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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달 Apr 05. 2024

2. 이 지옥같은 밤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우리집 동글이가 엄마 가지 말라고 나를 붙잡고 울었다.

요즘도 자려고 눈을 감고 누우면 가끔 그 날들이 떠올

무섭고 두려운 기분이 되곤 다.



2023년 3월 초순 어느 나날들.


그는 침대 아래에서 나를 불렀.

빨리 이혼하자고.

빨리 정리하자고.

그럴 때마다 나는 자는 척 두 눈을 꼭 감고 안 들리는 척 두 귀를 닫고, 고 또 빌었.

이 지옥같은 밤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저 지랄이 그저 제 풀에 지치기를.


사람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생존'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기능을 떨어뜨린다 한다.

나의 영리한 뇌는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을 제외하여, 체온을 떨어뜨린건지, 따뜻한 장판 위에서도 나는 차디찬 두 손을 모으고 두눈을 꼭 감고 빌고 또 빌었다.

이 지옥같는 밤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저 지랄이 그저 제 풀에 지쳐 끝나기를.

우리집 동글이에게도 나에게도 이 밤이 안전한 밤이 되기를.


3월 2일 이혼하자는 그의 말을 들은 다음 나는 무당쌤에게 전화를 했다.

이 무당쌤와 그의 두번째 바람 때 알게 된 신내림을 막 받은 용한 무당쌤이었다.

많은 것을 용하게 맞추었고, 땡씨에게 새 남자가 생겨 끝날테니 안심하라고, 이제 괜찮을거라고(이게 괜찮은건가요?)나를 많이 응원하고 지지해주던 쌤이었다.

사실 맞추지 못하는 것들도 있었지만, 나를 지지해주는 상담자같은 기분으로 자주 통화하고 톡하던 사이였다.

무당쌤은 지금 그가 미쳐버릴 지경이라고, 가만히 두면 아버지든 남편이든 건강에 크게 문제가 생길테니 일단 둘 사이를 떼어놓아야 한다고 했다.

남편도 지금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니 아버지께서 나가시든 남편이 나가든 해야 산다고 했다.

아버지께서 건강이 안 좋아 서울에 계신것이니, 일단 남편이랑 별거를 하는 것도 괜찮을 거라 했다.

가서 숨통 좀 트이면 돌아올 거라, 괜찮을 거라, 이혼 수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 했다.

(이혼 수가 없다더니.. 저는 이혼을 했네요.. ㅎㅎ 맞추지 못했음에도 지금 나는 무당쌤에게 너무나 감사하다. 이혼할 수 있게, 마음을 단단히 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기에.)


마침(?) 그는 코로나에 걸린 직원과 식사를 한 뒤 코로나는 아니지만 심한 감기로 집안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지내던 참이었고,

(친정 아버지께서 항암 중이라 감기에 걸리면 위험하다 하여 가족 중 누군가 감기에 걸리면 마스크를 쓰고 지내고 있다.)

감기가 나을 때까지 시댁인 광명에서 지내야 하나, 수유에 있는 친구 집에 가 있어야 하나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렇게 쌤과 상담을 마치고,


그 날 밤에도 어김없이 그는 침대 아래 바닥에서 나를 불렀다.

이혼하자고 또 얘기했다.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았느냐고.

그는 늘 자신이 원하는 걸 (대부분 여자 문제로 나와 무언가 담판을 지어야 할 때.) 얻기 전까지는 이렇게 들들들들 볶는다. 마치 장난감 내놓으라 떼쓰는 어린 아이처럼.

나는 무서웠다.

그런 그가 두려웠다.

어떻게 해서든 원하는 결과를 얻도록 나를 가스라이팅할테니까.

나는 판단력이 흐리다 말할 것이고, 이 문제는 내가 먼저 얘기를 꺼낸 거라 할 것이고, 내가 뭐라 반박하면 '아이'카드를 들고 나와 나를 협박할테니까.

지난 6년간 그래왔으까.

그런 수법도 다 알고, 나는 이제 그런 가스라이팅에 당하고만 있을 나약한 인간이 아니라고 머릿속으로 되뇌어봐도,

6년동안 체득한 그 분위기는. 여전히 두려웠다.


그래도. 나는 달라졌다.

