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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달 Nov 29. 2024

지금 이혼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혼 전, 꼭 읽어보세요!

세 번 째였다.

10년의 부부 생활 중에 '이혼'이야기가 나온 것은.


 째는 죽어도 이혼하고 싶지 않았고,

이혼을 하지 않기 위해 그때의 최선을 다 했다.

 째는 진심으로 이혼하고 싶었으나,

당시의 마음으로는 절대 아이를 건강하게 케어할 수 없을 것 같아 물러섰다.

번 째는 이혼을 해도 안 해도 크게 상관없어서,

이성적인 판단으로 이혼을 결정했다.


모두 전남편의 외도 때문에 온 이혼 위기였는데,

그 수많은 위기 상황 중에 감사한 것은

첫째, 동글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 내가 단 한 번도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배우자가 명백히 잘못했고,

내가 지금 당장 이혼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들이 있다.

부부의 일은 부부만이 알며, 사정이 다들 있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기 마련이다.


지금이 이혼의 '때'가 아닐지도 모르니,

이혼 위기에 있는 모든 부부가 위기를 나름대로 극복하고,

그것이 이혼이든 아니든 각자 건강하게, 평안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이야기를 적는다.



1. 첫 번째 이야기


동글이가 두 돌이 막 지난겨울이었다.

전남편이 갑자기(이혼은 늘 갑자기 찾아온다.) 이혼을 원했다.


뒤를 캐니 여자가 나왔고, 증거를 수집했다.

그들은 사귄 지 두 달 만에 결혼을 약속했고,

그들의 대화 속 전남편은 나를 사랑하며 내게 했던 내용 그대로의 이야기로 1번 상간녀를 꼬여내고 있었다.

전남편의 사랑을 받는 1번 상간녀가 부러웠다. 질투 났다.

화가 났다.

내 것이었던 사랑이었다.

지난 에피소드에서도 얘기했듯 내게도 미성숙했던 부분들이 있었던 결혼 생활이었기에, 다시 잘해보고 싶었다.


1번 상간녀의 부모를 만났다.

증거를 보여드렸다.

나는 무릎을 꿇었다.

울며 빌었다.

동글이에게 아빠를 돌려달라고.

1번 상간녀의 부모는 내게 미안하다 했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전남편도 한 번의 실수일 뿐일 테니, 용서하고 좋은 결혼 생활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1번 상간녀와 갑자기 연락이 끊긴 전남편은 당황스러워했다.

그리고 나를 추궁했다.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따졌다.

그전에 당신이 내게 솔직해야 하는 것 아니냐 나도 추궁했다.

전남편은 내게 실망했던 여러 일들을 이야기하며, 그런 찰나에 1번 상간녀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노라, 그런데 내게 이혼을 얘기한 것은 내게 실망한 것 때문이지 1번 상간녀 때문은 절대 아니라 얘기했다.

1번 상간녀와 만나지도 않겠지만, 나와 이혼도 하고 싶다 했다.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최후의 보루로 남겨놓았던 상간녀 소송을 진행했다.

소장이 1번 상간녀 쪽에 도착했고, 상간녀의 아버지가 노발대발 전남편에게 전화를 했고, 전남편은 소송을 취하하라 내게 요구했으며, 나는 그 조건으로 이혼을 하지 말자 했다.


정신없이 한 달이 흘렀다.

하혈을 세 번이나 했고,

나는 전남편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시댁으로, 친정으로 아이와 짐을 싸서 다녔다.

시어머니께서는 이유를 아셨고, 친정에서는 몸이 아프다고만 아셨다.

증거를 잡는 도중 큰돈이 들어갔고, 전남편은 내게 경제권을 앗아갔다.

상관없었다. 경제권이 누구에게 있든.

그러나, 중요했다.


전남편은 1번 상간녀와 연락을 끊었고,

가족에게도 잘했다.

