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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나와, 로또 번호나 알려주지 그랬어.

성이 다른 여자 셋의 꿈 이야기

by 문득 달

개학하고 한 달 내리 꿈에 전남편이 나왔다.

악몽이다.

꿈속에서도 전남편은 때론 뻔뻔하게도 상간녀를 데리고 우리 집에 나타나기도 했고,

때론 어이없게도 초딩이 J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나는 한 달 내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잤고,

한 달 내내 피곤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에는,


꿈에 돌아가신 아빠가 나왔다.


아빠는 울면서 전화를 했다.

아빠는 항암 중에 광주에 혼자 내려가 남은 일들을 하고 있었다.

내가 전화를 여러 번 해도 받지 않더니 갑자기 전화가 걸려와 받았고,

아빠는 뭐라고 뭐라고 울면서 말을 했다.

아빠는 "얼마 전에 찍은 영정사진이 ~~ 지혈한 자리가~~ "뭐라고 하면서 울었다.


꿈에서 나는 우는 아빠를 달래고 있었다.

꿈속에서도 아빠는 무서워했고, 나는 아빠한테 침착하라고 했다.


꿈을 꾸고 일어나 보니 새벽 2시.
어깨가 아프다.

잔뜩 웅크린 채 잠을 잤나 보다.

아빠는 뭐가 그리 무서웠을까.


아빠, 이제 그만 울고..

거기선 아프지 마..

거기 가서도 아프다고 나랑 통화하면 어떻게 해

...

우리 잘 지켜줘야지..


한참을 걱정하고, 뒤척이다 다시 잠이 들었다.


아빠가 꿈속에 다시 나왔다.

내가 자꾸 걱정하니까 아빠는 내 걱정이 되었나 보다.

이번에는 아빠가 웃었다.


우리 집 핑크 의자에 앉아서 아빠는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나와 초딩이 J에게 말했다.

항암을 안 하니, 살 것 같다고.

죽었는데, 살 것 같다니.

꿈속에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기분이 좋았다.

얼굴색이 환하게 핀 게 보기 좋았다.

아빠가 오랜만에 밝게, 아빠 특유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어서, 기분이 좋았다.


일어나서, 아침을 먹으며 P여사와 초딩이 J에게 꿈 얘기를 했다.

초딩이 J는 얼마 전에 꾼 꿈을 적어놓은 할아버지 꿈 노트를 가져와 읽었고,

P여사는 꿈속에서마저 항암이냐며 그래도 안 아파 다행이라며 슬픈 듯 기쁜 듯 희미한 미소를 잠깐 지었다.


초딩이 J는

"에이, 할아버지는 꿈에 나와서 로또 번호나 알려주지~ 책에서 보면 그런 거 많이 나오던데~" 했다.


그러게,

아빠,

로또 번호나 알려주지.

왜 울고 있었어.



2022년 12월 28일.


아빠가 수술한 지 일주일 즈음 되던 날,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이사한 지 이틀 즈음 되던 날,


초딩이 J가 꿈을 꾸고 일어나 엉엉 울었다.

꺼억꺼억 울음을 삼켜가며 초딩이 J가 들려준 꿈 얘기를 듣고 초딩이 J는 나와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꿈속에서 초딩이 J는 어떤 일기 비슷한 이야기 책을 읽었는데,

마지막 페이지에

"67세 인생을 마치며..."

라고 되어있었다고 했다.

초딩이 J는 할아버지가 67세인데, 할아버지 인생을 마치는 일기 같다고 했다.


이틀 전에 할아버지가 중환자실에서 여러 호스를 꼽고 일반 병실로 이사하는 것을 보았던 탓인지.

그 베드에 '환자명: OOO 나이: 67세'라고 적힌 것을 보았던 탓인지.


그날 나는 내 딸의 그 꿈이 무서웠고

학생들을 인솔하여 롯데월드로 체험학습을 가서도

내내 불안해했다.