가스라이팅 당하기 쉬운 상냥하고 늘어지는 말투가 아닌,

상냥하지만 단호한 말투를 장착다.

나는 우리집 동글이를, 내 가정을 올곧게 지켜내야하기 때문에.


지금 오빠가 힘들어서 그러니까 일단 떨어져 지내면서 생각해 보자고 나는 대답 했다.

이어 나는 이혼을 한다해도 내가 동글이를 키워야 하는데 환경이 바뀌는 건 원하지 않는다, 친정 부모님도 집에 와 계시고 그러니 오빠가 감기도 걸렸고 며칠 광명에 가서 지내는 건 어떻겠느냐 했다.

그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는 그런데 지금 당장 이혼을 하고 싶다 했다. 내일 당장이라도 이혼 서류를 넣으러 가자고 했다.

아이가 있으니 숙려기간은 3개월이라 그 3개월동안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숙려기간이라나 뭐라나.

그렇게 또 나를 들들 볶았다.

다시 나는 자는 척 눈을 질끈 감았다. 다 들리지만 안 들리는 척 귀를 닫았다.

잠이 든 우리집 동글이를 깨지 않게 살짝 끌어안고 빌고 또 빌었다.

오늘 밤 무사히 지나가기를.

우리 모두에게 안전한 밤이 되기를.


이후.


며칠 그는 광명에서 지냈다. 감기에 걸려 잠깐 지내겠다는 핑계를 양가 어르신들께 대고.

그 며칠동안 나는 생각했다.

나의 상황과 그의 상황에 대해서.

그가 지금 너무 답답한 상황일테니, 무당쌤 말씀대로 얼마간 떨어져 지내면 숨통좀 트이고 가족들 볼 수 있는 에너지도 다시 생길테고..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당장 그는 내게 이혼하자고 들들 볶을테니 지금은 이혼한다고 해야겠다 생각했다.

어차피 법원 출석일에 안 나가면 그만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를 믿었다. 어리석게도.

그가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어리석게도.


그리고 필요한 옷가지들을 챙기러  그는 또 침대 밑에서 나를 불러 내게 물었다.

지금 당장 이혼하는 거 어떠냐고.

더는 대답을 미룰 수 없었다. 오늘 밤은 작정을 하고 온 것이었으므로. 내 대답을 듣기 전까지 그는 나를 재우지 않을 것이라는 촉이 왔다.


나는 이혼하겠다고 했다.

대신 5월 말까지 내 마음 정리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1. 이혼을 할 경우: 정말 마음 정리가 필요했다.

2. 이혼하지 않을 경우: 5월은 가정의 달이라 이런 저런 행사도 많으니.. 동글이와 양가 어르신들을 보며 느끼는 바가 있겠지. 싶었다.)

그는 5월 말까지 기다릴 시간적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다고 했다.

(나는 이 부분에서 무려. 그의 걱정을 했다.

혹시 그가 엄청 아픈 건 아닐까. 땡씨와의 바람이 마음에 걸렸던 그는 자주 체했고 자주 약을 먹었고, 염증 약을 달고 살면서 최근 신장이 안 좋았었다. 혹시나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시한부 판정을 받았거나... 했나.. 그래서 지금 여유가 없다고 하는 것일까.

나라는 인간은. 참으로. 속이기 좋은. 어리석은 인간이었다.)

그는 이혼하기로 마음을 정했으면 내일 당장 서류를 넣으러 가자고 했다.

아이는 본인이 키우고 싶지만 첫번째 바람때부터 아이없으면 나 죽는다고, 아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키우겠다고 했던 터라 나보고 키우란다.

재산분할은 집 시세를 반으로 나누고, 양육비 1억정도를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이 재산분할 부분은 추후 다루겠지만 양육비 1억에 대한 얼토당토않은 논리를 내세워 정말 정 떨어지게 하던 그였다.)

나는 아래와 같은 최후 통첩을 날리고, 입을 꾹 닫고 버텼다.

"5월 말에 서류 넣으러 가자. 오빠는 오랜 시간 고민하고 생각해 온 문제지만, 나는 이제 겨우 열흘 남짓이었다. 우리의 10년 결혼 생활은 내게 그렇게 금방 정리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대신, 5월 말에 이혼 안 하겠다고 떼쓰거나 우기지 않겠다."

그리고는 입을 꾹 닫았다.

