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이 다른 여자 셋의 독서 (1)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누가 그랬나.
진정한 독서의 계절은 겨울이다.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로 고양이가 걸어 다니는,
단 한 발자국도 집 밖으로 나가기 싫은,
이불 밖은 위험한
겨울에는,
뜨신 방바닥에 배를 깔고 귤이나 까먹으면서 책을 읽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또 없다.
그리하여,
성이 다른 여자 셋은 겨울방학 동안 책을 탐독(耽讀)했다.
1. P여사의 독서
우리집 P여사는 故 박완서, 공지영, 김진명 작가를 좋아한다.
우리집 P여사는 언젠가 내가 故 박완서 작가처럼 널리 이름을 떨치는 작가가 되기를 아직도 바라고 있다.
(그러면서 P여사는 내게 공부를 더 해서 장학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한다. 나는 공부라면 이제 지긋지긋하다. 차라리 널리 이름을 떨치지는 못하지만, 글을 쓰는 것을 택했다.)
우리집 P여사는 원래 책 읽는 것을 좋아했나?
(뭔가 말투가 "길라임 씨는 언제부터 예뻤나?"같다고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P여사는 드라마를 좋아했다.
어릴 적 외할머니집에 엄마의 다섯 자매가 모이면 어떤 드라마가 재밌고, 어떤 드라마는 어떻고 이런 드라마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내가 중딩이때 우리 반 최**을 따라 김진명 작가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하늘이여 땅이여>를 읽고 있던 때 P여사도 함께 읽었던 것 같다.
또 생각해 보면,
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P여사는 종종 당시 나의 남친이었던 전남편에게 선물 받은 공지영, 박완서 작가의 책을 읽고 재밌으니 읽어보라며 내게 권하기도 했던 것 같다.
당시 남친이었던 전남편이 엄마에게 책을 선물했던 것을 보면, 우리 P여사가 책을 좋아했나 보다.
그렇다면 그때 읽었던 책들이 현재 좋아하는 작가를 결정했던 것일까?
아무튼,
우리집 P여사는 요즘 큰글자도서를 좋아한다.
책을 오래 보면 눈이 피곤해지는데, 큰글자도서를 읽으면 눈이 덜 피곤하다는 것이다.
큰글자도서는 동네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대여를 하고 있는데,
더 많은 도서들이 큰글자로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책을 좋아하는데 눈이 금방 침침해져서 책을 오래 볼 수 없는 P여사와 같은 사람들의 독서를 위해서.
(명퇴를 앞두신 선생님께서도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신다. 책을 너무 좋아하는데 눈이 피곤해서 책을 잘 읽지 못해 고민이라는 것이다. 큰글자도서를 추천해 드렸다.)
P여사를 위해 빌려 온 큰글자도서를 읽었는데, 글자 크기가 커서 아동도서를 읽는 느낌이었지만,
눈이 덜 피곤해서 나도 좋았다.
역시, 나도, 노안의 길로 접어드는 것인가.
우리집 P여사의 책 대여는 순전히 내 몫이다.
P여사가 직접 가서 책을 고른 적은 없다.
귀찮다는 이유다.
그러므로 대여하는 내 입장은 매우 곤란하다.
내가 고른 책이 P여사의 취향에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읽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한 P여사는 "이 책은 별로다.", "이 책은 너무 어두워.", "내 스타일이 아니네"라는 적나라한 감상평으로 책을 대여한 나의 수고를 헛수고로 만들어 버린다.
그런데 이런 솔직한 감상평 덕에 P여사의 취향을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다.
P여사는 김진명 작가의 소설처럼 전개가 빠른 장르를 좋아한다.
처음에는 역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좋아하나? 싶어
역사를 바탕으로 한 여러 소설을 대여했는데,
몇 권을 성공, 몇 권을 실패였다.
실패 요인을 분석한 결과 P여사는 전개가 느리면 안 된다.
그러나 또 정유정 작가의 소설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잔인한 장르는 아무리 전개가 빨라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 작가가 또 한 분 있는데, 바로 한강 작가이다.
P여사는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탔다기에 한 번 읽어보려 했는데, 죽은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고, 우울하고 싫다고 했다.(P여사의 개인적 견해입니다.ㅎㅎ)
정리해 보면 P여사는 깊게 생각하게 하는 책 말고,
흥미진진하게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는 책을 좋아하는데,
종종 한밤중에 거실에 불을 켜고 책을 본다.
"엄마, 안 자?" 하고 나가면
"아니, 뒷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잠을 잘 수가 없잖아~~"라며 소녀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최근에는 그런 흥미진진한 소설류의 큰글자도서들을 거의 섭렵하여,
에세이를 대여해 주었는데,
밀라논나의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를 읽으며 메모를 하는 P여사의 모습을 보았다.
P여사는 가끔 "작가들은 어쩜 이렇게 멋진 문장을 만들어내나 몰라. 나는 한 문장 쓰고 나면 금방 쓸 말이 없어지던데."하고 투덜거린다.
멋진 문장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이 부럽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P여사는 자신의 못 이룬 꿈을 내게 전가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얼마 전 동료 교사에게 P여사를 위해 동네 도서관에서 큰글자도서를 빌리는데 한번 읽어봤더니 눈이 편하더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어머, 선생님 어머니 너무 멋지시다~ 책을 읽는 할머니라니. 아이에게도 너무 좋을 것 같아요!!"라고 하셨다.
멋진 할머니.
뒷 이야기가 궁금해 밤잠을 늦추는 우리 P여사가,
오래도록 궁금한 책이 많았으면 좋겠다.
2. 싱글맘 S의 독서는 60초 후!!!
가 아니고
일주일 뒤에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