, 흔히 말하는 enjoy는 아니지만,

enjoy가 아니라고 해서 꼭 그것이 wedding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전남편과 이혼하며 결심했다.

다시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나를 가두는 어리석은 짓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시간이 지나 좋은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할 수는 있을지언정,  '법률혼'은 한 번으로 족하다고.

그 결심을 D는 누구보다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D의 말에 의하면,

내 '미래'에 '결혼'이 없다는 것을 다 알고 시작했는데,

그저 내 옆에서 나를 지켜주고 싶어 시작했는데,

'나'라는 '좋은, 고운' 여자를 만나 자꾸만 그 '미래'에 욕심이 생겼다고 했다.


나는 그 '미래'가 꼭 '결혼'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냐,

좋은 남자친구, 여자친구로 오래도록 곁에서 함께 성장하면 되는 것 아니냐,

'결혼'이 무슨 의미가 있냐 했다.

동글이에게도 '나의 결혼'은 혼란스러움만 가중시킬 뿐 하나도 득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싱글맘 혹은 싱글대디에게 주변에서 다들 '아이에게도 아빠(엄마)가 있어야지, 아이에게는 아빠(엄마)가 필요해.'라고들 하는데,

아이에게는 아빠(엄마)가 있다. 물론 어떤 아빠(엄마)냐에 따라 좀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싱글맘, 싱글대디에게 '재혼'은 '내 인생'뿐만 아니라 '아이의 인생'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중대한 일이므로, 그렇게 쉽게 '재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으니, 내가 이렇게 말해놓고 "나 재혼할 거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가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D는 결혼을 한번 해 본 나에게는 그럴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아직 안 해본 D로서는 그 결혼이 (D의 표현을 빌리자면 매일 같은 곳에서 시작하고, 매일 같은 곳에서 마무리하는, 같은 곳을 바라보는 그 결혼이) 하고 싶다 했다.

동글이에게도 엄마의 남자친구로서 해 줄 수 있는 일의 범주와, 동글이의 새아빠로서 해 줄 수 있는 일의 범주가 다르니,

더 많은 것들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지금 당장 결혼하자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싶다 했다.

지금 그냥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내게 이런 부담을 줘서 미안하다고도 했다.


그랬다.

나는.

버티고 있는 것조차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있던 남편마저 도망간 마당에,

이 버티는 것을 함께 하자고,

남의 집 귀한 아들을 데리고 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D의 마음을 알면서, 나의 마음을 알면서, D와의 만남을 이어나갈 만큼 영악하지 못하다.

우리가 아직 30대라서 나의 생각이 바뀔 때까지, 나의 상황이 조금 더 나아질 때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모를까.



"D, 나는, 너를 좋아하지만, 너의 소중한 시간을 뺏고 싶진 않아."

"싱글맘, 나는, 너를 좋아하지만, 나의 시간을 뺏기고 싶진 않아."


D와 나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D는 흐르는 내 눈물을 닦아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더 솔직히 말하면,

내 마음에, 더하여 사람 보는 내 눈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냥 좋아하는 마음만 가지고 덤비기,

결혼이라는 게, 더더군다나 재혼이라는 게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 모든 산을 함께 넘을 만큼 사랑하는가?'

그렇지 않았다.


'D에게' 위로받아 따뜻했는지,

D에게 '위로받아' 따뜻했는지,

모호했다.


전남편과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나에겐 전남편이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좋은 사람'의 기준 자체가 흔들렸다.

D는 분명 좋은 사람이지만,

나는 나의 기준을 믿을 수 없어, 두려웠다.


여전히 그러하다.



나는 아직도 말랑말랑해지고 싶을 땐 떠올린다.

나를 예뻐해 주던 그 눈길을.

가만가만 위로해 주던 그 손길을.

아련한 그 언어들을.


나는.

사랑이.

고팠다.


그리고,

여전히,

사랑이,

고프다.


D를 사랑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D라는 사람을 좋아했다.

그리고

나는 D와의 만남으로 성장했다.

나를 조금 더 알았다.

나를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연애를, 사랑을, 긍정한다.


상처받고, 아프고, 깨져도.

여전히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싱글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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