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이 다른 여자 셋의 독서 (2)
개학이다.
바쁘다.
여유로운 방학 때 무엇을 하고, 나는 바쁜 학기 중에 밤늦게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것인가.
방학 때는 무엇을 했는가.
방학 때 나는, 충분히 게으르게, 책을 읽었다.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 )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
의 생활화였다.
방학 두 달 동안 오롯이 나를 위해 읽은 책이 10권이라면, 충분히 부지런하게, 책을 읽은 셈이다.
위안을 삼는다.
지난 겨울방학 동안 우리 성이 다른 여자 셋은 다독(多讀)과 탐독(耽讀)의 시간을 가졌고,
지난 이야기에서 우리 엄마 P여사의 독서에 대해 이야기했다.
2. 싱글맘 S의 독서
나는 '우당탕탕 이혼 보내기'의 '초코와 커피와 책과 음악의 시간'에서 언급했듯 책을, 독서를 좋아한다.
여기에서 다 얘기했으니, 이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그런데 마술처럼 키보드 앞에 앉으니 손가락이 막 움직인다.
나라는 사람도 참, 수다쟁이임에 틀림없다.
동네 언니들이 "너 설마 취미 생활이 독서는 아니겠지?" 하며 놀리듯 웃었지만,
그렇다.
나의 취미는 독서다.
골프도, 수영도, 배우고 싶은데,
나의 취미가 그나마 돈 적게 드는 독서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한국 나이 마흔 하나가 되니,
인생에 크고 작은 굴곡들이 생겼다.
그 굴곡들마다 나와 함께 해 준 것은 책이었다.
현실이 괴로워 잊고 싶어 책을 읽었고,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도움을 받고자 책을 읽었다.
현실이 괴로울 땐 주로 성장 소설을 읽었고,
현실을 살아낼 도움을 받고자 할 땐 주로 육아 서적을 읽었다.
성장 소설에 등장하는 청소년은 마치 당시 나의 모습처럼 위태로웠다.
그러나 이 청소년들은 불안하고 위태로운 시절을 스스로의 힘으로, 좋은 사람들의 믿음으로 헤쳐 나간다.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처럼 우리 모두 흔들리며 꽃 피우는 아름다운 존재라는 인생의 진리를 깨우쳐 나간다.
성장 소설을 읽어가다 보면
절망스러운 현실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하고, 다시금 힘을 내게 된다.
또한 청소년을 위한 책이라서 어렵게 문장을 꼬거나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어 쉽게 읽힌다.
(이금이, 이꽃님, 유은실, 김려령 작가님들 덕에 저는 현실을 잊었고, 현실을 살아가기 위한 힘을 얻었습니다. 저를 모르시겠지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육아 서적은 사실 많이 읽은 편은 아니다.
원래 부모마다, 아이마다 육아 방식이 달라 각자의 방식으로 나름의 고군분투를 하며 육아를 하며
부모도 아이도 성장한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어서,
누군가의 육아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책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다 육아하는 동네 언니의 추천으로 '푸름아빠 거울육아', '오은영의 화해'를 읽게 되었다.
각자의 육아 방식은 결국 자기 자신을 비추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방식은 나를 키운 내 부모의 육아에서 기인한 모습들이 많았다.
위의 두 책을 통해 나는 '내면 아이'를 만나게 되었고,
나의 부모는 나를 최선을 다 해 키웠으나, 어쩔 수 없는 사소한 일들로 상처받은 '어린 나'를 보았다.
책에서는 '어린 나'를 위로하고 손을 내 밀고... 등등의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 없었다.
눈물이 났고, 소리 내어 울었고,
그랬더니 나의 부모가 안쓰러웠다.
그들에게도 나처럼 어쩔 수 없는 사소한 일들로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다 자라지 못한 채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알고 나니, 보였다.
내가 전남편을 왜 사랑하게 되었는지, 어떤 부분들이 나의 실수였는지.
보이니,
느껴지는 감정들을 감정 그대로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감정을 받아들였더니, 짜증이나 불안이 줄었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내 감정이 조절이 되니,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상황들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러다 보니 일관성이 생겼다.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전보다 나아졌다는 것이지 완벽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완벽한 사람이, 완벽한 엄마가 어딨어. 그냥 최선을 다 하는 거지.)
여자로서 예민한 날에는 역시나 극도로 예민해져서 사소한 것도 잔소리를 늘어놓는,
나는 '그냥 엄마'다.
그렇게 나는 책으로 삶을 잊었고, 책으로 삶을 살았다.
그리고
나의 현실도피형 독서는 어느 순간 삶의 일부인 독서가 되어 버렸다.
그것은 시인 문보영이 '힘든 순간에 게걸스럽게 시를 읽었고, 그런 시간을 한번 통과하자 아플 때만 시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무탈할 때도 시를 읽는 사람이 된'(문보영의 '일기시대' p.96) 것과 비슷했다.
나는 책을 편식한다.
그래서 요즘은 다양한 책들을 보려고 노력 중이다.
과학, 역사, 특히 예전에는 손도 안 대던 경제 서적도 보고 있다.
'어디 한번 나도 부자가 되어 보자!'라는 생각으로 '머니 트렌드 2025'도 읽어보고, 주식 투자도 해 보고 있다.
생각보다 재미있어 놀라웠다.
물론 이론과 실제는 달랐으며,
'머니 트렌드 2025' 출판 당시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은 달라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크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세상에 벌어질 줄, 누가 알았겠어.)
책을 좋아하는 선생님들끼리 모임도 만들어,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하나의 책을 읽고 다양한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 좋고,
서로 읽은 책들을 추천해 주며 돌려 읽는 분위기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OTT나 유튜브에 밀려 책이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
그와 동시에 문해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이는 학교 현장에서도 느낄 수 있다.
책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을 만큼은 아니지만,
책이 주는 그 무언가를 느끼는 여유를 지닌 사람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내게 '독서'가 삶을 잊게 하고, 삶을 살게 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도 '독서'가 그러한 것이 되기를 바란다.
3. 초딩이 J의 독서는 일주일 뒤에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