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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칫솔은 누가 다 버렸을까

성이 다른 여자 셋의 칫솔

by 문득 달

*매거진에 발행했던 글을 일부 수정하여 연재북에 재발행합니다.*


브런치스토리가 내게 경고장을 보내왔다.

나의 글쓰기 근육이 손실되어 가고 있으니,

어서 글을 쓰란다.


경고장을 받으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나태해진 마음에 빨간 불이 켜졌다.

써야해!!!



칫솔이 세 개에서

다섯 개가 되었다가

네 개가 되더니

다시 세 개가 되었다.


칫솔은 가족 구성원을 상징한다.

드라마에도 자주 등장하지 않은가.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남녀로 결혼'식'을 보여준다면,

한 컵에 담긴 칫솔 두 개로 결혼'생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우리 집 칫솔은 전남편과 아이, 내 칫솔 이렇게 셋이었다가

아빠와 엄마 칫솔이 추가되어 다섯이 되었다가

전남편과의 이혼으로 넷이 되더니

아빠의 소풍으로 다시 원점,

그러나 주인이 달라진 셋이 된 셈이다.


그런데

그 칫솔이라는 것이 뭐라고

칫솔을 들이기는 쉬웠는데, 칫솔을 빼는 것은 어렵더라는 것이다.


전남편은 '이혼'을 말하고 서로의 합의로 별거를 시작했다.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집에 와서 초딩이J를 보고 밥 한 끼는 먹었으므로 '칫솔'을 뺄 수가 없었다.

물론, 내 마음에서도 전남편을 아직 뺄 수가 없었던 시기였다.

초딩이J에게 이혼을 알리고 전남편이 집에 발길을 아예 끊은 뒤로도

'아이 아빠'의 칫솔을 쉽게 빼낼 수는 없었다.

텅 빈 아빠의 칫솔꽂이를 보며 초딩이 J의 마음이 얼마나 휑 할지, 그 마음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그것은 내 마음이 두려운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전남편의 파란 칫솔을 빼서 하수구 청소를 했다.

(그건 전남편에 대한 감정이라기 보단, 우리 집의 제 할 일을 다 한 칫솔의 용도일 뿐이니 오해 마시길.)

중요한 건 칫솔을 버렸다는 것이다.


아빠가 하늘로 소풍을 가신 후

아빠의 칫솔은 여전히 P여사의 칫솔 옆에 걸려 있었다.

P여사가 의식을 하지 않았을 수도,

나처럼 아빠의 빈자리가 느껴져 버리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칫솔이 있다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사라진 아빠의 칫솔로 P여사가 나처럼 하수구 청소를 하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중요한 건 칫솔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칫솔이 사라졌다고 해서

사라진 칫솔의 주인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사라진 건 아니다.


초딩이 J에게는 여전히 보고 싶은 아빠이고,

내게는 여전히 사랑했던, 증오했던 전남편이며,

P여사에게는 여전히 아직도 미운 전사위이다.


초딩이 J에게는 여전히 땅콩냄새나는 그리운 할아버지이고,

내게는 여전히 세상 가장 안타까운 아빠이며,

P여사에게는 여전히 다시 태어나도 사랑할 것이 분명한 남편이다.


그런데 그 칫솔이 뭐라고 우리는.

칫솔에 가족 구성원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며.

칫솔 버리기를 그토록 힘들어했을까.


칫솔을 버린다는 것은,

어쩌면

이제는 편히 보내주어야겠다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어릴 때 우리 집은 친척들이 자주 찾았는데,

칫솔을 챙겨 오지 않은 친척들이 양치를 해야 할 때 우리 집 새 칫솔들을 내어주었다.

그들이 그렇게 한 번 쓰고 간 칫솔들은 칫솔캡이 씌워진 채로 화장실 어딘가에 보관되다 사라지곤 했는데,

그 칫솔들은 도대체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나라면 차곡차곡 모아놓았다가 하수구 청소용으로 잘 사용했을 텐데.

혹시.

P여사도?

매거진에 발행 당시, 좋아요와 댓글을 잊지 않기 위해 보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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