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이 다른 여자 셋의 독서 (3)
제목에 낚이신 분들이 있을 듯하여, 미리 얘기하는데,
우리집 초딩은 천재도 영재도 수재도 아닌 진짜 그냥 사랑스러운 초딩임을 밝힌다.
이 글에서 천재, 영재, 수재의 독서법을 알고 싶으시다면,
포기하시고 빠르게 '천재의 독서법'등을 검색하시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무언가 얻고자 하신다면.
책을 우연히 많이 읽게 된 우리집 초딩이에게 나는.
1. TV나, 핸드폰을 없애는 것 말고 책을 많이 들여놓았다.
- 언젠가 거실 전면을 책장으로 꾸미는 것이 유행이었다. TV를 없애고, 아이들 핸드폰을 없앤다.
그런 집에 가 보았는데, 글쎄, 나는 숨이 막혔다.
TV를 보는 사람이 없다면 모를까.
전에 함께 살았던 전남편은 TV를 좋아했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P여사도 TV를 좋아한다.
TV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굳이 없애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책이 많은 환경은 좋은 듯하다.
2. 엄마도 아이가 독서하는 시간에 함께 독서를 한다.
- 엄마나 아빠는 말한다.
책 읽고, 공부하라고.
그런데 엄마나 아빠는 안 한다.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다.
그럼 아이들은 억울하다.
"엄마는 책 안 읽으면서 나한테만 읽으라고 해."
"아빠는 핸드폰만 보면서 나한테는 보지 말라고 해."
어른들은 말한다.
"억울하면 빨리 어른 되든가!"
뿡이다.
엄마 아빠가 안 하는데, 아이가 할 턱이 있나.
억지로 붙들려하는 독서와 공부는 나는 싫다.
그래서 같이 책 본다.
아이가 책상에서 숙제하는 동안 책 본다.
꾸벅꾸벅 졸면서도 보고, 간식을 함께 먹으면서도 본다.
아이는 최소한 억울하지는 않다.
지난 이야기에서 싱글맘 S의 독서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니 자기 자랑이 된 듯하여 민망했는데,
오늘은 그냥 진짜 미친 듯이 사랑스러운 우리집 초딩이 J의 독서 자랑도 하고 고민을 좀 털어놓을까 한다.
내 자랑은 민망했는데
내 자식 자랑은 하나도 민망하지가 않다.
팔불출 엄마다.
3. 초딩이 J의 독서
초딩이 J는 한글을 빨리 깨쳤다.
내가 끼고 한글을 가르쳤냐 하면 절대 아니다.
나는 중딩이들의 국어쌤이지 어린이들의 국어쌤이 아니므로 한글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방법을 모른다.
내가 어떻게 한글을 깨쳤는지 돌이켜보면 기억이 안 난다.
모국어니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겠지 싶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초딩이 J도 어쩌다 보니 한글을 깨치게 되었다.
아마도 집에 널려 있었던 동화책들 덕분이 아닌가 싶다.
전 시댁 사촌네에서 동화책이 한 무더기씩 오던 때였다.
내가 산 책이라고는 책장이 예쁜 '파란 토끼' 전집이 전부였다.
우리집은 장난감을 많이 키우지 않았다.
국민 육아템인 장난감 몇 개가 고작이었다.
잠깐 쓰고 말 장난감들에 많은 돈을 쏟아붓고 싶지 않았고, 결혼을 일찍 한 터라 주변에서 물려주는 장난감도 없었다.
전 시댁 사촌네에서 주는 책들도 벌써 대학생이 된 사촌 조카들이 보던 10년도 더 된 책들을 시골 창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물려 준 것이었다.
전남편은 몸으로 놀아 주었고, 나는 책을 읽어 주었다.
교육적인 이유라기보다는 그게 마음이 편했다.
처음에는 책을 책장에서 끄집어 내는 재미에 즐거워하던 아기 초딩이 J는
그림을 보며 동물 울음소리와 함께 동물 이름을 말했고
신데렐라, 백설공주 등의 팝업책을 읽어주면 기억했다가 책을 보며 혼자 이야기를 지어내 말하기도 했다.
5살 무렵 한글을 읽기 시작해서, 같은 어린이집 친구에게 책을 읽어주기도 했다니,
참으로 기특하다.
전 시댁 사촌네에서 줬던 '호야토야의 옛날 이야기'를 읽고 말투가 옛날이야기스러워져서
할머니랑 같이 사는 것 아니냐는 웃지 못할 오해도 받았다.
(당시는 할머니와 같이 살지 않았으므로.)
그렇게 초딩이 되었고,
1,2학년 시기에 그리스 로마 신화(만화책), 흔한 남매(만화책), 뽀짜툰(만화책), 퀴즈 과학상식(만화책)을 동네 도서관에서 닳고 닳도록 읽어제꼈다.
만화책이라서 걱정되었지만,
TV 프로그램 '벌거벗은 세계사'를 보다가 그리스, 로마의 역사적인 이야기를 어린이 버전으로 얘기하는 것을 보고 '아, 만화책이라고 영 도움이 안 되는 것도 아니네.' 해서 그냥 두었다.
꼭 만화책만 본 것은 아니라 그냥 두었을지도 모르겠다.
워낙 책을 좋아했고,
초등 저학년이 읽는 책들도 곧잘 읽어 그 정도 읽으면 되었지 싶었다.
초딩 3, 4학년이 되자,
나의 이혼으로 전 시댁사촌네에서 오던 옛날 책의 지원이 끊겼고
동네 도서관에서 대여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대여하여 1-2주 정도 읽을 분량의 책을 채워나갔다.
여전히 만화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다른 책들도 엄청나게 읽어 내려간다.