전남편은 내게 부부관계를 많이 요구했고,

나는 새벽 2-3시쯤 잠들어 6시에 일어나 출근을 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외도 증거들이 가끔씩 떠올라 고통스러웠지만,

예쁘게 커가는 동글이를 보면,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 옆에 든든하게 우리 가족을 지켜주는 '남편'이라는 존재가 다시 나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보아준다면,

그런 것쯤은 견딜 수 있었다.


당시의 나에게는 지금 당장 이혼하는 것보다 몇천 배 나은 선택이었다.


2. 두 번째 이야기


그로부터 1년 뒤, 전남편은 1번 상간녀를 다시 만나 3년 넘게 연애를 했다.


이 3년이 정말 지옥이었다.


정황증거만 있을 뿐, 실제적 증거는 잡히지 않고, 의심만 나날이 늘어가던 날들이었다.

같은 옷, 같은 신발, 같은 핸드폰, 커플링까지 온갖 커플템을 모조리 하고, 매일 카페를 드나드는 게 뻔히 보이는데,

나는 경제권도 빼앗기고, 트렁크 금지령도 내려진 마당에 sns를 뒤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차에 블박을 빼서 볼까 봐, 블박도 끄고 다닐 때도 있고, 아예 차 키에 손도 못 대게 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방문을 닫고 아이와 놀면, 1번 상간녀와 톡을 주고받을까 봐 방문을 활짝 활짝 열고 다녔다.

전남편은 거실에 있고 나와 아이는 방에 있을 때는 불안감이 극도로 치솟아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잠도 전남편이 잠들면 잤다.

내가 잠들면 1번 상간녀와 열심히 톡을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같이 있는데도 사생활보호액정필름을 붙여 대놓고 톡을 주고받던 그들이었으니.

오죽했으랴.

설거지를 하다가 식칼이 보이면

동글이와 전남편이 거실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이 행복한 때, 내 인생이 끝난다면 나는 더없이 행복하겠다는 생각도 했다.

물론 죽으려는 생각은 없었다.

내가 바라는 것이 그토록 일상적인 행복이었던 것이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가끔 혼자 점심을 먹어야 하는 전남편이 걱정되어 "오늘 뭐 먹었어?"하고 물어보면, 그런 사소한 것까지 얘기해야 하냐며 이제 그런 것 묻지 말라고 하던 날부터였다.

저녁 준비를 위해 언제 퇴근하는지 물어보면, 그것도 간섭하는 것 같고 의심하는 것 같으니 묻지 말라고 했다.


드디어 증거를 잡았다 생각해서 증거를 들이대고 물어보면,

어떻게 알아냈냐, 또 뒤를 캐고 다녔냐, 나를 못 믿는 것이냐 따졌고,

만나긴 했는데 그런 의도로 만난 것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다 둘러댔다.


어느 날엔가 출근한 내가 집에 두고 간 물건이 있어 다시 왔을 때

"여보, 나 속옷 색깔은~~"이라는 어이없는 통화를 들었고, 안 되겠다 싶었다.

결정적 증거를 잡았고,

마음이 찢기는 장면을 목격했고,

이번에는 내가 이혼을 요구했다.

전남편은 1번 상간녀에게 복수를 하고 싶다는 얼토당토않은 변명을 했으며,

이제 복수고 뭐고 다 끝났으니 다시 만나지 않겠다고 했지만,

'내가 잘못했다, 미안하다'는 반성은 없었다.

정말 이혼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대로 이혼하면 나의 탈탈 털려버린 멘털로 동글이의 멘털을 잡아 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엄마인 내가 바로 서야 했다.

그래서 이혼하지 않았다.

물론 전남편은 1번 상간녀를 그대로 만나고 다녔다.

그러나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나는 제대로 이혼하기 위해 그 시간을 견디기로 했다.

이때 읽은 책들이 내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한참 내면아이, 거울육아 키워드가 뜨던 시기였고,

그와 관련된 책들을 탐독했다.