꿈 얘기는 나와 초딩이 J만 알고 있었고,

우리는 둘 다 그날 이후 그 꿈 얘기를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초딩이 J는 어쩌면 잊었을 수도.

어쩌면 나처럼 무서웠을 수도.



2024년 7월의 어느 날.


열이 나서 응급실로 갔다가,

병원에 입원하신 아빠가 꿈을 꾸셨다.


꿈속에서 아빠는 죽어서 환생을 했는데 스님이 되셨다고 했다.

일어나서 아빠는 '내가 스님이 된 건가.. '하고 가만히 아빠의 몸을 쳐다보았다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 병원이네..' 했다고.

P여사에게 이 꿈을 얘기하며 두 분은 웃었다고 했다.

이 얘기를 내게 전하는 P여사 눈에도, 듣는 아빠 눈에도 오랜만에 미소가 스쳤다.


P여사는 아빠의 꿈 얘기를 마치며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은 좋은 일 많이 하라고 스님이 되려나 보네. 나는 무(無)로 돌아가고 싶은데. 안 태어나고 싶어."


뭐야, 엄마.

예전에는 누구나 예쁘다, 예쁘다 해주는 꽃이 되고 싶다더니.




이렇게 말하는 P여사의 꿈은 신통방통한 데가 많다.


전남편과 내가 연애하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려 할 때쯤 P여사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전남편이 P여사 꿈에 나와 무릎을 꿇고 있더랬다.


그러고 얼마 뒤에 전남편과의 재회 사실을 밝혔으니,

P여사의 꿈속에서 전남편은 아마도 나와의 재회를 허락받고 있었으리라.

근데, 결혼 후 죄송할 짓을 했으니,

그 무릎은 재회의 허락이 아니라, 미래의 잘못에 대한 '죄를 고함' 정도가 아니었을까?


P여사는 나의 이혼 후 희한한 꿈을 또 꾸었다.


전남편이 뾰로통하고 화난 얼굴로 P여사의 꿈에 나와

싱글맘 S는 시부모님을 모실 생각이 없으니 이혼하는 것이라고

떵떵거리며 말했다는 것이다.


전 시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내가 다 늙으면 니네 집으로 가지, 어디로 가겠니."라고 하셨다.

가슴으로 낳은 두 딸 대신, 배 아파 낳은 아들내미 집에서,

며느리의 보살핌을 받으며 노년 생활을 하고 싶으시다는 것이다.

그런 삶에 대해 당연히 힘들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당연한 것도, 그걸 못한다고 손가락질받을 일도 아닌, 나름의 사정이 있고, 각자의 상황에 따른 선택이라 여기고 있었다.

게다가 아직 닥치지 않은 먼 훗날의 일이라 "그럼요 어머니~" 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아빠가 우리집에 오시고 나서,

내가 전 시댁에 소홀해진 건 사실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전남편은, 이혼의 결심을 굳혔을지도 모르겠다.

효자니까.


어찌 되었든, 그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P여사의 꿈에 그런 장면이 나온 건.

정말 P여사의 꿈이 신통방통하다 할 만한 근거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P여사는 예지몽 비슷한 것을 꾸나 보다.


오래전,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외할아버지 산소를 이전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도 외할아버지가 P여사 꿈에 나와 이 산에서 저 산으로 건너가며, 나무뿌리를 발로 찼다나? 뭐 그런 얘길 하는 것을 얼핏 들은 것도 같다.



P여사에게 얼마 전 아빠 꿈을 꾸었다는 얘길 하며,

"엄마 꿈에는 아빠 안 나와?" 하고 물었는데,

"가끔 나오지~ 근데 아픈 모습으로 나와~ 속상해~." 했다.


P여사 꿈에는 아빠가 안 아프게 나오면 좋으련만.



그런데,

아빠,

나는,

아빠가,

나한테,

로또 번호 안 알려줘도 좋으니까,

아빠가,

거기서,

안 아프면 좋겠어.

그리고,

로또 대신,

우리 초딩이 J, 우리 P여사 건강하게 잘 지켜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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