주로 초등 중학년 도서를 읽지만, 고학년 도서도 기웃거려 본다.
이 정도쯤 되니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재미있어졌다.
크게 의미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아니다.
초딩이 J가 읽는 모든 책을 내가 읽는 것도 아니다.
사실 초딩이의 책은 유치하다.
그런데 가끔 괜찮은 책이라고 들었는데 내가 읽지 못했던 책들이나, "예전에 엄마 학교 다닐 때 읽었던 책인데!" 하는 책들을 함께 읽는다.
(은소홀 작가의 '5번 레인' 추천한다.)
보통은 초딩이 J가 먼저 읽고 내가 읽는데, 내가 책을 보다가 히죽하고 웃으면 초딩이 J가 와서 "엄마, 나도 거기서 진짜 웃겼잖아. 그 다음엔 있잖아~ 어떻게 되냐면~~~" 이라며 스포를 하고 싶어 진단다.
(참, 요즘은 '폭삭 속았수다.' 드라마를 함께 보며 함께 울고 있다. 그러면 다 본 P여사가 와서 자꾸 스포를 하려 한다. 이런 날이 오다니.)
가끔은 내가 읽으려고 빌린 책을 초딩이 J가 먼저 읽기도 한다. (보통 그런 책들은 그림이 귀여운 짧은 에세이 류이다.)
내가 어른들만 읽을 수 있는 책(김려령 작가의 '트렁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 어른들만 읽을 수 있을까요? +_+)을 읽고 있으면
"엄마, 무슨 책 읽어? 재밌어? 나도 볼래." 하면 괜히 민망해져서 헛기침을 하며
"어른들이 보는 거야. 어른되어서 봐~"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초딩이 J의 생각을 알 수 있고, 공감할 수 있어 사이가 더 가까워짐을 느낀다.
초딩이 J도 엄마와 같은 책을 읽으니 뭔가 언니 된 기분이라며 좋아한다.
진짜 진짜 책을 좋아해서 밥 먹을 때도 책을 읽고,
문제집 푸는 것이 싫어서 책을 읽겠다고 고집을 부리기도 하고,
자기 전에도 책을 읽는다.
문제는 속도였다.
겨울방학에 '몽실 언니'를 세 여자가 돌려 보았는데, 초딩이 J가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읽었으며 그다음이 P여사, 그다음이 싱글맘 S였다.
빨리 읽으면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어 좋은 것 아니냐는 엄마들이 있다.
그런데,
워낙 속도감 있게 책을 읽어서인지 천천히 생각하는 것을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문제집을 풀면 문제도 제대로 안 읽는다.
후루룩 읽고 넘어가니, 문제에서 무엇을 묻는지 모른다.
(많은 엄마들이 공감할 듯하다. 문제를 읽으라고 문제를!!)
중요한 부분을 알긴 하지만 진짜 딱 그 중요한 것만 간추린다.
곁가지 이야기들이 있어야 줄거리가 재미있어지는데,
"무슨 이야기야?" 물어보면, "~~ 이야기야. 끝!"이다.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라도 간추리는 게 어디야~라는 엄마들도 있다.
그런데, 아이가 뭔가 잘하는 게 보이면 조금 더 하면 더 잘할 것 같은데~ 하는 욕심이 생기는 게 엄마다.
아쉽다.
그 부분이.
한 문장 한 문장 씹어 읽어 속도가 안 나는 나와는 영 딴판이다.
(덕분에 나는 고딩때 항상 국어영역 모의고사에서 시간이 부족했다. 실제 수능에서도. 물론 지금도.)
게다가 만화책이나 엄청나게 흥미진진한 전천당 시리즈를 볼 때면 책에 너무 깊이 빠져들어서
가끔씩 눈을 크게 뜨는 경미한 틱이 나온다.
치료받는 한의원에서는 그 정도는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하고,
커가면서 자연스레 없어질 것이라 하지만,
엄마인 나는 그런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쿵- 내려앉고 걱정이 된다.
한의원 선생님은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집중을 엄청 잘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부럽다고 (안심시키려고 한 말씀이겠지.) 하지만
엄마인 나는 걱정이다.
그래서 책 좀 그만 보고 엄마랑 놀자는 희한한 잔소리도 한다.
초딩이 J는 알고 있다.
말하지 않았는데도 몸의 변화를 빠르게 감지했다.
본인이 눈이 피곤할 때 눈을 크게 뜬다는 것을.
그래서 그럴 땐 본인이 눈을 꾹꾹 누르기도 하고, "엄마 나 눈이 피곤해요."하기도 한다.
심하지 않아 다행이지만,
엄마인 나는 마음이 아프다.
한의원에서
"눈을 감고 좀 쉬어보자." 하지만, 아이들에게 눈을 감고 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5초도 안 되어서 눈을 뜬다.
그래서 나는 우리집 초딩이 J가 조금은 천천히 책을 읽었으면 한다.
중요한 포인트 이야기 외에 곁가지 이야기들도 알고 넘어갔으면 좋겠다.
눈이 피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책 좋아하는 걸 멈추지 않아 나와 함께 커피 마시며 책 읽으러 카페에 가주면 좋겠다.
그런데요,
이놈의 유튜브는 어떻게 그만 보게 할까요?
책을 좋아하는 만큼 유튜브도 좋아해서 고민입니다.
모든 엄마들의 고민이겠지요?
아, 제가 , TV와 핸드폰을 없애지 않아서일까요? ㅠ.ㅠ
그렇지만, TV와 핸드폰은 저의 편의를 위해 없애지 못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성이 다른 여자 셋의 독서(라는 제목을 가장한 가족 자랑)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