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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달 Nov 08. 2024

패션테러리스트에서 패셔니스타로

이혼만 했을 뿐인데요.

"어머! 자기! 왜 이렇게 예뻐졌어?


이혼 후, 나의 이혼을 모르는 직장 동료와 아이 친구 엄마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남자는 이혼하고 삶이 피폐해지고, 여자는 이혼하고 삶이 핀다는 말이 있지 않았던가.

물론 전남편은 새 결혼으로 피폐한 삶을 살지는 않겠지만.


그러게요.

제가 왜 갑자기 예뻐졌을까요.


저는 단지, 이혼만 했을 뿐인데요.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다.

'그냥 그런 사람'이라는 것은 내가 외적으로 특별히 못 생기지도, 특별히 예쁘지도 않은 '아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냥 그런 사람인 나는 그냥 그런 옷들을 입고 다녔다.

특별히 패션 센스가 없다거나, 특별히 패션 센스가 있다거나 하지 않아,

유행 타는 옷 몇 벌, 유행 타지 않는 노멀한 옷 몇 벌,

동네에는 편한 옷들을 입고 다니다가, 특별한 날에는 갖춰 입고 나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실 나는,

패션이나 뷰티나 이런 것에 적당히 관심은 있으나,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눈에 보이는 그런 것들 보다는,

책을 읽거나, 맛있는 것을 먹거나, 좋은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허름한 옷을 입어도, 명품 가방이 아니어도,

내가 창피하지 않았다.


신혼 초,

어떤 일로 인해 전남편과 다투었고, 나는 팽-하니 혼자 나가서 쇼핑을 했다.

것만 사는 것이 미안하여, 화해의 의미로 전남편의 반바지사서 들어갔는데,

기대와 달리 반응이 영 별로였다.

전남편은 옷을 보자마자 대뜸 안 예쁘다, 센스가 없다, 옷 볼 줄 모른다 했다.

결국 반바지는 함께 나가서 다른 옷으로 교환했다.

안 예쁜 바지 하나쯤 그냥 화해의 의미로 가지고 있어도 되지 않았을까?

아니, 안 예뻐서 교환을 원하더라도, 굳이 센스가 없다는 말을 했어야 했을까?

전남편은 내게 주로 패션 센스가 없다 했고, 내가 고르는 옷은 죄다 안 예쁘다 했다.

나는 언젠가부터 전남편 마음에 들게 옷을 입고 싶었, 눈치를 보게 되었다.


그렇다고 전남편이 엄청난 패션 센스의 소유자였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전남편도 그냥 그런 외모에 그냥 그런 옷들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다만,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겉으로 보이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던 사람, 전남편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중요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친구들 모임에는 내게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가장 좋은 가방을 들고 가라 했었고,

친구들에게 흠잡힐 이야기들은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던 사람이었다.


그런 전남편에게 생긴 여자친구, 1번 상간녀는

운동을 전공한 만큼 훤칠한 키에 날씬하지만 탄탄한 근육을 가진 몸매의 소유자였다.

한마디로 옷발이 잘 받는 여자였으며,

전남편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들을 자주 입었다.

나는 여리여리해 '보이는'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 체형인(그런 원피스는 단점을 잘 커버해 준다.) 반면,

1번 상간녀는 후드티에 바지, 혹은 H라인 스커트가 잘 어울리는 체형이었다.

추구미가 비슷했던 그들은 그런 옷들을 샀고,

운동화를 좋아했던 1번 상간녀를 따라 전남편은 운동화를 사 모았다.

그들은 커플티와 커플운동화를 포함한 커플템들을 했고,

전남편은 그것들을 트렁크에 숨겨 다니다, (그러니 트렁크가 가득 찰 수밖에.)

가끔 하나씩 꺼내어

"이거 예전에 새로 샀는데(예전에 새로 샀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너 기분 나쁠까 봐 그동안 못 가져왔어."

라는 식으로 나를 이상한 여자 취급했다.

내가 기분이 나빴던 이유는,

그 모든 것이 1번 상간녀와 같은 커플템이었기 때문이었는데.

전남편은 마치 본인 돈으로 본인이 쇼핑하는데, 내가 못하게 막는 것처럼 얘기를 해, 사람 억울하게 만들었다.


몰랐을까?

내가 그 전부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나이키에어 270, 720, 97, 95, 크록스...

제너럴아이디어 회색 니트, 트레이닝, 지프 야상 패딩, 파타고니아 후드, 라이프워크 패딩, 모자, 노트북 가방, 갤럭시 워치, 휴대폰 케이스, 심지어 휴대폰 스티커조차도.. 모두 같 것이었다.

내가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입 다물고 버텼다는 것을.

전남편은 정말 몰랐을까?

글 내용과 상관없이 잘생긴 모델.


정말 기가 막힌 건,

1번 상간녀와 함께 커플로 맞추거나 1번 상간녀와 함께 쇼핑했던 옷들을

2번 상간녀가 입고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다.

2번 상간녀의 사진에 자주 보이던 파란 나이키 아노락도, 라이프워크 패딩도.

이런 사진을 본다면 과거 '내로남불'이었던 커플룩의 원 주인 1번 상간녀는 어떤 마음일까?

이런 사실을 안다면 현재 '내로남불'인, 커플룩을 훔쳐 입게 된 꼴 2번 상간녀는 어떤 마음일까?

아니,

그보다,

전남편은 어떤 마음을 가진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내로남불' 커플룩의 주인공을 자처한 것일까?


나는,

나로서는,

참,

이해가 안 된다.


나는,

나에게는,

참,

기분 더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모든 일들이 나를 속이고 일어난 '남불'이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샛길로 샜는데,

(아닌가. 어쩌면 나는 이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전남편에게 패션 센스 없는 여자였고,

좋은 옷을 고르지 못하는 여자였다.

주눅 들어 살았다.

전남편은 1번 상간녀와 외도를 즐기며 외모에 신경을 쓰니 나날이 젊어져 가는데,

(실제로 아가씨들은 전남편에게 왜 이렇게 나이에 맞지 않게 young 하게 입고 다니냐고 했고,

실제로 아이 친구 엄마들은 전남편이 나보다 연하인 줄 알았다고 했다.)

나는 어떤 옷을 입어도 자신이 없었다.


그야말로 나는,

전남편과 살며 패션테러리스트였다.




이혼을 했다.


나는 경제적으로 더 힘들어졌다.

새 옷을 살 여유가 없다.

커가는 아이 옷만 사기에도 벅차다.

화장품도 다운그레이드되었다.

올영 세일 기간을 기다린다.


야식을 안 먹었을 뿐인데, 살이 2kg 빠졌다.

원래 입던 옷을 입었을 뿐인데, 예뻐졌다고 한다.

마음 편히 잤을 뿐인데, 피부가 좋아졌다.

그냥 가방을 들었을 뿐인데, 내가 드니 명품 같다고 한다.


안다.

내가 진짜 예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인사치레라는 것을.

그런데, 전남편과 살 때는, 그런 인사치레조차도 없었다.


나는 패셔니스타가 되었다.

내 삶은 폈다.


이 모든 것이.

이혼을 한 덕분이다.


땡큐,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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