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득 달 Mar 29. 2024

1.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이혼하자.

세 번째 '이혼'이라는 단어. 살려달라는 그의 애원.

2023년 3월 2일.

전날 온라인 입학식 행사를 마친 의 입에서 이혼하자는 말이 나왔다.

오늘 오프라인 개학식을 마친 아내에게.

아마 평생 나는 개학식을 마친 밤에는 이 날이 떠오를 것이다.

젠장, 왜 하필 이렇게 바쁜 때에.


힘들 만도 했다.

어떤 기분인지 충분히 짐작 가능했다.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2022년 가을, 엄마인 의 복직에 따 긴장감 때문이었는지  초 1이었던 우리집 동글이에게 경미한 틱이 왔다.

(지금은 너무나 말끔히 괜찮아졌지만.)

이 문제로 그는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를 병행했다.

2022년 가을, 친정아버지께서 심장 스텐트 시술을 하셨다.

2022년 겨울, 친정아버지께 불쑥 암이 찾아왔다.

지방 국립대 병원에서 헤모글로빈 수치가 뚝뚝 떨어져 원인을 못 찾고 서울 빅5 응급실로 오셔서 응급 내시경 결과, 암덩어리에서 피가 새고 있는데, 심장 스텐트를 하신 지 얼마 안 되어 수술을 해도 심장이 잘 버텨줄지 모르겠으나 지금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그렇게 응급으로 수술을 하셨다. 장장 8시간에 걸친 대수술이 무사히 끝났고 중환자실에서의 회복, 다른 환자들보다 길어진 입원 기간으로 가족들 모두 마음을 졸여야 했다.

비슷한 무렵, 시어머니께서 망막 변성으로 실명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생겨 수술을 하셨다.

역시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잘 회복 중인 상태셨다.


2022년 가을-겨울은 우리 부부에게 시련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2023년이 되었다.

지방에 계신 친정 부모님께서 서울로 통원 치료가 어려우시니, 자연스레 우리집에 머무르게 되셨다.

처음에는 수술 후 회복기간 동안 머무르자 하셨던 것이, 항암 치료 결정 후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게 머무르게 되셨다.

그는. 힘들었을 것이다.

효자인 그는, 아니, 효자일 수밖에 없는 그는, 어머니께 신경 쓰지 못하는 이 상황이 싫었을 것이다.

편찮으신 장인어른과, 그런 장인어른의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시는 장모님과, 그런 어두운 집안의 분위기와, 모든 것들이.

그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1도 맞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탈출하고 싶었을 것이다. 도망가고 싶었을 것이다.

이해했다.


그리고, 우리는 벌써 두 번이나 이혼 위기를 겪지 않았는가.

나를 더 이상 여자로 사랑하지 않는 그는 나의 가족들에게 얽매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너무나 자상한 아빠로, 전우애를 느낄 만한 남편으로, 듬직한 사위로 잘 기능(?)해 주었기에,

이혼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온라인 입학 준비로 2주 전부터 퇴근이 늦힘들어하는 그를 토닥여주고자  옆으로 갔다.

등을 토닥여주고 고생했다 말하는데, 오늘은 너무 힘드니 그냥 자자 한다.


"왜 그래.. 회사 일이 너무 힘들었구나."

"아.. 회사 일도 그렇고.. 나 스스로도 너무 힘들고.."

"왜.. 무슨 일 있어?"

"우리.. 이혼하자.."

"... 응?"

"말 안 하려 했는데 니가 말하게 만드네... 그만하자. 니가 예전에 했던 말이 계속 떠오르네.. 한번 더 이혼하자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혼해 준다고 했던 말."

"아니 그건, 오빠가 다땡씨랑 진짜 너무 사랑해서 나랑 못 살 거 같으면 그때는 진짜 이혼해 준다는 말이었지."

"다땡이랑 상관없이, 그냥 이혼해 줘라. 나 좀 살려줘. 나 죽을 것 같아. 내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 줄 알아? 한강에서 뛰어내려 죽고 싶다, 차 사고 나서 죽고 싶다.. 이래.."

"아빠랑 엄마랑 갑자기 올라오시고, 오빠 힘든 거 알아.. 그래서 이사를 가든지 해서 오빠도 오빠 생활을 좀 할 수 있게.."

"아니, 어머님 아버님 때문이 아니야. 내가 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그래. 아버님 오시고 편찮으시고 그런 거 때문이 아니라고. 니가 전에 쓰던 다이어리 내용 기억나? 그 내용들 때문에 계속 답답해."

(다땡씨와 어디 어디 데이트했는데, 나는 그런 데 데려가지도 않는다. 이제는 나랑 동글이만 생각하고 살아야겠다. 어린이날 동글이가 나가지 말라고 우는데 다땡씨를 꼭 만나러 나가야겠니? 대충 이런 내용)

"오빠가 지금 좀 힘들어서 그런 거 같아.. 조금 천천히 생각을 해보면.."

"요 며칠 내가 늦게 들어온 것도 그래. 사실 일찍 들어올 수 있었는데, 들어오면 아버님 힘들어하고 그런 모습 나한테 보이기 싫어하시는 거 아니까 그래서 늦게 들어온 거야."

동글이가 뒤척뒤척했다.

그는 말했다.

"제발. 이혼해 줘. 나 좀 살려줘."

"생각해 보자. 일단 자.."


잠이 오지 않았다. 몸이 벌벌 떨렸다.


이혼이라니.

이제야 다땡씨게 다른 남자가 생겨서 우리 가정이 잘 돌아가고 있고,  나도 다땡씨에 대한 질투심, 복수심 이런 마음에서 벗어나 나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동글이의 하루하루를 사랑하며

그의 하루하루를 응원하고 있었는데.


이혼을 해야 한다니...




우리는.

세 번째 '이혼'이라는 단어 끝에 결국 이혼을 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날 그가 했던 여러 말들은 당시의 진심이었다.

이기적인 '세 번째 외도'와 비겁한 '도망'을 숨기기 위한 '그'만의 '순간의 진심'이었다.



이전 01화 - 프롤로그 -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