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험한 길의 시작
25살,
동기들 중에서 졸업을 가장 빨리했다. 일명 '칼졸업'을 했다.
졸업하자마자 더 넓은 세상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처음에는 로스쿨이라는 꿈 하나만 바라보고 달렸다.
스터디카페와 집을 오가며 오직 공부만 바라보았고
스터디원들과 서로를 격려하며 첫 시험을 준비했다.
그러나 처음 치른 시험에서 마주한 것은 냉정한 결과,
'1차 서류 불합격'이었다.
하지 괜찮았다. 다시 도전할 수 있으니까.
26살, 법학 공부를 병행하며 리트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느낌이 좋았다. 난 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머릿속을 채우려고 했다.
스터디카페에서 보낸 긴 시간 동안 불안함과 숨막힘 속에서도 스스로를 붙잡았다
스터디원들과는 연락이 끊겨 소식을 알 수 없었지만
언젠가 로스쿨 정문에서 만날 것이라 결심하며 시험 공부에 매진했다.
가끔 숨이찰 때가 있었 괜스레 불안해질 때가 있었지만
최대한 스스로를 잡아주며 버텼다.
시험일이 다가왔고 다행스럽게도 작년보다 점수가 올랐다.
'1차 서류 합격'
면접을 보러 로스쿨 앞에 도착했을 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간절함만이 있었다.
제발... 제발.
생각보다 면접에서 떨지 않고 해야 될 말을 다 한 느낌이라 후련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울음이 터졌다.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컸지만
나에게 두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내 손으로 날려버린 느낌이 들었다.
검사를 꿈꾸며 열심히 공부했던 중학교 3학년 때의 스스로에게 미안했다.
내신 준비에 매진하며 온갖 스트레스를 안고 살았던 고3 시절의 나에게도 미안했다.
나 자신에게 미안해하며 집으로 돌아와 펑펑 울었다.
지금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이때의 나는 내가 떨어질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불안정한 정신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이번에는 정말 로스쿨에 가고 싶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간절했다.
그리고 12월이 되었다.
내 간절함이 닿지 않았는지 예비 번호도 없이 '불합격'이라는 글자만 있었다.
'난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
언젠가부터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할 줄 아는게 하나도 없던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27살,
인턴 생활을 시작했지만 로스쿨에 대한 미련은 버릴 수 없었다.
아직 포기하지 않았기에 한번만 더 해보기로 했다.
열심히 달리다 시험일이 다가왔고 긴장되는 마음을 부여잡고 시험장으로 향했다.
작년보다 점수가 낮으면 어쩌나 하며 불안했다.
그래도 준비할 기간이 있으니 괜찮을거라며 정신을 바로 잡았다.
시험이 시작되었고 30분이 지났을 때였다.
눈 앞이 핑핑 돌며 모든 장면이 노랗게 보이기 시작했다.
손발이 저려오고 속이 울렁거렸다.
시험 보는 중에 체할 것이라는 예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왜 나만...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긱는 걸까.'
2교시 시험을 볼 때에는 괜찮아졌지만
이미 1교시 시험을 망쳐 버렸다. 문제를 제대로 풀지도 못했다.
더이상 살고 싶지가 않았다. 환멸이 났다.
결국 '1차 서류 불합격'
회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다 결과를 확인했었는데
그 순간의 절망감은 지금도 떠올리고 싶지 않다.
정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같은해에 한 회사에 인턴으로 입사했다.
회사 생활은 로스쿨 입시에 실패한 스스로에 대한 원망을 증폭시켰다.
내 퇴근 시간을 일부러 늦추고, 전화로 폭언을 일삼았던 회사 대표의 괴롭힘이란
숨이 막힐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업무 중에 호흡 곤란도 몇 번 왔었다.
자신의 학교 후배라며 다른 인턴을 편애하던 대표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며
결국 퇴사를 결정하고 2달도 채우지 않은채 회사를 나왔다.
그 와중에 퇴사일을 일주일 앞당기겠다고 짜증을 내던 대표의 목소리를 견뎌냈다.
정말 다시는 보기 싫은 유형이다. 정확히 강약약강이었던 회사 대표.
그 고통 속에서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더 높은 곳으로 가자.” 그 결심이 나를 경영대학원으로 향하게 했다.
퇴사를 결정하게 된 계기는 단순히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대표의 온갖 괴롭힘을 견뎌내며 들었던 생각이 있었다.
바로 더 공부해서 더 높은 곳에 가자는 대담한 생각이었다.
경영대학원에 가서 더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므로 퇴사 후 내가 해야할 일은 '경영대학원 준비'였다.
이제 나는 물러설 곳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했다.
학위를 따서 더 좋은 곳으로 취업하고 싶었다.
퇴사 후, 자교 교수님을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교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마음속으로 결정했다.
올해 경영대학원에 지원해서 어떻게든 합격하기로.
미래에 대해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느낌이었다.
두 달간의 서류 준비와 면접 준비 끝에 마침내 3곳의 대학원에서 면접을 보고 왔다.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했다. 울지도 않았다.
웃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왠지 모를 확신이 들었다.
결과를 확인했던 때가 생생하다.
수험번호와 생년월일을 입력하는 순간에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았다.
노트북 화면에 결과가 떴다.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노트북 화면에 뜬 단 한 줄의 문장.
그 문장을 본 순간, 나는 미소를 지으며 펑펑 울었다.
처음으로 느껴본 기쁨의 눈물이었다.
비록 앞으로의 길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을 알지만
이제는 나를 받아준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눈물을 닦으며 자교 교수님께 합격 소식을 전했고
교수님은 그곳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라며 축하해주셨다.
다음에 꼭 찾아뵙겠다는 말씀을 전하자마자
긴장이 풀렸는지 쓰러지듯 침대에 몸을 눕혔다.
2024년에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수없이 무너지고 다시 일어섰다.
그러나 이제 나는 새로운 길 위에 서 있다.
대학원에서의 모든 날들을 기록하며
더 나은 나를 향한 여정을 써 내려갈 것이다.
나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다.