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글이 할아버지가 집 근처 병원에 입원해 계셨을 때, 병원에 다녀오며 대뜸 동글이가 물었다.
"엄마, 엄마는 이혼을 어떻게 극복했어?"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할머니 할아버지, 그니까 엄마의 엄마와 아빠는 저렇게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도록 같이 살고 사랑하잖아. 근데 엄마는 그게 아니니까. 엄마가 처음에 그랬잖아. 엄마는 이혼 안 할 거라고. 엄마는 처음에는 안 하고 싶었던 거잖아. 근데 싫은 걸 한 거니까, 그걸 어떻게 극복했어?"
글쎄,
이혼을 극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몇 초의 망설임 끝에 대답했다.
"그냥~ 그냥 보내고 있어. 세상에는 극복하고, 이겨내고 그래야 하는 것들도 있지만, 또 꼭 극복하거나 이겨내지 않고 그냥 흘려보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살게 되는 그런 것들이 있어. 엄마는 그렇게 그냥 흘려보내고 있는 거야. 동글이랑 같이."
그렇다.
나는 이혼을 극복하지 않았다.
그냥 이혼 과정의 시간을 보냈고, 이혼 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도 나는 '이혼'으로 인해 생기는 여러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동글이는 부모의 이혼을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여전히 이유에 대해 납득할 수 없어 어리둥절해한다.
싸우지도 않았는데, 이혼이라니.
동글이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아직은 '엄마와 아빠의 생각이 달랐고, 지금은 아빠에게 엄마 말고 좋아하는 여자친구가 있어.'라고 설명했지만,
언젠가는 동글이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야만 한다.
아니, 납득하지 못하더라도 솔직해야 한다.
동글이는 아빠 집을 궁금해하고, 가고 싶어 한다.
동글이는 아빠가 혼자 산다고 생각한다.
면접교섭일에 제 아빠를 만나고 와서, "엄마, 아빠 집이 우리 집만큼 크대. 아빠 집에 가 보고 싶다."라고 말하는 동글이에게 갈 수 없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아빠 집이 멀어서, 가기가 조금 힘들지 않을까?"라고 둘러댔을 뿐이다.
언젠가는 아빠 집에 갈 수 없는 솔직한 이유를 말해야만 한다.
아빠는 여자친구와 결혼을 했고, 그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말을.
나는 동글이에게 솔직하지 못한 채, 동글이에게만 엄마에게는 다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고 할 수가 없다.
눈치 빠른 동글이는 엄마가 자신에게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비밀이 있는 엄마에게, 자신은 비밀을 말해야 한다니.
불공평할뿐더러, 비밀이 있는 엄마는 믿을 수 없게 된다.
엄마가 아이에게 믿을 수 없는 어른이 될 수는 없다.
믿을 수 있는 어른이 없다는 건.
아이의 사춘기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
부모의 이혼과 상관없이, 부모가 양쪽 모두 있는 가정에서도 '믿을 수 있는 어른의 부재'는 아이들이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지는 사춘기 시기에, 여러 부적응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부모의 이혼에 대해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최대한 사실대로 드러내고,
부모의 감정 또한 최대한 솔직하게 건강한 방향으로 드러내 주어야,
아이도 자신이 힘든 일들을 겪을 때 그것을 사실대로 부모에게 드러낼 수 있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건강한 방향으로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양육자인 나는 언젠가 말해야만 한다.
비양육자인 전남편은 계속 동글이에게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도, 새 아내가 있다는 것도, 다른 아이가 있다는 것도, 그 집에 함께 살고 있다는 것도.
본인의 상황이기에 비양육자인 전남편이 이런 일들을 솔직하게 동글이에게 시기적절하게 말해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동글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
그런 과정에서 동글이는 상처받고, 아파하고, 힘들어할 것이며
나 역시 그런 동글이를 보며 함께 상처받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힘들어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나는 이혼을 극복한 것이 아니다.
그냥, 이혼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보낸다고 하니,
그 의미가 중의적이라 마음에 쏙 든다.
(1) 이혼을 보낸다 (시간이나 세월을 지나가게 하다.): 이혼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2) 이혼을 보낸다 (놓아주어 떠나게 하다) : '이혼'이라는 사건을 놓아주어 이제 내 세계가 아니고, 다른 세계로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