그는 미쳐버리려고 했다.


거실에서 주무시는 친정 부모님, 내 옆에서 자고 있는 우리집 동글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지금 당장 가자고! 내일 당장 서류 넣으러 안 갈거면 나 지금 거실 나가서 아버님 어머님께 말씀 드리고, 동글이 데리고 나갈거야!!!"

그 어두운 와중에도 그의 광기 어린 눈이 보였고, 나는 벌벌 떨었다.

"오빠 왜그래.. 동글이 자잖아. 조용히 얘기해. 애 앞에서 그러지마."

"그러니까!! 내일 당장 서류 넣자고! 나 지금 동글이 데리고 나간다!!"

그는 곤히 자고 있는 동글이 옆에 와 소리를 쳤고, 동글이는 일어나 울었다.

그는 동글이가 듣고 있는 걸 알면서 또 소리쳤다.

"그러면 니가 나가! 내일 이혼 서류 넣으면 애 있으면 숙려기간 3개월이니까 6월에 이혼 되겠네. 그렇게 하고, 니가 나가면 되겠다!!"

동글이는 자다 깨서 자지러지게 울었다.

옆에 있는 나를 꼭 붙잡고 엄마 가지 말라고 울었다. 엄마 가면 안된다고, 나를, 그 작은 아이가, 있는 힘껏, 안았다.

그는 동글이를 잡으려했고, 순간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나는 그의 손을 동글이에게서 떼어내고 나 또한 있는 힘껏 나처럼 무서움에 떨고 있는, 작고 소중한 동글이를 안았다.

동글이와 나는 서로 그렇게 절대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의지로 서로를 꼬옥 껴안았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최대한 침착하게 동글이에게 말했다.

"엄마 어디 안가. 걱정하지마, 동글아. 엄마는 동글이 옆에 동글이랑 꼭 붙어있을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자."

동글이의 작은 몸을 끌어안고 토닥토닥, 침착해지려 애썼다.


그는 겨우 이성을 찾아 침대 아래 본인의 이부자리로 돌아갔고,

자꾸 뭔가 말하려는 그에게 "동글이 놀랐어. 그만해. 오늘은 그만 자자."라고 말하며 또 이 지옥같은 밤이 얼른 지나가기를. 기도했다.

오늘은 작은 우리집 동글이를 토닥토닥이며.

빌고 또 빌었다.


다음날 아침, 무사히 해는 떴고,

그는 속이 안 좋은 사위를 걱정하여 양배추즙을 건네는 장모님의 손이 무안하게,

회사에 급히 볼일이 생겼다며 서둘러 출근길에 나섰다.


그날 밤 우리의 대화가 동글이 기억 속에 없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이들의 기억력은 참으로 좋다..


그가 서둘러 나간 그날 저녁, 동글이가 갑자기 식탁에서 간식을 먹다가 얘기했다.

"엄마 아빠 진짜로 이혼해?"

거실에 계시는 친정 아빠와 주방에 계시는 친정 엄마를 얼른 번갈아 보았다.

다행히도 두 분 다 못 들으셨다. 휴우...

동글이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왔다.

"동글이 어제 엄마랑 아빠랑 한 얘기 기억나?"

"응, 아빠가 11시 반쯤에 무섭게 얘기해서 깼어."

"그랬구나. 동글이 무서웠구나. 아빠가 요즘 힘든 일들이 많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목소리가 커져서 무섭게 느껴졌나보다. 아빠랑 엄마랑 이혼 안 할거야."

"응, 엄마 어디 가지마.."

"엄마 동글이 옆에 꼭 붙어있을거야. 걱정하지마.^^"

그리고 동글이는 다시 학교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이야기했다. 학기 초라 할 이야기가 많은 동글이였다.

웃으며 이야기를 들었지만, 동글이에게 이런 기억을 남겨주어 미안한 마음에 더하여, 어린 아이가 밤에 그 화난 아빠 목소리로 부모의 이혼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나 무서웠을까.. 를 생각하니 안쓰러워 동글이의 학교 이야기들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지옥같은 밤은.

다시 오지 않았다.


그가.

이혼하겠다는 나의 대답을 듣고,

어린이날을 제외하고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그의 소원대로. 이혼을 했으므로.

그의 양보 덕에. 조금의 시간을 번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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