육아를 위해 읽었으나, '나'라는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왜 전남편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나의 가정환경에서 보이기 시작했고,

왜 사람보다 사랑에 목숨을 걸었는지도 보이기 시작했다.

보이니 행동하게 되었다.

전남편의 사랑이 없어도 나는 행복했다.

나는 나로 인해 행복해졌다.

그랬더니 전남편이 1번 상간녀와의 관계에 소원해졌고 (전후관계가 물론 이게 아니겠지만.)

1번 상간녀에게는 새 남친이 생겼으며, 전남편은 다시 가정으로 돌아왔다.


그냥 이대로 괜찮을 것 같았다.

전남편이 내게 어떤 식으로 있든, 내게 함부로 하지는 않았느니 그걸로 충분했고,

그냥저냥 친구처럼 이렇게 의리로 동글이 키우며 살면 되겠다 싶었다.


그때 이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나를 돌아볼 수 있었고

안정적인 상황에서 동글이를 돌볼 수 있었다.


3. 세 번째 이야기


그리고 세 번째 이혼 이야기가 나왔다.

초반에는 이혼하고 싶지 않았다가,

그다음에는 이혼해도 내가 동글이를 키우며 전남편과는 친구처럼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혼 서류를 접수했다가,

세 번째 외도를 알고 나서는 뒤도 보지 않고 이혼을 결정했다.


결정하고 났더니 마음이 평온했다.

지금이 이혼의 '때'였다.

나는 내게 주어진 최선의 선택을 했다.

이혼.



만약 1,2번의 시간이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엉망진창인 생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첫 번째 위기에서 전남편의 요구대로 이혼을 했다면

1번 상간녀와 전남편의 관계가 어찌 되었든

나는 두 돌이 갓 지난 동글이를 발 동동 구르며 키웠을 것이다.

전남편에게 못되게 군 것들만 후회하며

그것들을 만회해 볼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때 내 감정 중 사랑과 정성, 미안함을 쏟아부었다.


두 번째 위기에서 앞뒤 상황 재지 않고 이혼을 했다면

나는 매일을 지옥 같았던 3년을 떠올리며

어쩌면 우울증에 정신과 약을 처방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그런 개떡 같은 기분과 상황에서 동글이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키우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지 못한 채,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 사는 불쌍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어쩌면 또다시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남자를 만나, 또다시 건강하지 못한 사랑을 하며

그것을 사랑이라 착각한 채 허우적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때 나는 나의 감정 중 미움을 쏟아내었다.


감정의 소진.

그것이 키 포인트였다.

그러니까 해 볼만큼 다 해본 끝에 나온 평안한 감정이었다.


그리고

이 세 번의 결정에 이르기까지 나는

나에게 수없이 물었다.


남편을 사랑하는가?

나는 괜찮은가?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모르는 척하고, 짊어지고 갈 만큼 남편을 사랑하는가?

그만큼 나의 마음은 건강한가?


아이도 물론 중요하고,

남편이 나를 사랑하는가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었다.


그러니,

지금 이혼의 위기를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당장 배우자가 외도를 하거나, 지금 당장 불화를 겪고 있다고 해서

지금 당장 이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를 돌아보고, 내 마음을 돌아보고, 충분히 심사숙고한 후에 결정할 일이다.

지금 당장 이혼하지 않는다고 하늘이 두쪽 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지금 이혼한다고 하늘이 두쪽 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감정을 바른 방법으로 쏟아 내고,

감정을 인지하고 받아들인 후

'나'를 위한 결정을 '나'스스로 '충분히'생각해 보고 했으면 한다.


그리고,

'지금이다!'이라는 순간이 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갔으면 한다.


나를 위해, 감정을 알고, 나 스스로, 충분히 생각했다면,

뒤 따위 돌아보지 않게 된다.


마음이 힘든 모든 이들이, 평안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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